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학자 9인의 색안경 낀 '아바타'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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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인문학/최정우 외

샤헤일루를 통한 접촉은 월드와이드웹에 접속하는 우리의 일상 속 경험과 닮았다. 사진제공=자음과모음

3D영화 열풍을 몰고 온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 헌사와 비판이 엇갈리지만, 아바타에서 끌어낼 수 있는 인문학적 담론들은 많다. 휴머니즘,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생태주의와 결합한 테크놀로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시선 따위가 그랬다.

'아바타 인문학-인문학, 영화관에서 색안경을 쓰다'는 9명의 젊은 인문학자들이 제각각의 '색안경'을 쓰고 인문학적으로 아바타를 본 감상문이다. 초점은 다르지만 3D보다 훨씬 생생한 현실에 젖줄을 대고 있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다.

영화보다 생생한 현실 바탕
유토피아 통한 구원 등 제시


인하대 윤영실 교수는 삶 자체가 재난이 돼 버린 종말의 시대를 끝장낼 수 있는 변혁의 도구를 아바타에서 발견했다. 그는 불구가 된 주인공 제이크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꿈을 꾸듯, 불구적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판도라 행성의 유토피아를 통해 종말 너머의 구원을 꿈꾼다고 했다. 그런 유토피아는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서 봤던 야생의 삶과 겹쳐진다. 필요한 것 이상 가지지 않아 풍요롭고, 빈부의 격차가 없어 상대적인 박탈감도 없는 그런 세상이다. 이런 세상은 단순한 과거로의 퇴행이 아니라 문명의 질병에 신음하는 인류가 종말을 넘어 나아갈 '오래된 미래'다. 이를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세계 혹은 자연과의 상실된 유대를 회복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 제이크와 나비족의 연대처럼 현실에서도 그런 연대는 발견된다. 백인 게릴라들과 인디오 원주민들이 만나 구성한 사파티스타라는 공동체다. 영화는 그렇게 영화 밖으로 나와 종말의 시대를 변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영화 속 연대를 상징하는 '샤헤일루(교감·bond)'는 현실 속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바로 네트워크로 긴밀하게 연결된 월드와이드웹이란 세상이다. 평론가 조형래는 에이와의 나무를 중심으로 연결된 판도라 행성의 세계는 일종의 월드와이드웹이며, 그 세계로 들어가는 인간의 의식은 소프트웨어와 같다고 봤다. 흡사 공기처럼 존재하는 월드와이드웹은 급기야 현실에서 샤헤일루를 가능케하는 신경의 첨단인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힘입어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운 것이 됐다. 카메론 감독이 15년 전에 만든 영화 '진짜 거짓말(True Lies)' 같은 세상이다.

누구나 빨려들어갈 것 같은 이런 자연스러움에 대한 회의도 있다. 번역가로 활동 중인 김지현은 '아바타'의 SF적 가정에는 윤리의식이 부재한다고 쏘아붙였다. 아바타가 표절했다고 논란이 됐던 폴 앤더슨의 SF소설 '콜 미 조'에서는 주인공 앵글시가 인공 육체 슈도조비안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인간이 다른 인간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그런 혼란이 나타나는 건 당연지사. 하지만 아바타라는 새로운 육체로 갈아타는 과정에선 아무런 긴장이나 갈등을 발견할 수 없다. 또 '배경을 우주로 옮긴 서부극'인 이 영화에서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선 승리가 너무도 자연스레 이뤄진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자기편을 향해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상황이라면 고민이나 갈등이 있어야 했겠지만, 아바타가 된 제이크에겐 이런 고민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

영화 아바타를 할리우드 좌파 영화로 보거나, 베트남전을 복기하고 있다고 보는 글도 재미있게 읽었다. 최정우 외 8인 지음/자음과 모음/296쪽/1만3천500원.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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