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빅이슈(The Big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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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에 실패하고 보니,/해운대 백사장에서 살게 되었더란다./이 세상살이, 너도 나도 뜨거운 모래 밥 한 그릇은 얻어먹어야/제대로 된 인간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겠더란다./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 한 알 한 알 모래알이 익어가는 것이/누렇게 볍씨처럼 고개 숙여 익어가는 것으로 보이더란다./헛된 세파에 날려 보낸 집 한 채, 그리워/해운대 밤바다 백사장에서 짓고 부수고 다시 지으니/….'(송유미의 시 '해운대 백사장에서-G')

한뎃잠을 자는 노숙인들은 가난의 고통에다 삶의 의욕마저 꺾여버린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속담은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 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왕조 시대의 유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일에서 삶의 보람을 찾는 자립이야말로 온전한 평등에의 길이라는 뜻을 내포한다.

1991년부터 노숙인들이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대중잡지를 통해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으로 떠오른 '빅이슈(The Big Issue)'는 홈리스 혹은 노숙인의 자립을 일군 성공 모델로 평가 받는다. 빅이슈 공동대표 존 버드(John Bird)는 "정부로부터의 원조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기에 마치 최악의 호텔에 체크인하는 것과 같다"며 "일자리야말로 평등을 제공하는 가장 좋은 도구"라고 주장한다.

5일 국내에서도 노숙인이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는 잡지 '빅이슈 코리아' 창간호가 나왔다. 노숙인들은 정가 3천 원짜리 잡지를 팔아 권당 1천600원의 이익금을 챙겨갈 수 있다. 현재 15명의 '빅판'(빅이슈 판매사원)이 '술을 마시고 빅이슈를 판매하지 않습니다' '하루 수익의 50%를 저축합니다' 등 10대 행동수칙 아래 가두판매에 나섰다. 자립의 길은 숨지 않고 세상에 맞서 "빅이슈 ID카드와 복장을 착용하고 판매합니다"(행동수칙)라는 용기 있는 '노숙인 커밍아웃'에서 벌써 시작된 셈이다.

임성원 독자여론팀장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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