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의 음식' 돼지고기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땅 딛고 서는 족발… 고사상 '역설의 미소' 머리… 온갖 먹이 다 소화 곱창

장국이 맛을 좌우하는 족발은 요리하는 데만 12시간 이상이 걸린다. 족발과 냉채족발. 아래 사진은 여름 별미 막국수.


우리 모두의 뚝심이 필요한 시기다. 슬퍼도 다시 일어서야 하고, 힘들어도 굳굳하게 밀고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뚝심이다. 서민들이 즐겨 먹는 돼지고기는 뚝심의 음식이다. 돼지고기는 삼겹살 목살 항정살 낙엽살 가브리살 갈매기살 따위의 여러 부위로 나뉘지만 그 모두를 떠받치는 뚝심의 부위가 따로 있다. 대지를 단단히 딛고 서는 돼지족발, 고사상에 얹혀 빙그레 '역설의 미소' 한번 날려주는 돼지머리, 온갖 먹이를 소화 흡수하는 돼지곱창이 그것이다. 이즈음의 어느 날 문득 돼지고기 먹고 힘내자는 생각이 스쳤다.

장국이 맛을 좌우하는 족발은 요리하는 데만 12시간 이상이 걸린다. 족발과 냉채족발. 아래 사진은 여름 별미 막국수.

· 은근과 끈기의 '돼지족발'

돼지족발은 여간 손길이 가는 음식이 아니다. 족발 요리에 기본적으로 12시간 이상이 걸린다. 족발을 물에 담가 피를 빼는 데 8시간, 그리고 족발을 삶는 데 3시간, 식히는 데 2시간. 돼지 몸을 떠받친 족발이 사람 몸을 떠받치기 위해 옮겨오는 데 그만큼의 정성과 시간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야 뚝심도 생기는 법이다.

돼지족발 하면 부산에서는 부평동 돼지족발골목을 꼽을 수 있다. 25년여 역사를 자랑하는 골목. 한양족발 부산족발 한성족발 등 이곳에는 10곳에 가까운 족발집이 이른바 '돼지족발의 왕국'을 이루고 있다.

족발골목 입구에 있는 '홍소족발'(051-257-2575)의 김종대(51) 임인택(47) 공동 사장은 "족발을 삶아내는 장국 관리가 족발요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유명 족발집에서는 30~40년 전 베이스의 장국을 그대로 계속 사용하고 있다. 족발집에서는 전날 사용한 장국을 베이스로 재료와 물을 계속 첨가하면서 장국을 끓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통 있는 집에서는 한 번도 끊기지 않고 몇 십년 전 베이스의 장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희한한 묘(妙)이다. 이런 장국은 몇 천만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재료 간의 비율, 불 조절이 족발의 맛을 좌우한다"고 임 사장이 말했다. "돼지족발을 삶는 3시간도 세부적으로 보면 재료를 넣고 장국을 1시간 동안 팔팔 끓이고, 그 뒤 족발을 넣고 1시간을 팔팔 끓이고 불 조절을 하면서 다시 1시간여를 끓인다." 돼지족발은 공력의 음식이다.

"돼지족발에도 앞뒤 다리가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임 사장은 "족발용으로 앞다리는 1.6~1.7㎏, 뒷다리는 2.2㎏짜리가 적당하다"고 했다. 각 다리에서도 살코기 부분과 기름 부분, 둘이 적당하게 배합된 부분이 있는데 그걸 골라먹는 재미를 아는 이들이 '족발의 미식가들'이다.

이 집에서는 매일 족발을 삶고, 약간의 온기를 머금은 족발을 낸다. 15가지 재료가 들어간 족발의 색깔은 곱고 투명하며, 맛은 부드럽고 담백하고 쫄깃하다. 같이 내주는 매생이시래기국이 시원하다. 젊은층이 많이 찾는다는 홍소냉채는 겨자 소스가 아니라 매콤한 소스를 쓴 게 특징적이다.

자잘한 얼음 가루를 넣어놓은 시원한 막국수(5천원, 족발 후식은 4천원)가 계절 별미로, 벌써 찾는 이들이 많았다. 족발과 냉채는 크기에 따라 각 2만, 2만5천, 3만원. 하 수상한 시절에 술 한 잔 하기 딱이다. 오전 11시30분~새벽 1시 영업.


수정시장의 돼지머리고기는 부산에서 특징적이고 유명한 음식이다. 머리고기 수육. 아래 사진은 거창식당의 박미자 사장이 돼지머리를 삶고 있는 모습. 강원태 기자 wkang@

· 항상 미소 짓는 돼지머리(?)

부산 동구에 있는 수정시장은 돼지머리수육으로 부산에서 유명한 곳이다. 50년 역사를 헤아리는 이곳에도 10여 곳의 머리수육집이 있다.

시장통에 가면 돼지머리를 다듬질하는 모습을 쉬 볼 수 있다. 다듬질하는 것, 그것을 덤덤하게 보아 넘길 수 있는 것이 삶의 뚝심이다. 그럴라 치면 돼지머리가 씩 웃어 보인다. 섣부르지 않은 풍경이 있는 이곳의 경우, 음식을 먹으러 오는 단골도 많지만 잔칫집 상가 개업집 체육대회 야유회 등의 행사 주문이 더 많다.

시장통의 중간쯤에 있는 거창식당(051-468-3946)은 50년 된 집이다. 전화 주문이 끊이질 않는다. 19살 더 먹는 큰언니에게서 가게를 물려받아 15년여 장사를 하고 있는 박미자(48) 사장. "돼지머리고기는 장만하는 데 여간한 손길이 가는 게 아니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나에 13~14㎏ 정도 나가는 돼지머리통을 가져오는데, 반으로 잘라진 머리를 씻고 삶는 데 4~5시간, 건져서 뼈를 추려낸 후에 머리를 지그시 누르는 데만 2시간, 그리고 식히는 데 또 2시간여. "오전 5시에 시작하면 오후 3시쯤 되어야 완성된다. 진짜 일이 많다." 마지막 단계에 머리를 누르는 것은 기름을 빼고 살코기를 단단하게 하기 위한 과정이다.

돼지머리고기는 각 부위가 있었고, 저마다의 맛이 달랐다. 코 부분의 고기는 "정말 쫀득쫀득하고 맛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귀밑살도 쫀득했다. 쫀득한 것은 물렁뼈가 있기 때문이다. "쇠고기 수육 이상이지요?" 머리목살 부분은 색깔이 연했고, 머리볼살 부분은 색깔이 짙었다. 혀 부분은 혀의 결이 보일 정도이며, 부드러웠다.

각 부위를 알고서 다른 맛을 느끼며 먹는 게 알콩달콩 재미가 난다. 역시 아는 만큼 맛있다. 처음 먹는 이들은 이게 돼지고기인지 쇠고기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이지 싶다.

박 사장은 "돼지머리수육은 차게 해서 먹어야 제맛이 난다. 수육을 썰 때도 약간 비스듬하게 썰어야 맛이 더 난다"고 귀띔했다.

이 집에 돼지국밥(4천원) 수육백반(5천원) 돼지수육(7천, 1만원, 1만5천원) 손님도 심심찮게 드나든다. 같이 내주는 김장김치의 맛이 또한 일품이다. 돼지머리수육 1㎏ 1만5천원(1만원어치도 판다) 기준. 삼겹살수육도 주문 받는데 수입산 1㎏ 2만원, 국내산 1㎏ 3만원.


돼지곱창은 씹을수록 고소한 제맛이 난다. 대창 염통 애기보 암뽕이 어울린 돼지곱창. 아래 사진은 문현할매곱창 집의 안득모 할머니가 곱창을 굽는 모습.

· 곱창, 속을 씹어 속을 채우다

10여 집이 성업 중인 부산 남구의 문현동곱창골목에서는 돼지곱창을 만날 수 있다. 곱창은 돼지의 속, 내장이다. 오후 대여섯 시가 되면 이곳으로 주당들이 모여든다. 그런데 여성 손님들이 절반 이상이다. 오드득 씹는 맛 때문이다. 씹어야 제맛이고, 씹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 내장은 다른 고기에 비해 질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질겨야 몸 밖에 있는 것은 제 살로 만들 수 있는 강인함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문현할매곱창(051-646-0726)의 인심 좋은 안득모(71) 할머니는 "돼지 내장을 김해에서 가져온다. 재료를 다듬는 데 4시간여가 걸린다"고 했다. 먹기에 '심한 부분'은 잘라내고, 장만하면서 밀가루로 버무려 잡냄새를 빼내고, 마지막으로 소주를 부어 마무리를 한다. 그리고 이놈들을 번철 위에 1차로 굽고, 2차로는 양념을 더해 연탄불 위에서 구워 먹는다. 한 개체의 속이 다른 개체의 속으로 가기 위해서는 과정과 절차가 꽤 있는 법이다.

곱창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대창 염통 애기보 암뽕(오돌이). 이 중 애기보와 암뽕은 암놈에게만 있는 부분. 오돌오돌한 맛으로 인해 '오돌이'라고도 하는 암뽕은 돼지의 자궁이다. 거의 물렁뼈를 씹는 것처럼 오돌오돌하다. 애기보는 암뽕과의 연결 부위로 나선형처럼 꼬여 있으며 역시 쫄깃하다. 대창도 길이가 1.5m에 이르는데 앞, 중간, 뒤 부분이 생김새와 맛에서 조금씩 다르다. 흔히 우리가 아는 기름기가 찬 곱창은 대창의 중간 부분이다. 기름기가 없는 것은 뒷부분.

양념은 집집마다 다르며, 이 집의 것은 10여 가지 재료가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달지 않다.

처음 씹는 곱창에서 음식물을 소화하는 곱창 본연의 맛이 가시지 않았다. 이것이 고비다. 뚝심 있게 자근자근 씹으면 고소한 맛이 우러나기 시작한다. 이 맛 때문에 이틀에 한 번씩 들르는 10~20대 곱창 마니아들이 있단다.

이 곱창이 얼마나 싼가. 일하는 아주머니가 거들었다. "1인분 6천원, 3인분에다가 소주 2병이면 2만4천원. 얼마나 싸요. 서민의 음식 아인교." 곱창은 연탄불의 향이 배어들어 구수하다. 연탄불 위에서 곱창 익는 소리가 튀고, 곱창도 때로는 튀어 저 혼자서 양념장에 뛰어든다. 곱창과 전골 각 1인분 6천원, 삼겹살 5천원, 공기밥 1천원. 오전 11시~새벽 4, 5시 영업.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