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다-직격 인터뷰] 김성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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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은 추리소설 긴장감 높이는 극적 요소"

김성종 소설가에게 여행은 작품 구상과 충전의 시간이다. 사진은 지난해 프랑스 남부 도시 액상프로방스의 세잔기념관 앞에서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김성종. 김성종 제공

후쿠오카 살인 / 김성종

'한국 추리문학의 거장' 김성종(70) 소설가가 장편 추리소설 '후쿠오카 살인'(문학에디션 뿔/552쪽/1만 4천800원)을 펴냈다. 2008년 1월 '안개의 사나이' 이후 3년 9개월 만이다. 지난 20일 부산 해운대 추리문학관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노트북이 든 배낭을 메고 온 그는 "나이가 들수록 글이 술술 잘 풀려 즐겁다"고 했다.

"1년에 서너 차례 일본 여행을 갑니다. 이 나라는 묘한 매력을 지닌 땅이죠. 가면 갈수록 알 수 없는 깊이, 뭔가 숨기는 듯한 안개 같은 분위기, 절제된 아름다움과 조용하고 성실한 모습, 운명에 순응하면서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가는 시시포스적인 얼굴들…"

그는 매년 1월 문인, 시민과 겨울추리여행을 떠난다. 일본에 자주 다녀오니 주변에서 여행안내서 하나 써 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 그러던 중 '일본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 시리즈를 써 보자'는 생각이 번뜩였다.

부부는 서로를 없애려 여행을 떠나고 …
일본 무대 추리소설 시리즈 첫 번째 작품
"내년 '오사카 살인' 등 매년 한 권씩 5권"


'후쿠오카 살인'은 이 시리즈의 첫 작품. 집필하기 전 후쿠오카에 수차례 오가며 자료 조사를 한 정밀한 취재력이 빛난다. 소설이 사실감 넘치고 흡인력 있는 이유다. 소설의 뼈대는 일본 열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섬뜩하고 처절한 살인 사건.

'물과 기름의 관계'인 서봉수, 유지나 부부는 서로 없애기 위해 일본 여행을 떠난다. 병원장 동생으로 위장한 지나는 약국을 운영하는 봉수에게 거액을 뜯어내 내연남에게 바치기 일쑤인 악처. 지나는 내연남인 이세호를 일본에 불러들여 봉수를 없애려 한다. 봉수는 이에 맞서 일본에 사는 여동생을 통해 지나를 제거하는 일을 부탁한다.

'킬러' 이세호는 일본의 한 가게에서 위조지폐를 사용하다 들킨다. 현란한 칼솜씨로 주인과 거래처 사람을 살인한다. 급기야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게 되면서 쫓긴다. 이세호 검거를 위해 경찰청 외사과 소속인 구밀라 형사도 일본에 파견된다. 소설은 부부의 살인 여행과 이세호 추격전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시종일관 애욕과 증오, 탐욕과 살인으로 얼룩진 내용을 보면서 '인간의 진정한 내면은 무엇인가?'란 근원적 물음에 봉착하게 된다. "서봉수, 유지나, 이세호, 구밀라 등 뒤얽힌 인간 군상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들은 자신을 지키려다가 오히려 파괴했을 뿐이죠. 그 파괴를 절망이란 이름으로 숨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얼마든지 있죠."

봉수는 여동생이 고용한 심부름센터 직원의 도움으로 지나를 제거한다. 반면 수세에 몰린 이세호는 봉수를 없애지 못하고 한국 밀항을 시도한다. 이때 여형사인 구밀라가 개입해 자칫 밋밋할 수 있는 후반부에 극적인 반전을 가져온다. 구밀라는 어릴 적 이세호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섹스 중독증'이란 이상심리를 지닌 여인. 구밀라는 경찰 합동 검거 직전 이세호를 혼자 만난다. 구밀라는 이세호에게 복수심과 연민의 정을 이중적으로 느끼게 된다. 구밀라는 이세호와 마지막으로 병적인 섹스를 하고 그에게 자살을 제안한다. 질긴 악연의 고리를 끊는 셈.

"이 장면이 가장 고심한 부분이에요. 독자 의견도 분분할거라 봅니다. 최대한 작위적인 부분을 완화하기 위해 구밀라가 성폭행의 트라우마 때문에 이상심리를 지닌 여성이라는 점을 도입부에 제시했어요. 대부분 이상심리를 지닌 인물들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하드보일드 형식으로 묘사해 인간의 악마적 내면을 표출하는데 중점을 뒀어요."

김성종은 "내년에 오사카 살인을 후속작으로 낸 뒤, 도쿄 살인, 삿포로 살인, 나고야 살인 등 매년 한 권씩 모두 5권의 시리즈를 낼 계획"이라고 했다. "외국 추리소설엔 스톡홀름 살인, 헬싱키 살인 등 지명을 딴 소설이 많아요. 살인은 거부감이 들지만 추리소설의 긴장감을 높이는 극적인 요소죠. 인간이 마지막으로 하는 극적인 행동이자 자기 파괴 행위죠."

김성종은 내년에 후쿠오카에 거처를 마련해 부산을 오가며 시리즈 집필에 매진할 계획이다. 그는 196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했다.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최후의 증인'이 당선되면서 본격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제5열' '일곱 개의 장미 송이' 등 50여 편의 장편 추리소설과 공전의 히트를 친 TV 드라마 원작 '여명의 눈동자' 등 10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1992년 해운대 달맞이 언덕에 한국 최초 문학관인 '추리문학관'을 설립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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