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144년 만의 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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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 1606년 12월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온 104명이 이듬해에 건설한 신대륙 최초의 이주민 도시다. 그로부터 13년 뒤인 1619년, 아프리카인들이 북미 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그래서 제임스타운은 미 노예제도의 발상지로 불린다. 미국이 건국된 게 1776년이니 노예제도는 150년 이상 앞서 만들어진 셈이다.

미 역사에서 흑인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던 때가 1790년. 바로 건국 당시였다. 전 국민의 19.3%에 달했던 흑인은 75만7천여명이었는데 92%인 69만7천여명이 노예 신분이었다.(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아') 남북전쟁을 치른 끝에 1865년 수정헌법 제13조가 의회에서 통과되면서 마침내 노예제가 공식 폐지됐다.

2007년 2월, 버지니아주 의회는 "노예제도는 가장 끔찍한 인권 파괴행위이자 미국 역사에 대한 폭력"이라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서 노예제의 역사를 열었던 버지니아주 의회의 공식 사과였다. 이 결의안은 제임스타운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됐지만, 노예제 발상지인 버지니아주가 과거를 반성하고 사죄했다는 '역사적 메시지'라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미 의회 상원이 지난 19일 노예제와 인종차별에 대해 사과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미 의회는 노예제의 부당성, 야만성, 잔학성을 인정한다"면서 "미 국민을 대신해 고통받은 흑인과 그들의 선조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하원도 이번 주에 이 결의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연방의회 차원에서 노예제에 대한 공식 사과는 역사상 처음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노예제가 의회에서 공식 폐지된 지 144년 만의 사죄인 셈이다. 누구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상식 논설위원 kisa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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