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247> 창녕 구룡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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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지어 선 암봉 숲 … 고즈넉이 잠든 山寺 …

구룡산에서 옥천계곡으로 하산하는 능선에서 잘 생긴 암봉을 만났다. 암봉은 너그럽게 소나무 몇 그루를 보듬고 있다.

매화가 필 즈음 때 아닌 폭설이 내렸다. 시내버스 바퀴는 겉돌고 출근길 교통대란이 발생했다. 그나마 재빠르게 초·중학교에는 휴업령이 내려졌다. 학교로 가는 대신 골목으로 몰려나온 아이들은 얼굴이 발개지도록 뛰놀았다. 겨우내 눈 구경 한 번 제대로 못 한 부산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은 오후에 성급하게 녹았다.

눈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 다음 날 창녕 구룡산(741m)을 찾았다. 옥천 골짜기 초입부터 길이 심상찮다. 눈 녹은 물이 밤새 얼어붙었다. 빙판으로 설설 기어오르다 일찌감치 차에서 내렸다. 화왕지맥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곳. 오고 있던 봄은 어디론가 숨고 느닷없이 겨울이 찾아 왔다. 눈 무게가 힘겨웠던 가지들이 툭툭 부러져 길가에 널브러져 있었다.



빙판과 눈길을 헤치며 걸었다. 옥천사지 바로 옆 간이 주차장이 있는 계곡 갈림길에서 출발하여 관룡사~용선대~화왕산 갈림길~관룡산~천룡암 갈림길~병풍바위~암굴~구룡산~전망바위~관룡사 갈림길~옥천관광농원식당~간이주차장까지 6.9㎞를 6시간을 꼬박 걸어서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석장승 한 쌍이 부리부리한 눈을 뜨고 서 있다. 왼쪽에 있는 장승이 남장승이고 오른쪽에 있는 서 있는 것이 여장승이다. 왕방울 눈, 주먹코, 다문 입술 사이로 송곳니를 드러내 절의 수호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불교와 민간신앙의 자연스러운 만남이다. 10여 년 전에는 호젓한 신우대밭 속에 있었으나 정비를 했는지 주변이 훤하게 뚫려 있다. 관룡사로 오르는 큰 길이 따로 있어 장승을 보지 못 하고 지나칠 수도 있겠다. 편리함을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잃어버리는 것도 많다.

도무지 허리를 구부리지 않고서는 지날 수 없는 '돌로 만든 일주문'은 인간에게 스스로 자기를 낮추는 겸양의 미덕을 일깨우고 있다. 관룡사 경내에 있는 샘물을 한 바가지 들이켰다. 이가 시릴 줄 알고 잔뜩 긴장했는데 차갑지 않았다. 우물물은 늘 온도가 일정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이치겠다. 집에서 담아온 정수기 물을 미련없이 버리고 수통 가득 물을 채워 넣었다.

약사전 기와 처마에 매달린 굵은 고드름을 감상하며 한 폭의 동양화가 된 산사의 설경을 오래도록 바라 본다. 관룡사는 신라시대 8대 사찰의 하나로 1천500년이 넘은 고찰이다. 원효대사가 100일 정진을 마치던 날 화왕산 정상 월영삼지에서 용 아홉 마리가 구룡산 쪽으로 승천하는 것을 보고 관룡사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구룡산 산행은 크고 작은 암봉이 즐비할 뿐만 아니라 유서깊은 관룡사가 있어 아이들의 역사 교육에도 좋다. 지금은 학술조사 때문에 출입이 통제되고 있는 용선대의 석조석가여래좌상은 최근 대좌 한 쪽의 명문을 확인함으로써 이르면 722년, 아무리 늦어도 731년에는 만들어졌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용선대까지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이제부터 관룡산까지는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이다. 아이젠과 스패츠로 중무장을 하고 눈길을 오르지만, 워낙 많은 눈이 쌓인 탓에 미끄러지기 일쑤다. 화왕산 정상 방향이란 이정표가 있다. 한 50분쯤 올랐을까. 관룡산을 버리고 화왕산으로 우회하는 등산로가 왼쪽으로 나 있다.

능선을 곧장 오른다. 10분만 더 발품을 팔면 관룡산(754m)이다. 헬기장에 눈이 쌓여 눈밭이 제법 넓다. 지난해 2월 9일 화왕산 억새태우기 행사를 하던 중 희생된 사람들이 있다. 잠시 명복을 빈다. 관룡산에서 화왕산 억새밭 전체를 볼 수 없지만 황금빛 억새가 뚜렷하다. 최근 당시 사고에 따른 책임으로 창녕군수가 낸 벌금을 벌충할거라며 지역 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공무원이 긴급체포되었다고 한다. 설상가상이다.



세간의 삿된 소식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뗀다. 정상 한 켠이 삼거리다. 화왕산으로 가는 길과 작별하고, 청룡암 이정표를 따른다. 암봉이 흰 눈을 받아 명암이 뚜렷하다. 작은 설악을 보는 듯하다. 눈길에 자세는 엉거주춤 하고 잔뜩 힘이 들어갔지만, 절경을 보는 마음만은 뿌듯하다. 관룡사와 청룡암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바위가 우람하다.

눈앞을 가로막은 암봉에 오른다. 멀리 관룡사와 옥천호수가 가물거린다. 누운 부챗살처럼 펴진 산자락에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대 산다. 20분을 걸어 청룡암 갈림길에 섰다. 암봉을 비껴가는 길은 안전시설을 잘 설치해놓아 그렇게 위험하지 않았다. 산행에 힘에 부치거나 청룡암의 고즈넉함을 보고 싶은 분은 이 길로 내려서면 되겠다. 청룡암에서 관룡사까지는 넉넉잡아 한 시간이 걸린다.

병풍바위를 우회하여 응달에 접어든다. 눈길이 깊다.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적설량은 많지 않더라도 바람에 쏠린 눈이 많이 쌓인 곳은 허리께까지 올라온다. 바위 뒤에 암굴이 있다. 사람이 산 흔적이 역력하다. 간장이며 소금주머니가 그대로 있다. 아마 수도를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양이다. 암굴 한쪽에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는 자리가 있다.

그 물로 밥도 하고, 세수도 하고, 마시기도 하리라. 그리고 하루 종일 바람소리를 들으며 추구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비닐 움막엔 삵이 다녀갔는지 눈위에 발자국을 남겨두었다. 그들도 불성을 알까. 돌 틈에 작은 불상과 새집. 암굴에 깃들어 공존공생하며 사는 생명들이 많다.

바위를 우회에서 능선에 다시 올라서는 길은 까다로웠다. 눈 때문이다. 자꾸 발이 헛돈다. 20분을 발품을 팔아 구룡산에 다다랐다. 부곡온천으로 가는 이정표는 녹이 슬었다. 눈밭에 천 조각 하나를 깔고 도시락을 먹는다. 김치볶음일 뿐인데 꿀맛이다. 땀 흘리고 먹는 밥맛은 좋다.

원점회귀를 하기 위해서는 관룡사 정상 헬기장에서 옥천 방향 능선으로 내려선다. 20분을 내려서니 암봉이 뚜렷하다. 암봉 뒤켠에 전망바위가 있다. 한 평 남짓. 위태롭게 얹힌 바윗돌은 큰 기왓장 같다. 옥천 골짜기 전체가 한눈이다. 능선을 계속 따라 20분 쯤 가면 능선을 버리고 하산하는 이정표가 있다. 계곡으로 급격하게 내려서는 길이다.

작은 계곡을 지나는 하산길을 1시간을 걸으면 관룡사가 나온다. 관룡사를 100m 앞에 두고 만난 능선을 계속 타고 가면 도로가 아닌 산길로 출발지점까지 갈 수 있다. 길은 잘 나 있고 특별히 헷갈리는 지점도 없다. 옥천관광농원 매점 족구장에 다다르면 산행은 끝이 난다. 산행 문의: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박영태 산행대장 011-9595-8469.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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