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미네르바 사건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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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종섭 서울대 교수·헌법학

논어는 언제 읽어도 탄복할만하다. 그래서 정자(程子)선생은 논어를 제대로 터득하면 기쁨에 겨워 "손을 흔들고 발을 구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게 된다(手之舞之足之蹈之)"고 했다. 지행합일로 그 수준에 이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제대로 되지 않고, 말이 이치에 닫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못한다(名不正則言不順言不順則事不成)". 그리고 "일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 결국 형벌이 정확하지 못하고, 형벌이 정확하지 못하면 국민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事不成則刑罰不中刑罰不中則民無所措手足)". 논어에 있는 공자의 말씀이다.

명분이 바르지 못하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법과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은 이제 대부분 인정한다. 법과 질서란 대한민국에서 각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되,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하고, 후손들의 삶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아끼고 사랑하며 그 속에서 자신들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산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그 원인과 해법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을 때, 이 틈을 타서 인터넷에서 '미네르바'라는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경제도 예측하고 정부도 비판하는 등 수많은 글을 올렸다. 국민들은 누구의 말을 믿고 살아가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경제나 금융 전문가나 학자, 언론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댔다. 그래서 '미네르바'가 작성한 글이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전문가들 가운데서도 이 글에 동조한 사람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미네르바'라는 이름으로 작성된 글을 실제 누가 작성한 것인가가 논란거리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검찰은 혐의자를 체포하여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법원에 기소하였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익명성을 이용하여 허위사실을 유포한 행위는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판단은 법원이 가릴 몫이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더 눈에 띄는 것은 '미네르바'의 실제 인물이 체포되면서, 모든 책임을 그에게 덧씌우려는 모습이다. 그의 약점과 잘못만을 부각시켜 그에게 책임을 묻는 것에만 집중하였지, 정부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진지한 반성이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 사건이 터지자 정부나 전문가와 언론들이 모두 미네르바에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자기 책임을 면하는 면책 의식을 치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그래서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도외시한 채 부분적인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덧씌우고 나머지 사람들은 면죄부를 받는 행위는 인류 역사상 숱하게 많았다. 그 원형은 유럽의 마녀사냥(witchhunt)이다. 12세기 남프랑스에서 부패와 거짓으로 만신창이가 된 로마가톨릭에 대한 개혁 운동을 탄압하는 것에서 출발한 마녀재판은 전 유럽을 휩쓸면서 장장 500여년간 자행되었다.

마녀사냥을 다시 떠올리며

처음에는 이단재판(inquisition)으로 시작하여 로마가톨릭에 대항하는 모든 교리, 사상, 학문에 대해 날조된 자백과 고문으로 탄압했다. 종교적인 이유에 더하여 정치, 경제적인 이유까지 가세하면서 무자비한 집단살인은 끝 모르게 진행되었다. 잔다르크도 갈릴레이도 케플러의 모친도 모두 이 과정에서 희생을 치렀다. 이런 인간사냥은 무지한 자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이름난 수도사, 신학자, 법학자 등 지식인들이 대거 가담하였고, 보댕, 에드워드 코크, 프란시스 베이컨, 루터, 칼뱅, 멜란히톤, 에라스무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까지 동조하였다.

지난 정권에서 과거사 문제가 국민들을 양분하고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된 배경에도 이런 심리적 원형이 자리잡고 있었다. 미네르바 사건에서도 전문가와 정부가 먼저 스스로 반성하고, 그 다음에 미네르바의 책임 여부를 논해야 명분이 있고 말이 제대로 되는 것이다. 그래야 법과 질서도 올바로 세울 수 있다. 공자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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