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시] 참깨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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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꽃 보면 오래 묵은 범종 같다

당목撞木으로 두드리면 부처님 말씀이 서 말 하고도 한 닷 되쯤은 쏟아질 것 같다



저기 저 한 뙈기도 안 되는 비탈밭 가득 참깨꽃 피었다

범종이 무릇 일만 송이는 된다



쳐라, 바람아

부처님 설법을 깨알 같은 필체로 옮겨 적어 마침내 팔만대장경을 일구리라



-문신 '참깨꽃' 전문(시집 '물가죽 북', 2008, 애지)



기독교인들도 이 시에 관하여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즘 교외로 나가면 가장 흔히 보이는 게 참깨꽃이다. '한 뙈기도 안 되는 비탈밭 가득' 연보라 빛으로 피어 있는 참깨꽃. 관점에 따라 누구는 그것을 범종으로 보고 누구는 그걸 차임벨로 볼 수도 있다. 문제는, 모든 시는 깨소금처럼 고소하고 맛있으면 좋겠다는 것. 그러고 보니 '깨알 같은 필체'로 무엇을 또박또박 써 본지도 꽤 오래되었다. 돌아오는 휴일엔 고향에 가서 어머니의 참깨밭머리나 슬슬 서성거리다가 올 일이다.

유홍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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