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칼럼] '옹기 김치'가 왜 맛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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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건영 부산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지금쯤 김장김치가 옹기(항아리)에서 잘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채소를 먹기 힘든 겨울철을 대비해 김장을 담가 왔다. 김치는 한국인의 건강식품으로 맛과 영양소, 특히 겨울철에 부족한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는 물론 최근 밝혀지고 있는 약과 같은 영양의약물질을 섭취하게 하였다. 그런데 김치는 무엇보다 유산균의 보고로 대장에서 부패균과 유해균을 죽이고 유익한 균은 잘 성장하도록 하는 정장작용을 하므로 대장건강에 큰 역할을 해 왔다.

예전엔 옹기가 김치냉장고 역할

그런데 옹기는 과연 어떻게 김치발효에 도움을 주고 또 어떤 과학성을 가지고 있을까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흡하다. 옹(甕, 瓮)은 독을 가리키는 말로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져 물, 장, 술, 음식물 등을 담그거나 저장하는 용기로 사용해 왔다. 삼국시대에는 생활에 더욱 긴요하게 사용되어 쌀, 술, 기름, 간장, 젓갈 등을 저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도 장을 담거나 소금을 저장하고 김치를 담그는 데 독을 사용했다고 기록돼 있다.

김치는 옹기에 담가서 땅을 파고 섬피(짚으로 엮은 자리)로 옹기외벽을 둘러싸서 묻은 다음 짚방석으로 덮어 저장했다. 여름철 김치단지로는 겹항아리가 있었다. 겹으로 된 옹기 윗부분에 물을 부어 내부를 냉각, 김치 발효를 지연시켰다. 옹기가 김치냉장고 역할을 톡톡히 해주어 연중 신선한 김치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김치를 넣은 옹기를 냉장고에서 보관하기도 어렵고 장독대도 거의 없어졌다. 대신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스틸, 유리병 등의 용기가 김치 발효 때 편리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면 김치는 어떤 용기에서 발효되면 가장 맛도 좋고 우수한 품질을 가질까. 실험실에서 김치를 시유옹기(유약처리)와 유약처리를 하지 않은 무유옹기, 플라스틱 용기, 스테인리스 스틸 용기 및 유리병을 사용하여 섭씨 4도에서 한 달간 발효시켰다. 결과는 뚜렷이 나타났다. 옹기에서 보관된 김치가 발효가 잘되어 가장 맛이 있었고 우리 몸에 유익한 유산균 수는 늘었지만 부패를 일으키는 일반세균 수는 줄어들었다. 전문가들의 관능검사에서 옹기김치는 9점 만점에 6~7.4점을 받았지만 플라스틱, 스테인리스 스틸, 유리병 용기의 김치는 2~4점을 받아 큰 차이를 보였다. 김치의 맛을 좋게 하는 데는 유산균의 역할이 매우 크다. 옹기발효 김치는 탄산맛과 특히 조직감이 우수했는데 탄력성을 재는 기계로 측정해 본 결과 조직감의 탄력성을 가장 잘 유지하는 특성이 있었다.

김치의 노화 억제율을 나타내는 항산화효과를 보면 옹기김치가 53~62%로 가장 높고, 다음은 플라스틱(41%) 스테인리스 스틸 용기(31%) 유리 용기(21%) 순이었다. 김치의 암세포성장 억제효과도 옹기김치는 73~75%였지만 다른 용기 김치들은 37~52%로 나타났다. 그리고 옹기 중에서는 무유옹기가 다소 효과가 좋았다. 즉 똑같은 김치재료와 발효조건이었지만 어떤 용기에서 김치가 발효되느냐에 따라 이 같은 차이가 나타났다.

노화억제 항산화효과도 최고

옹기가 김치발효에 가장 적합한 과학성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옹기의 조직을 현미경으로 자세히 보면 기공이 있다. 공기는 투과되지만 물은 투과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서 외부에 있는 적당량의 산소가 옹기 내에 지속적으로 공급된다. 한편 유리병의 경우 공기 투과성이 전혀 없어 유산균이 필요한 최소한도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 김치 유산균은 통성혐기성균으로 공기를 싫어하지만 미량의 공기가 있으면 더 좋다. 그 조건을 옹기가 가장 적당히 만들어 준다고 하겠다.

옹기는 점토와 황토로 만들어지는데, 황토는 원적외선을 내며 옹기에 수분을 알맞게 유지하는 작용은 물론, 적정 기온을 유지해 주는 축열효과를 낸다. 이제 이런 과학적인 용기를 현대과학으로 만들어 낼 수는 없을까. 공기가 적당히 통하면서 원적외선을 내게 하는 황토 등을 이용한 김치용기가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맛있고 건강에 더 좋은 김치를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서 오랫동안 먹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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