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모텔에 반디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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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문화부장

낡은 목욕탕을 고쳐 전시장으로 꾸민 부산 수영구 광안동 대안공간 반디에서 5일까지 '비대한 꿈'이란 주제로 서울의 젊은 작가 강경미가 개인전을 열고 있다. 뚱뚱한 여인을 거대한 풍선의 이미지로 조각해 무거움과 가벼움,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서울에도 전시할 공간이 많은데 하필이면 이곳에서 전시를 했을까? 이런 답이 돌아왔다. "반디가 실험 정신이 있는 젊은 작가에게 지원을 많이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목욕탕을 고친 공간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는데, 그런 분위기의 공간이 서울에도 흔치 않아요."

부산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대안공간 반디는 한 번쯤 전시하고 싶은 공간이다.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미술관이나 대학보다 더 큰 역할을 대안공간 반디가 맡아온 게 사실이다. 최근 기획자 중심의 국제 레지던시를 공모했는데, 외국에서 50명이 넘게 응모했다고 한다.

대안공간 반디가 10월이면 문을 닫는다. 건물 신축에 들어갈 거라 건물주가 비워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대안은 있는데 공간은 없는' 상황이 된 거다.

독립문화잡지 보일라(VoiLa)를 만드는 강선제 편집자도 반디의 오랜 팬이다. 보일라도 반디가 있어서 광안리로 이사 온 거라고 했다. 그런 그가 요즘 광안리 일대 낡은 모텔에 꽂혔다. 광안리 칠성횟집 뒤편의 ○○모텔, 민락동 횟집 뒤 ○○모텔 등등 주변의 모텔 매물을 부동산 중개업소 수준으로 꿰고 있다.

대안공간 반디에서 1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보일라 사무실도 10월이면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참에 대안공간 반디와 함께 낡은 모텔을 사서 재미난 문화공간으로 꾸미는 꿈을 꾼다.

그는 뉴욕 첼시나 서울 홍대 앞에 있는 인디서점을 모텔에 꾸미고 싶다고 했다. 소규모 독립출판물이나 개인 전시 도록, 재미난 독립 잡지를 보여주는 작은 서점이다. 방마다 문화단체 사무실을 들이고, 숙박 기능을 100% 살려 문화예술인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나 레지던시 공간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한다. 대안공간 반디 전시공간도 만들고 말이다. 목욕탕에서 모텔로 옮기면서 대안공간 반디의 상상력도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을 테니까. 12년 동안 부산서 활동해 온 대안공간 반디의 강점인 네트워크 구축도 확실한 기반을 갖게 되는 셈이다.

문제는 돈이다. 6억~7억 원을 호가하는데 그걸 마련할 길이 없다. 오죽하면 김성연 대안공간 반디 디렉터가 이런 말을 했을까. "광안리에서 여는 부산불꽃축제 때 불발탄 하나 떨어지지 않나 기대했어요. 불꽃 한 발이면 반디 1년 운영비는 될 텐데…." 농담처럼 던진 말이지만, 씁쓸했다.

문득 부산시청에 내걸린 '크고 강한 부산'이란 큼지막한 현판이 기억났다. 그 발상이 문화공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오페라하우스나 국립극장, 제2시립미술관처럼 '크고 강한' 문화공간 건립에 열을 올리는 사이 작은 문화공간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대형 문화시설이 필요한 것만큼이나 '마실' 삼아 갈 수 있는 작은 문화공간도 살아남아야 한다. 문화다양성과 문화생태계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문화는 이벤트가 아니다. 한 방씩 터트려서 문화욕구를 해소시키는 블록버스터만 존재해서는 부산의 문화기반이 축적되지 않는다.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는 불꽃축제가 아니라 작은 불꽃을 하나씩 사람들에게 나눠줘 그 하나하나가 불꽃이 되는 그런 소박한 불꽃축제를 꿈꾸는 것도 그 때문이다.

10월 말 광안리에서 수만 발의 불꽃이 화려하게 하늘로 쏘아 올려지는 걸 보면서 대안공간 반디는 문을 닫을 테다. 빛으로 말을 하는 반딧불이가 아이러니하게도 강렬한 인공적인 빛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생태계에서 크고 강한 포식자만 살아남는다는 건 공멸을 의미한다. 부산의 문화생태계도 마찬가지다. 부산시에서 모텔 하나 사서 10년 무상임대라도 하면 어떨까? 반디가 없어지고 난 뒤에 그 가치를 알고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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