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세평] 한반도의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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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 로이 부산외대 교수·인도어과

지난달 23일 오후 4시쯤 어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심하래이…. 전쟁이다." 아직도 연평도 포격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다른 회의 장소에서도 "이런 상황에서 입학 면접이 되겠느냐?"는 등의 말이 오갔다. 순간 옛날 일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1980년대 초의 어느 날 오후 서울 지하철에서 갑자기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인천 경기도 등이 북한으로부터 공습을 받고 있습니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내가 전쟁의 공포에 휩싸였던 그 순간, 옆에 앉아 있던 어르신이 "아이고, 전쟁에서 한 번 살아 남았는데, 이제는 정말 끝장이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다행히 그 안내방송은 오보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 끝없이 계속돼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집에 와서 TV를 켜니 진짜로 연평도가 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저기서 국제전화가 걸려 오기 시작했다. 전쟁 상황이니 집으로 돌아오라는 메시지였다. 또 우리 딸이 엄마한테 하는 얘기가 들려왔다. "엄마, 중요한 것은 미리 챙겨 놔. 급히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북한은 왜 이런 모험을 자꾸 할까. 왜 하나의 위기가 수습되기도 전에 또 다른 위기를 조장할까. 왜 약속을 하고 또 하고, 약속을 깨는 것을 반복할까. 지난 봄에는 천안함 사건으로 한반도를 공포로 몰아가다가 이제는 아무 죄도 없는 연평도 사람들이 사는 곳을 포격했다. 무엇 때문에 이런 무모한 짓을 계속할까. 실패한 국가의 생명 연장을 위해서? 정권교체의 새로운 기록을 만들기 위해서? 아니면, 같은 민족의 자존심을 시험하는 데 재미가 붙어서?

나는 6·25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느낀 것이 많다. 일기장을 훑어보니 슬픈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사건 때에는 21명의 훌륭한 한국인들의 목숨이 날아갔다. 그들 중 한 분이 나에게 장학금을 주며 멀리 한국에 가보라고 하셨는데, 그분은 떠났고 나는 나의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때 한국을 이끌어 나가던 그 팀이 지금도 있었더라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몇 단계는 더 높아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1987년 11월 29일 KAL 858편 폭발 사건이 떠올랐다. 주범 김현희는 사형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1990년 4월 12일 특별사면이 되었다. 그때 한국 대통령은 처벌 대상은 한 여자가 아니라 북한 정권의 지도자들이라고 했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한반도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북한 정권의 신뢰도가 점점 추락하고 있다.

긴장 완화의 막대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올해만 해도 주변국가들 간에 수 차례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이러한 회담들에서 한반도의 문제들도 충분이 논의가 된 듯했다. 정상들이 악수하면서 웃는 모습도 자주 봤다. 그러나 그들의 웃음 속에 어떤 엇갈림이 있는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왜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을까?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국가의 비참한 현실은 언제, 어떻게 해소될까? 지금이야말로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관심과 의지를 재확인해야 할 때다.

대국 중국, 국제사회 역할 다해야

천안함 사건 전에 중국은 3자 회담을 제의했다. 연평도 도발 이후에는 6자 회담을 제의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는 그다지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식의 회담에서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며칠 전 학교에서 중국 유학생과 한국 학생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한국 학생이 물어보기를 "중국은 왜 그래?" 그러자 중국 학생이 다른 쪽을 보면서 말했다. "난 잘 몰라. 난 정치에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걱정이 되었다. 한국에서 유학하는 중국 학생은 수천 명이 된다. 그들은 어디에 가더라도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을 것이다.

오늘의 중국은 30년 전의 중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냥 강대국이 아니다. 그들의 말, 행동 하나하나가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제사회에 대한 중국의 책임과 기대가 점점 커가고 있는 마당에, 눈을 감아 주는 것이 강대국의 권리가 아니다. 설득력 있는 문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알록 로이 부산외대 교수·인도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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