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아파트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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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주위 사람들이 들뜬 표정으로 "아파트 값이 올랐다"며 별 생각 없이 말을 건넬 때를 경험했을 것이다. 이럴 경우 다른 사람의 '불로소득'까지 기뻐해줄 정도로 품새가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했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닐 테다. 불로소득까지도 자랑스럽게 말하고 이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우리 사회다. 하긴 공영 방송 프로그램조차도 일하지 않고서도 부자 되는 법을 꼼꼼히 알려주고 있으니, 이 정도는 별것 아닐지도 모른다.

아파트가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되고 보니, 아파트의 계급화 역시 뚜렷이 진행되고 있다.'주택계급'(Housing class)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킨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계층과 주택 소유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소형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중대형 아파트로 주거를 옮김으로써 계층 이동을 시도한다. '사는 곳'이 아닌 '재산'으로서의 집에 대한 욕망과, 좁은 면적에 최대 층수, 최다 가구를 지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아파트 업자들의 입장이 딱 들어맞는다. 분양제도, 전세, 청약통장과 같은 한국의 기묘한 아파트 문화가 외국에서는 박사 논문집에 게재될 정도로 연구 대상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주택은 투기 목적이 아닌 주거 목적"이라며 "보금자리 주택을 차질 없이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아파트 업자들이 보금자리 주택을 '공공의 적'이라고 부르며 시기 조절을 요구한 데 따른 선 긋기이다. 친기업적인 정책을 줄곧 추구해 온 이 대통령으로서는 의외의 발언이다.

경실련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주택 보유는 상위 계층 5%가 전체 주택의 62%를 갖고 있다고 한다. 보금자리여야 할 '집'이 사회 구성원 대부분에게 짐이 되는 상황이다. "주택은 주거 목적"이라는 말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진정성 있는 서민 주거복지 정책을 확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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