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네가 좋아하는 걸 터놓고 좋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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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가 세상을 지배한다 / K.L.고잉

"아무튼 중요한 건 이거야.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네가 좋아하는 걸 터놓고 좋아하라는 거야.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좋아할 만한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있어."

한자리에 앉아 팬케이크 10장에 파이 두 접시는 가볍게 먹어 치우는, 늘 땀에 절어 사는, 열일곱 살, 몸무게 135㎏의 뚱보 트로이는 그 소리에 문득 놀란다.

같은 학교에 다닌다고는 해도 도저히 자기 같은 뚱보는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은, 학교의 전설로 통하는, 천재 기타리스트인, 커트가 키타는 물론 드럼도 못치는 자신에게 밴드에 들어오란다!

그러니까 커트를 만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싫어, 심각한 고민 끝에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려 자살키로 한 날, 그러나 정작 뛰어내릴까말까 주저하기만 할 때, 자기를 불러 세우던 녀석이 커트였다. 녀석의 첫마디는 그랬다. "네 목숨을 구해 줬으니, 점심 사라."

희한한 녀석이라 생각하면서도 트로이는 커트에게 끌리는데, 커트는 또 묘한 말을 던진다.

뚱보면 어때.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 그걸 즐기면 되는 거지. 비룡소 제공
"그런데 정말 웃기는 게 있어. 그게 뭔지 아냐? 사람들이 너를 쳐다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신경 쓰느라 실제로 너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는 거야."

요컨대, "네 진정한 모습은 너도 모르고 사람들도 모르고 있다"는 거다.

커트는 그러면서 트로이에게 록밴드를 만들려고 하니 드러머로 들어오라고 한다.

드러머? 이런 뚱보의 나에게? 그런 생각을 하던 트로이는 문득 한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대왕고래가 아니라 향유고래가 아닐까?'

그 생각은 마침내 뚱보를 드러머로 탈바꿈시킨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는 열등감에 빠져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던 트로이가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커트도 온전한 녀석은 아니다. 음악적 재능은 넘친다 해도 결손가정에서 자라, 집 나와 노숙자처럼 지낸다. 이런저런 약물에도 꽤 중독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환경이 커트로 하여금 삶의 겉치레가 아니라 속의 본질이 중요함을 몸으로 깨닫게 한다. 트로이가 고도비만 환자가 아니라 잠재적인 재능을 지닌 뮤지션임을 그래서 꿰뚫어 보게 된 것이다.

어쨋거나 둘은 록밴드를 결성하고 연습하고, 공연하고…, 그렇게 펑크록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간다. 말미에 트로이는 커트에게 왜 자기 같은 뚱보를 드러머로 발탁했냐고 묻는다.

커트는 대답 대신 외모나 매너에서 너무도 완벽해 보이는 두 남녀가 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잘 지켜보라고 한다.

거기서 트로이는 완벽한 두 남녀가 사실은 완벽한 게 아니라 완벽해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 안간힘 뒤에는 우스꽝스럽고도 추한 모습이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겉의 아름다움, 속의 추함!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겉모습에 가려 보지 못했던 보물 같은 진실을 보라는 것이다.

커트는 트로이에게 말한다. "네가 사람들의 숨겨진 역겨운 모습을 제대로 꿰뚫어보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펑크록이야."

'뚱보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스스로 평가절하하고 우울해 하는 아이들에게 권해봄 직한 동화다. 중학생 이상. K.L. 고잉 지음/정회성 옮김/비룡소/368쪽/1만1천원.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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