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1%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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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불평등으로 중산층 이하 계층이 월 스트리트를 행진하게 될 것이다"

오! 당신들의 나라 / 바버라 에런라이크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올해 세계 경제계를 강타한 외침이다. 지난 9월 이 구호 아래 자발적으로 모인 시위대는 세계 경제 중심지 뉴욕의 월가를 휩쓸었다.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자본으로 새로운 부를 축적하는 데 열중하는 탐욕스럽고 오만한 계층과 금융자본에 대한 항의이자 경고였다. 월가 점령 시위는 '1%'와 '99%'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1% 부자를 제외한 나머지 99%를 시위대가 대변한다는 뜻이다. 부자 1%가 연간 소득의 52%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시스템에 분노한 시위대는 월가 주변 주코티 공원에서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이는 순식간에 전 세계 국가로 확산됐다. 부의 양극화 현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80여 개국에서 잇따랐다. 불공정한 부의 분배구조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세계 국가 대부분이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년 전, 미국 월가 시위를 예견했던 화제의 책

공정한 부의 분배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오! 당신들의 나라 /
 바버라 에런라이크

2년 전 이런 사태를 정확히 예견한 서적이 최근 국내에서 번역돼 출간됐다. 바로 '오 당신들의 나라'다. 1%를 위한, 1%에 의한, 1%의 세상이라는 부제가 붙어 흥미를 끈다. 저자는 '부자 1%가 문제'라며 직격탄을 날린다. 일부 부유층 재산은 노동자 착취로 이뤄진다. 특히 월마트 소유 가문은 연간 650억 달러를 벌어들이지만, 직원은 저임금에 시달릴 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부유층 1%는 대형 고급 주택을 지어 지역 주민을 교외 과밀지역으로 쫓아낸다. 재개발로 지역 주민을 다른 곳으로 몰아내는 국내 실정과 유사한 장면이다. 1%에 집중된 부는 경제정책도 부자에게 유리하게 몰고 간다. 국회의원에게 기부금을 제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미국에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 실현이 어려운 것은 힐러리 클린턴이 의료산업의 기부금을 가장 많이 받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저자는 주저 없이 말한다.

저자는 중산층 이하 계층이 빈곤의 나락에서 헤어날 수 없는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밝힌다. 저소득층은 현재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돈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저소득층을 겨냥한 고금리 소액 대출과 높은 신용카드 이자율 때문이다. 빈곤층에게 신용카드 사용과 대출은 저임금을 보전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빈곤층의 숟가락 하나까지 빼앗아 간다. 엄청난 사실은 또 있다. 일부 자본은 높은 수익을 찾는 과정에서 사기성 짙은 금융상품으로 흘러간다. 부유층의 이익을 위한 이 자금은 대출상품을 만드는 재료로 쓰여 저소득층을 길가로 내쫓는 데 한몫한다. 2006년 오하이오 주에서 발생한 사건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60대 노인이 은행에서 80달러를 강탈한 뒤, 경찰이 오기를 순순히 기다렸다가 체포됐다. 그는 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해 달라고 요구했다. 사회보장혜택을 받을 나이가 될 때까지 감옥에 있고 싶었던 것. 왜 그랬을까? 그는 최저 임금을 주는 일자리 이외에는 더 이상 취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은 시간당 5.15달러. 끼니를 거르지 않는 한 이 돈으로 집세조차 마련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흥미로운 건 미국 정부가 노인 수감자 한 명당 들이는 비용이 연간 6만 9천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빈곤층의 연금 혜택 시기를 앞당기고 교도소는 진짜 악당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 수감자 200만 명 중 대부분이 극빈층이다.

중산층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대학 등록금은 중산층조차 감당하기 벅차다. 웬만한 대학 등록금은 연간 5만 달러. 상당수 대학 졸업생이 평균 2만 달러에 달하는 빚을 지고 사회에 진출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미래다. 연봉이 높은 대기업에 취업하는 대학 졸업자는 일부분이다. 나머지는 대부분은 초일류 채무자 대열에 선다. 자동차 담보 대출, 주택 담보 대출 등이 그들을 기다린다. 국내 실정과 비슷한 상황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에 대해서도 저자는 일침을 날린다. 유연성이란 노동자를 사용자의 뜻대로 해고할 수 있는 기업의 권리를 의미한다. 정부가 이를 허용한 이유는 이렇다. 해고를 용인한 만큼 사용자는 필요한 인력을 적극적으로 고용할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노동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자가 보는 유연성이란 고용 불안정이나 빈곤을 뜻한다.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탓에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빈부격차를 줄일 대안도 내놓았다. 중산층 이하 계층을 위한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최저 임금을 올리고 무담보 소액 대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도 했다. 채권자 담보권 행사로 집을 날린 사람을 구제하고 공공투자로 일자리를 늘릴 것도 제안했다. 부의 불평등 구조를 내버려둔다면 언젠가는 중산층 이하 계층이 월 스트리트를 행진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상은 2년 뒤 그대로 적중했다. 경제 시스템이 부의 편중을 부른다면 이제 과감하게 손질할 때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전미영 옮김/부키/296쪽/1만 3천800원. 김종균 기자 kjg1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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