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썰물] 봉고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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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고'는 한국 승합차의 대명사다. 봉고는 1980년 기아자동차가 1t 트럭으로 첫선을 보였다. 이듬해 12인승 승합차로 개조된 이래 전국 어느 도로에서든 봉고차를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봉고끼리 만나면 인사해요"라는 TV광고까지 나왔다. 25년간 판매 대수는 210만대. '봉고 신화' 덕분에 경영위기에 몰렸던 기아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영어로 봉고(Bongo)는 '초원을 뛰어다니는 아프리카 산양'을 뜻하지만, 봉고차가 아프리카 가봉의 봉고 대통령 이름에서 따왔다는 게 정설이다. 2007년 8월 방한한 봉고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과의 오찬 자리에서 1975년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맺어온 한국과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내 이름이 한국의 한 미니버스에 붙여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봉고차가 자신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을 직접 밝힌 것은 처음이었다.

1982년 8월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 국제공항. 전두환 대통령 방문 환영식이 있었다. 군악대의 연주가 시작됐다. 갑자기 전 대통령의 얼굴이 굳어졌고, 수행원들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장세동 경호실장이 뛰쳐나가 군악대 지휘자의 팔을 내리쳤고 연주는 중단됐다. 애국가가 아니라 북한국가였던 것이다. 전 대통령은 방문일정을 취소하라며 노발대발했다. 봉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로 간신히 무마됐다. 우리 외교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1967년 취임한 이래 42년간 장기 집권해온 봉고 대통령이 사망했다. 봉고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10년 주기로 한국을 네 번이나 다녀가 우리 국민들에게도 꽤 친근한 편이다. 또 갖가지 설(說)과 화제도 남겼다. 모 여성 탤런트와의 염문설은 낭설로 밝혀졌지만, 국내 한 신문이 가봉 현지에 취재하러 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가봉의 봉고? 봉고의 가봉? 헷갈리긴 했으나 그만큼이나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린 외국 정상도 없었던 것 같다. 김상식 논설위원 kisa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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