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1000일의 수도 부산과 미술'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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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영식 미술평론가

지난 6월 본란에 '피난시절의 미술가들'이란 글을 쓴 바 있다. 그때 부산에 피난 온 미술가들의 모습과 임시수도 부산에서 전개된 미술의 상황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짤막한 글이지만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가운데 당시의 부산미술계를 그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1000일의 수도 부산과 미술'이란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고 무척 기다렸다. 첫날 전시장을 찾아 관람하였다. 몇 차례 돌아본 결과 이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고, 심지어 '우롱'당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백화점의 상품논리에 비유하면, 포장과 다른 내용물이다.

역사성이 배제된 '무성격'의 기획전

과대포장 내지 부당표시이거나 제품하자 혹은 품질불량인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소비자(감상자) 보호'를 위한 나름의 조치인 셈이겠다.

문제가 된 표제의 전시는 롯데갤러리 광복점(백화점 아쿠아몰 10층)이 개관기념 특별전으로 마련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관전은 갤러리의 성격과 향후의 관심사를 내보이는 첫 행보인 만큼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롯데갤러리도 임시수도 시절 문화의 중심지였던 '광복동'이라는 공간의 역사적 맥락을 의식하고 "부산의 역사를 간직하는 문화쉼터"를 표방하였다. 그래서 자연스레 '1000일…'이란 역사적 회고전을 기획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시회에 소개될 작가와 작품은 물론 전시회의 기대치에 대해서도 "피난의 아픔을 아로새긴 작품과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한국전쟁의 아픔과 슬픔을 확인하는 동시에 한국현대미술의 씨앗을 잉태한 현장을 민족사에 각인된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자 합니다"라고 분명하게 밝혔다.또한 전시의 충실을 기하고자 "6·25 전쟁기 임시수도 부산과 미술"(정준모)이란 기획자의 리포트도 도록에 특별히 수록하였다. 나무랄 데 없는 기획의도와 의욕이다. 그런데도 결과적으로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을 가져온 전시회가 된 까닭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스스로 한 약속(기획의도)을 어기고 전혀 다른 정체불명의 '무성격 전시회'를 만들어 놓은 데 있다. 문화적 행위상으로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로 볼 수밖에 없다.

본 기획전시는 사료에 근거한 '역사적 회고전'인 만큼 사실(史實)에 부합되는 작가와 작품을 선정하여 전시공간을 형성해야 성공적인 전시회가 된다. 리포터에 있는 바와 같이, 그 해당대상은 6·25 전쟁기 부산미술일지(1950년 8월 18일~1953년 8월 15일, 임시수도 기간)에 등장하는 작가와 작품이며, 얼마만큼 전시장에서 다시 '전쟁의 아픔과 슬픔을 확인'하고 추체험-이해-해석-비평할 수 있도록 배려하느냐에 있다. 전시는 3부로 나누어졌는데, 편의상 정리하면, 1부는 부산작가(17명 38점), 2부는 피난작가(10명 12점), 3부는 월남작가(15명 31점)로 대별된다. 이 가운데 해당기간의 활동기록이 없는 작가가 1부에 4명(서상환, 오영재, 장점복, 조동벽), 3부에 1명(홍순명)으로 모두 5명이나 된다. 서상환(1940~)의 경우는 사료와 동떨어졌으며, 이규상과 홍순명은 도록에는 있으나 전시장에는 없다. 따라서 중간에 철거된 2점을 제외하면 현재 39명 총 76점이 전시되고 있다.

부산미술사에 '오점'을 남긴 전시회

연대별 작품의 수효는 30년대 3점, 40년대 2점, 50년대 33점(1950~1953년 해당기간 14점) 60년대 13점, 70년대 16점, 80년대 2점, 90년대 3점, 연도미상 4점이다. 임시수도 시절의 작품으로 확인된 14점 가운데서도 최근 부산에서 공개 전시된 양달석의 종군스케치 10점을 제외하면 사실상 기획전을 위해 애써 찾아 온 작품이란 4점에 불과한 실정이다. 결론적으로 '1000일의 수도 부산과 미술'전은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소장전' 형식의 전시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특정 시기를 명시한 '표제'를 내걸고 '특별전'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기획전시의 초보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이 전시회는 부산미술사상 유례가 드문 오점을 남긴 전시회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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