독서 모습 보여주며 책 쥘 때까지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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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 읽기 지도 이렇게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강요하지 말고 학습과 연결시키려는 집착을 버려야 아이들이 책에 편하게 다가설 수 있다. 사진은 어린이 전문도서관 '책과 아이들'의 서점 나들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유치원생들. 강원태 기자 wkang@

"옛말 하나도 틀린 거 없다더만 '자식 책 읽는 소리에 배가 부르다'는 말이 진짜 맞아요. 근데 우리 아이는…." "휴~"하고 한숨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책을 좋아할까라는 고민을 가진 부모들이 많다. 책을 많이 안 읽어서(?)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푸념도 늘어 놓는다. 모든 공부의 출발점과 종착점은 책읽기다. 비법은 없으면서도 있다.

'많은 책·멋진 서재'보다 '좋은 책·편한 서가' 마련
독후감 강요하지 말고 '몇 권 읽었나' 집착 않아야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책읽기' 강의를 하는 이영희(43)씨. 지금은 독서 지도 전문가지만 그녀 역시 두 아들을 키우며 책 읽기 교육에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아이 방은 물론이고 서재, 거실까지 뒤덮을 만큼 아이 책을 많이 샀어요. 빚을 내면서 유명하다는 책들을 모두 샀죠."

학원 강사로 수입이 좋았던 그녀는 자신이 번 돈을 전부 아이책 구입비로 썼다. 그런데 아이는 엄마의 노력을 알아주기는커녕 책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책을 읽으라고 다그치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힘들게 번 돈으로 이 비싼 책을 샀는데 왜 책을 안 읽냐는 잔소리를 자주 했어요. 답답한 마음에 좋다는 독서 학습지, 논술 학원도 많이 시켰구요."

고등학생인 첫 아이는 지금도 책과 별로 친하지 않단다.

이씨는 첫 아이의 실패를 경험으로 둘째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는 강요를 하지 않았다. "아이가 흥미를 가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더라구요. 학습지, 학원에 가서 책 읽기를 배울 줄 알았는데 책 읽기는 결국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습관이라는 걸 첫째를 통해 깨달았죠."

둘째는 집에 쌓인(?) 책을 장난감처럼 갖고 놀더니 이젠 책과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중학생인 지금은 책을 좋아하는 걸 넘어 사랑하는 수준이란다. 책을 좋아하는 둘째의 경우 감성이 발달했단다. 단적인 예로 숭례문 화재가 났을 때 첫째는 또 만들면 되지 왜 호들갑이냐고 반응한 반면 둘째는 엉엉 울며 가슴 아파했다는 것.

"아이 수준을 정확히 파악해야 해요. 아이 나이에 어울리는 책이 아니라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을 권해야 아이가 흥미를 보여요. 책을 읽고 난 후 줄거리를 요약해보라, 독후감을 써 보라는 등 학습과 연결시키려고 해도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아요. 책 그 자체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9년째 운영 중인 '책을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부산교대 앞 어린이 전문서점 '책과 아이들'의 사랑방에선 이번 주 정한 책을 두고 회원들이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한미자 회원(45)의 말. "저희들은 아이에게 책 읽으라는 잔소리 한 적 없어요. 모임에서 좋은 책을 선정해 함께 읽고 난 후 집 한 구석에 던져두죠. 아이가 흥미를 가지면 설명해주죠. 이야기 듣고 아이가 읽든 안 읽든 그건 아이의 선택이에요." 이어지는 조정숙(42) 회원의 말. "저희 부부는 원래 책 읽는 걸 좋아해요. 퇴근 후엔 TV를 켜기보다 책을 읽으니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따라하던 걸요.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주다보니 아이들이 장난감 만지듯 책에 대해 흥미를 가지더라구요."

회원들은 공통적으로 잘 노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아이들 데리고 함께 정말 많이 놀러 다녔어요. 들꽃 기행을 다녀오면 꽃 관련 책에 관심을 보였고 전래 놀이 행사에 다녀오면 전래 동화책에 흥미를 보이는 식이죠. 책에 관심을 보이게 하려면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는 게 필요해요"라고 전한다.

'책과 아이들'의 주인장 강정아(45)씨가 회원들의 이야기를 '독서 환경'이란 말로 정리해준다. "책을 많이 사 주는 것, 멋진 서재를 꾸며주는 것이 좋은 독서 환경은 아니죠. 아이에게 필요한 독서 환경은 한 마디로 어른, 시간, 좋은 책, 편한 서가가 아닐까 해요."

책을 즐기는 어른 곁에서 자란 아이들은 책과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또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하는데 사실 학원과 학습지에 매인 요즘 아이들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 그것이 문제다. 책을 읽는다는 건 책 속의 주인공들과의 만남이므로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강씨는 "몇 권의 책을 읽었냐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 권의 책이라도 책에 나온 주인공들의 감정을 얼마나 깊이 느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단다. 어린이책 전문서점 '책과 아이들'에서는 다양한 책 읽기 관련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051-506-1448.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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