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지역 서점 살릴 길은 '도서정가제' 완전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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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당도 이달 말 폐업… 무너지는 지역 서점 살릴 길은

1955년 부산 범내골에서 시작해 30여 년 전 현재 장소로 이전한 문우당 서점. 김경현 기자 view@

"빚을 갚기 위해 건물 매각에 나선 상태다. 지난해부터 은행대출이 중단된 때문이다. 결국 사채까지 끌어 썼다. 파산이 불 보듯하기 때문에 폐업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우당서점 관계자의 말이다. 55년 전통의 향토 서점이 어쩌다 이런 위기를 맞았을까? 이에 앞서 부산의 대형서점 동보서적도 9월 말 문을 닫았다. 20여 년째 50평 정도의 매장을 갖고 서점을 운영 중인 어떤 이는 "예를 들어 십수년 전 월세 100만 원에 월 매출이 1천만 원이었다면, 지금 월세는 250만 원으로 올랐으나 매출은 그때의 7분의 1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서점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한탄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50% 할인이 넘치는 온라인서점이나 인터넷쇼핑몰과, 겨우 10% 안팎의 할인율을 제공하는 지역 중소 서점 간의 경쟁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끝난 게임'이라는 것. 그래서 그는 "도서정가제 외에는 백약이 무효"라고 단언했다.

현행 출판문화산업진흥법에서 특별한 정가판매 규정까지 두었지만, 관련 시행규칙에서는 발행 후 18개월 미만의 신간 도서조차 19% 할인이 기본이고, 그 이후에는 무한 할인이 허용된다. 학습참고서나 도서관 판매 도서 등은 아예 정가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지역의 대형서점뿐만 아니라 중소서점도 배겨날 수 없을 거라는 분석이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 따르면 2005년 기준, OECD 가맹 30개국 중 도서정가제를 공식적으로 시행하는 국가는 반수인 16개국이며 도서정가제가 없는 나라는 14개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도서정가제를 실시하지 않는 국가의 대표격은 미국이다. 미국에는 우리와 같은 지역 서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도서 판매는 '아마존'이나 월마트 같은 세계적 자본을 가진 업체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에 비해 '랑'법으로 도서정가제를 법으로 규정한 프랑스는 비교적 건전한 출판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미국의 꼴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도서정가제 시행은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라는 게 서점·출판가의 주장이다. 책을 싸게 사는 것 같지만, 출판사들도 할인을 염두에 두고 '거품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에 실제 싸게 사는 게 아니라는 논리다.

신간 발행 뒤 18개월 지나면 무한 할인 허용
50% 할인 공세 온라인서점과 아예 경쟁 안 돼


한 출판사 대표는 "정가제가 시행되지 않으면 시장은 거대자본이 장악하게 되고, 그러면 출판사는 그들이 원하는 책만 만들어내거나 그들이 원하는 수준만큼 가격을 낮춰 납품하는 종속관계가 된다"고 밝혔다. 실제 도매상에는 정가의 65%에 책을 공급하면서 온라인서점에는 35%까지 낮춰 공급하는 일이 출판가에서 자주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유통시장 자체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런 파행이 출판사의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결국 출판의 건전성이 떨어지고, 좋은 콘텐츠를 제공받지 못한 독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그들은 말했다.

서점가에서는 "지자체에서 지역 주민의 예산으로 구입하는 각종 기관의 장서를 지역 서점에서 구매토록 하거나, 거대 자본의 외지 서점이 지역 시장에 진출할 때 일정한 제한을 두는 조례 제정 등 지역 서점 생존을 위한 여러 대안들도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창연 회장의 말. "제일 중요한 건 도서정가제의 완전한 실시입니다. 작게는 지역경제 살리기이고 크게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생태환경의 질을 보존하는 일입니다.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할 게 아니라 심각히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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