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Space]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이 전하는 `나의 인생. 나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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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한 옆집 아저씨 같았다. 붉은 셔츠에 노 타이 차림. 강단져 보이는 외모와 건장한 체격. 손에 꼬깃꼬깃 적어온 메모를 보며 차분하게 스페인어로 말했고, 이어 한국어 순차 통역이 있었다. ’일흔여덟의 현역’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카를로스 사우라(1932- ). 스페인 영화사의 상징적인 증인.세계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 감독. 50년간 40편의 영화를 만든, 프랑코 독재정권 치하를 치열하게 살아냈던 그는 1960년 영화계에 입문했으며 그 뒤 스페인의 현실,역사, 문화를 담기 위해 그 누구보다 노력했던 시네아스트였다. 그에게 영화는 ’모험’이었고,미처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루이스 브뉘엘,페드로 알모도바르와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가장 스페인적인 영화감독인 그를 만나고 왔다.

사우라 감독은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이번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지난 10월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 바닷가 피프빌리지 야외무대에서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안내로 딸과 함께 무대에 올라 핸드 프린팅 행사를 가졌고,11일 오전엔&squo;나의 인생, 나의 영화’를 주제로 한 마스터 클래스도 가졌다.2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날 마스터 클래스는 거장 감독의 영화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신념 외에도 소탈함과 유머러스한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그는 "저는 올해 일든여덟로 지금까지 영화는 40편 만들었고, 아들 딸 7명을 두고 있으며 인생에 대해선 만족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독일의 영화 동료들이 여든 살이 되면 내 영화인생을 총정리하는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할 일이 많은데 퇴직하라는 건지 두렵기도 하다, 허허허"라고 털어놨다.
 
사우라 감독은 1950년대 후반부터 영화작업을 시작해 오는 14일 국내 개봉을 앞둔 ’돈 조반니’를 만드는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현역’. 그렇다면 50년간 영화를 꾸준히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는 "좋아하는 글쓰기와 미술, 음악,춤, 사진 등을 꾸준히 접해온 게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 피아니스트는 아니였지만 어머니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가까이 하면서 즐길 수 있게 되었고,한때 플라멩코 댄서를 꿈꿨을 정도로 춤에도 빠졌었다.미술가 동생의 영향으로 미술도 좋아했으며 특히 고야는 그의 영화(’보르도의 고야’·1999)로 만들어질 정도였다. 그리고 소설을 3권이나 출간했을 정도로 문학도 사랑했다. 예술을 향한 꿈을 영화로 발산한 것이다.

사진과의 인연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나이 일곱살 때,너무나 좋아하는 여학생을 찍고 싶어 아버지 카메라를 훔친 게 사진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 찍은 첫 사진은 약간 흔들리긴 했지만 떨리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으로 사진 뒤에는 하트 모양까지 그려져 있다고 고백했다.지금도 그의 집 벽에는 무려 600개의 카메라가 걸려있다고 한다.

"사진이 영화계로 진출할 수 있게 해 준 다리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저는 특별히 지름길로 갔다고 생각지는 않고 정석대로 한 단계, 한 단계 밟은 편이죠. 사진을 찍고, 다큐멘터리를 하고, 장편영화를 찍었으니까요."

사우라 감독의 영화예술 세계에 있어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있었다면 칸국제영화제와 스페인 내전. 그가 영화를 시작하던 때만 해도 프랑코(1892~1975) 독재정권 치하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못하던 시기였다. 첫 장편 데뷔작이자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부랑자들’(1960)만 해도 자국에선 15분이나 잘려나간 채 상영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한 편 한 편을 만드는 게 모험이었습니다. 칸국제영화제는 제게 많은 힘을 주었죠. 특히 칸에서 만난 루이스 브뉘엘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좀 더 자유스럽고 초현실적인 영화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는 대놓고 비판도 할 수 없는 시기여서 브뉘엘 감독처럼 은유법도 많이 사용했죠."

디지털로 대변되는 신기술에 대해서도 그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다만, "그는 "요즘에는 사람들이 디지털 카메라뿐 아니라 휴대폰을 너무 쉽게 소지해 사진, 이미지의 중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면서 "사랑하는 사람, 가족과 찍은 사진에 대한 환상적인 감성이 있는데 이런 것을 되찾아야 하지 않나 싶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동료 감독들의 할리우드 행에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영화를 하려면 미국에 가야 한다는데 자국에서 좋은 시나 음악 등 많은 소재를 발견해 그 나라 색깔을 대변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진정한 영화인이 아닐까요?"

그는 젊은 영화학도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쌓고, 영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상상력을 키우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 것"을 당부한 뒤 "지금이라도 자리에 있지 말고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가서 본인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사우라 감독이 준비 중인 다음 영화는 플라멩코 학교의 댄서가 등장하는 작품. 그가 전하는 플랑멩코 춤의 매력은 19세기 과거에 발생한 춤이지만 현재에도 추게 되고 미래에도 추게 될 춤이어서 마치 연인 같은 예술행위라는 점. 또한 재즈처럼 항상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는 춤이란 생각도 든다고.  

그는 "내가 영화를 찍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하고싶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는, 상상력 즉 창의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라면서 "내 영화에는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특히 춤도 많이 등장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춤에 관한 영화라고 하더라도 공연 자체보다는 공연을 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흘리는 땀, 리허설 과정을 더 많이 담게 된다"고 부연설명했다. 

사우라 감독은 베를린국제영화제 대상인 황금곰상(’질주’·1981)을 받았고, 감독상인 은곰상(’사냥’·1966/’얼음에 박힌 박하’·1967)도 두 차례 수상했다.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사촌 안젤리카’·1973), 심사위원특별상(’까마귀 기르기’·1976), 기술대상(’탱고’·1998) 등도 받았다. 

이번 PIFF에서는 사우라 감독의 ’까마귀 기르기’(1976), ’사냥’(1966),  부랑자들’이 특별기획 프로그램 ’전복의 상상, 상상의 전복: 프랑코 정권기 스페인 걸작전’에서 상영 중이다.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의 핸드 프린팅 장면. 사진=강선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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