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도자기, 한식의 조화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식의 세계화" … 포항의 한식 레스토랑 '낙낙'(樂樂)

몇 년 전 '화요'라는 증류식 소주를 처음 마시고 그 자리에서 반했다. 도자기 회사인 '광주요'가 이 술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듣고는 참 별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사정에는 한식 세계화에 미친 조태권 대표가 있었다. 지난달 김해 인제대에서 열린 특강 자리(부산일보 2월 23일자 9면 보도)에서 조 회장을 처음 만나 우리나라의 술, 음식, 도자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관심이 더해졌다. 마침 광주요가 포항에서 '낙낙(樂樂)'이라는 한식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술과 도자기, 음식이 만드는 하모니의 현장이 궁금해 포항까지 달려갔다.



지나친 기대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낙낙'이 서울의 고급 한정식집이 아니라 지방에 있는 대중적인 한식 주점이어서 그렇다.

먼저 화요의 빈 병을 이용해 꾸민 실내 인테리어가 독특했다. 물잔까지 모두 도자기가 나오는 정성이 마음에 와 닿았다. 2층 연회장 앞에는 도자기 전시실을 꾸몄다. 식사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도자기를 감상할 수 있게 한 점이 좋았다. 백자 달항아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백자 달항아리는 복을 불러온다고 해서 조선시대 웬만한 반가에서 널리 쓰였다.

이 같은 한국적 분위기는 외국 손님에게 접대하는 자리라면 특히나 좋겠다. 아니나 다를까 포항공대 교수들이 외국 손님이 오면 늘 데려오는 곳이란다.

'낙낙'에서 말로만 들었던 홍계탕이 먹고 싶었다. 홍계탕은 인삼 대신 홍삼을 넣고 검정 오골계를 배합한다. 미국의 정치가 키신저가 홍계탕을 특히 좋아했단다. 하루 전에 미리 주문해야 한다니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광어 활어회, 따뜻한 녹두전, 샐러드부터 들어온다. 회부터 먹는 게 순서이다. 회 밑에는 얼음을 깔아 신선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술도 한잔하기로 했다. 화요는 41, 25, 17도 세 가지 종류의 소주가 있다. 먼저 41도로 만든 칵테일은 식전주 역할을 상큼하게 해냈다. 41도를 스트레이트로 마셨더니 금방 후끈해진다. 독주 반열에 오를 만하다. 25도는 술이 넘어가는 매끄러운 느낌이 좋다. 그 부드러운 느낌을 혀가 알고 즐거워한다. 향이 경쾌한 17도는 끝 맛이 쌉싸래하다. 소주도 이렇게 입맛대로 골라먹을 수 있으니 즐겁다.

이날의 특별 이벤트는 화요에서 곧 출시할 예정인 '목통주' 시음이었다. 오크통에서 2년간 숙성시켰다는 목통주에 대한 평가를 이날 동행한 와인 전문가 고창범 씨에게 부탁했다. 고 씨는 "목통주는 위스키처럼 혀를 간질이는 미끄러운 느낌이 계속 남아 있다. 2년 숙성으로 17년 숙성 같은 느낌을 내 버번위스키와 비슷해졌다"고 높게 평가했다. 고 씨는 이 밖에도 "화요 17도는 차게 먹지 않고 온도를 올리면 맛이 죽는다. 25도는 서늘하게 마셔야지 너무 차면 맛이 상실된다"고 조언했다.

내친 김에 술 이야기가 술술 이어졌다. 모든 술에는 메틸과 에틸알코올 성분이 들었다. 이 중 메틸알코올에 두통 성분이 있다. 막걸리나 와인 같은 발효주에는 메틸알코올이 많아 많이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 위스키나 코냑 같은 증류주에는 메틸알코올이 적어 먹고 나도 두통이 없다. 희석식 소주에는 메틸알코올이 많아 두통이 따른다. 싼 술이라 머리가 아픈 게 아니었다. 고 씨는 "고기는 부위나 생산지 등을 따지며 먹으면서 술은 왜 안 따지고 먹는지 모르겠다. 제발 사람들이 술에 대해 알고 마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매운 돼지고기볶음, 만두, 천연 내열자기에 담긴 떡갈비가 나왔다. 머리 안 아픈 소주가 잘 넘어갔다. 막판에 나온 개성식 백김치는 이날 음식의 백미였다. 배에 담긴 백김치는 한 송이꽃으로 피어났다. 백김치가 그렇게 고급스럽고 맛이 좋을 줄 몰랐다. 눈으로 먹고 입으로 먹는다. 이날 음식을 마련한 한식 요리사 김미향 씨는 "우리는 고급이라기보다 편안하게 드시라고 만든다. 하지만 포항 사람들은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해 우리집 음식은 다소 밋밋하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느낌을 정리해 봤다. '낙낙'은 도자기도 술도 좋았다. 이것을 음식과 결합한 콘셉트도 좋았다. 하지만 음식이나 서비스가 다소 조화롭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조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조 회장은 "우리도 아쉽다. 세계적 수준으로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단가가 올라 손님이 안 오니 할 수 없다. 손님의 기준이 먼저 변해야 우리 음식이 세계화된다. 음식, 손님, 주방, 서비스 이 모든 것이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처럼 총체적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서울과 중국에 고급 한정식집 '가온'을 내어 운영하다 폐업한 쓰라린 경험이 있다. 하지만 지금도 팔도 음식을 연구해 코스로 경상도 메인, 전라도 메인 요리 등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여전하다. '낙낙'도 도시마다 하나씩 열고 싶다니 갈 길이 멀다.

된장찌개 등 식사류 7천~1만 원, 코스 3만~5만 원. 점심 코스 1만 5천 원, 주안상 코스 상차림 3만~5만 원. 영업시간은 오전 11시 50분~오후 2시, 오후 6~10시. 매달 셋째 주 일요일에 쉰다. 경북 포항시 남구 대잠동 967. 054-274-3808.

'낙낙'에서는 도자기를 감상하며 증류식 소주 '화요'를 반주로 다양한 우리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왼쪽부터 배에 담은 백김치, 매운 돼지고기볶음, 떡갈비.


글·사진=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동영상 busan.com

영상=김채희 대학생 인턴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