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인간의 원천 검은 대륙에 시선 멈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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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김홍희

11일부터 월드컵의 공이 아프리카 대지 위를 구른다. 우리 곁에 아프리카가 성큼 다가온다. 
코트디부아르의 시인이자 소설가 베르나르 다디에는 노래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를 흑인으로 만드신 것을, 나를 모든 고통의 합계로 만드신 것을'. 우리는 인류라는 복잡하고 단순한 이름으로 대지의 붉은 살점 속으로 뛰어드는 그들의 '모든 고통의 합계'를 알고 싶다. 

저기 아프리카가 온다. 모든 가능성은 주변부에 있다. 인류의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그곳은 인류가 기원한 그곳이다. 아프리카가 왔다. 우리는 아프리카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프리카, 나의 아프리카… 눈부신 외로움으로 서 있는 바로 이 나무, 이것이 아프리카다'(세네갈의 시인 다비드 디오프).

4인이 만나고 느낀 아프리카

"전통 중시하는 소박함에 매료"

■ 시인 김수우

아프리카에 관한 시를 자주 쓰는 김수우(백년어서원 대표) 시인. 그는 지난 1981년부터 북서아프리카 사하라사막의 나라 모리타니에서 3년간 살았다. 지금부터 30년 전이며, 모리타니가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벗어난 지 20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일반인에게 아프리카는 금단의 땅이었다.

"헐벗음, 굶주림, 맨발, 전염병, 붉은 사하라, 식민의 잔재 등 온갖 모순들만 남은 사막의 나라였어요. 희망이 없는 불모지였지요.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아프리카인들이 지닌 순수함, 생명의 원형을 간직한 삶과 문화, 물질문명보다 관습과 전통을 중시하는 소박함에 깊이 매료되었지요."

그래서 김수우 시인의 시에는 아프리카가 자주 등장한다. 지난 2005년 '붉은 사하라'라는 시집도 냈다. 시의 정신이 삶과 생명의 원형을 갈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시의 정신을 지구촌에서 가장 완벽하게 간직한 곳이 아프리카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로부터 철저하게 수탈당해온 곳 치고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역사 이전, 아프리카는 바다였고 다시 숲이었고 다시 사막이었습니다. 땅속 화석연료는 그 증거죠. 생명의 원천, 인간의 원천인 아프리카와 소통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계기로 월드컵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상민 선임기자 yeyun@busan.com


"인간이 한없이 작아지는 곳"

■ 사진작가 김홍희

"우리가 얼마나 큰 편견의 틀 속에 갇혀 있었던가를 깨달았죠. 아프리카 사람들은 점잖고 여유로웠습니다. 유장(悠長)하다고 할까요."

지난해 10월 17일간 EBS '세계테마기행' 촬영팀과 함께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주요 도시를 방문하고 돌아온 사진작가 김홍희의 아프리카에 대한 느낌이다. 그는 아프리카를 처음 방문했다. 짐바브웨는 남쪽으로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접해 있다.

아프리카는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깊었다. "한 마을에서 추장이 재판을 하는 과정을 지켜보았습니다. 땅을 놓고 벌이는 송사였는데, 당사자들은 상대방을 헐뜯고 있었죠." 김씨는 돌연, 추장의 굵직한 목소리를 흉내냈다. "'너희들은 여기에 사람을 무시하거나 욕보이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사실을 말하기 위해 온 것이다. 어떻게 사람을 욕되게 하느냐'며 꾸짖었죠. 나이 많은 촌로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죠. 대단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아프리카를 미개하다고 생각하기 쉽잖아요. 제 눈앞에서 편견이 깨어졌죠."

"사람들이 다니는 버스 정류장이 있었죠. 그런데 100m 정도 저만치 도로 위를 거니는 사자를 봤습니다.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세계 3대 폭포의 하나인 거대한 '빅토리아 폭포'를 보면서 인간이란 존재가 한없이 작음을 느꼈습니다. 아프리카란 바로 그런 곳이죠. 다시 가 보고 싶냐고요?" 정달식 기자 dosol@


"경계가 없는 애매모호한 매력"

■ 시인 황학주

황학주 시인의 전생은 아프리카가 아니었을까. 지난 1991년 자원봉사단의 일원으로 3년간 아프리카를 갔다왔다 하더니 95년부터 아예 케냐에서 살았던 그다. 
3년 뒤 귀국하면서 '피스프렌드'라는 구호단체를 설립했다. 마사이족을 위한 학교를 세웠는데 운영이 어려워지자 제대로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2004년이었다. 피스프렌드는 지금 주로 탄자니아에서 활동하며 마을을 돕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최근 국내 시인들과 함께 '아프리카 시를 낭독하는 모임'을 만들어 아프리카 시인들의 시집 출간을 지원하는 일도 벌였다.

"우리들이 잃어버린 삶의 태도를 간직한 곳이 아닐까, 아프리카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문명의 생각이 닿을 수 없는 형이상학적이고도 매혹적인 사유들이 있다." 경계가 없는 애매모호함의 매력을 보라고 그는 말한다. 아프리카 시인들을 돕는 것은 단순한 동지애적 측면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살아 있는 정신을 구현하는 이는 정치가도 사업가도 아닌 바로 시인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축구는 공차기 이상의 상징이다. 가난한 이들이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운동. 그리하여 희로애락이 그대로 스며든 스포츠다. 그는 말한다. "우주를 보라. 궤도 사이를 노니는 공들이 있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희로애락 사이로 사람들이 꿈을 차고 다니는 것이다." 남아공 월드컵이 아프리카인에게 특별한 축제가 되는 이유다.  김건수 기자 kswoo333@


"억압 속에 빛나는 소통과 화해"

■ 인디고 박용준

박용준 인디고(인문학 잡지) 국제판 편집장은 2007년과 2009년, 두 번 아프리카에 갔다. "아프리카는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더라"고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흑인들의 슬럼가, 다른 한쪽은 3천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안전한 백인들의 도시. 만델라도 흑인들의 삶을 개선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백인의 흑인에 대한 지배가 여전한 가운데, 그 땅에서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도 많이 만났다"고 했다.

"학교에 교과서가 없어서 내 노트 필기를 다른 아이들의 교과서로 쓸 거예요"라고 말하던 흑인 아이의 눈망울이 잊히지 않아 무료 과학 교과서를 만들기 시작한 케이프타운대학의 마크 호너, 동물과의 화해와 공생이란 가치로 동물보호구역을 스스로 만들어 동물을 구하고 있는 로렌스 앤서니. 그런 백인들도 있었다.

케냐청소년평화회의의 자반 아푸두란 청년은 '형제애(brotherhood)'란 단어를 굉장히 소중하게 발음하더란다. 극단적으로 나뉜 아프리카에서 화해의 정치를 펼쳐나갈 꿈을 펼치면서 말이다. "풍요와 결핍이 공존하는 대륙에서 차별과 억압을 극복할 수 있는 건 나눔과 소통, 화해와 같은 선한 가치임을 청년의 눈빛에서 확인했다"고 했다. 이상헌 기자 ttong@

문화의 창에 비친 아프리카

로맨스 내전 그리고 화합

■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한장면. 부산일보DB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스크린에 옮긴 영화는 마치 빛을 파장에 따라 달리 뿜어내는 스펙트럼처럼 시대별로 명암을 달리한다. 젊은이들의 로맨스 장소에서 치열한 내전의 무대로 반전되더니 이제는 화합의 꽃을 피우고 있다.

아프리카 북서부 모로코를 배경으로 한 '카사블랑카'(1942)는 사랑하지만 서로를 위해 헤어져야만 하는 연인의 가슴 아픈 스토리를 그렸다. 험프리 보가트의 남성적 매력과 잉그리드 버그만의 아름다움, 그리고 두 사람이 작별하는 공항의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영화팬들에게 회자되는 흑백영화의 진수다. 시드니 폴락 감독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86)도 아프리카 초원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열정을 로맨스로 버무려냈다.

이처럼 '미지의 대륙'으로 호기심을 끌던 아프리카는 이후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추악함을 고발하고 나선 것. 93년 10월 내전에 빠진 소말리아 모가디슈를 배경으로 한 '블랙호크다운'(2002), 94년 시작된 르완다의 대량학살을 담은 '호텔 르완다'(2004), 시에라리온 내전을 배경으로 다이아몬드 밀거래에 휘말린 두 아프리카인의 모험을 그린 '블러드 다이아몬드'(2007) 등 아프리카를 퍼담은 영화는 혼란,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럭비를 통해 국민통합을 일궈낸 사건을 영화화한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2010)처럼 이제 아프리카는 갈등의 골을 넘어 용서와 소통을 이야기한다. 때마침 남아공에서 열리는 '지구촌 축제 한마당' 월드컵처럼 말이다. 김호일 선임기자 tokm@

객관적 시각 담은 서적 눈길

■ 책
 
부산일보 DB
월드컵이 왜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에서 열리지? 그 먼 오지, 인종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기껏해야 피파(FIFA) 랭킹 83위(지난 5월 기준)의 나라에서? 
그런 의문을 가진 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사진·척 코어·마빈 클로스 지음/박영록 옮김/생각의나무/1만3천원)이란 책을 일독해 볼 일이다. 로벤섬 정치범 수용소에서 벌어진 축구 리그를 통해 넬슨 만델라를 비롯한 남아공의 흑인들은 저항과 단결을 도모했고, 결국 정치적 승리를 이끌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남아공과 월드컵이 어떤 필연적 함수관계를 갖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역사를 알고 싶다? '통아프리카사: 우리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아프리카의 진짜 역사'(김시혁 지음/다산에듀/1만3천원)가 있다. 청소년 눈높이에 맞춰 쓴 만큼 쉽게 읽힌다. 서구적 시각이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서술했다.

다소 전문적인 식견을 원한다면 서울대 불어문화권연구총서로 나온 '아프리카: 열일곱개의 편견'(엘렌 달메다 토포르 지음/이규현·심재중 옮김/한울아카데미/1만4천원)을 찾아보자. 불모, 빈곤, 기아, 가난, 내전 등 아프리카에 대한 고정관념의 밑바탕에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시각'이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문학의 창으로 걸러진 아프리카를 보고 싶다? 영화로도 제작된 카렌 블릭센의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 등 많지만, 그중 최근작으로 '한편이라고 말해'(우웸 아크판 지음/김명신 옮김/은행나무/1만3천원)를 권한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예수회 사제인 작가가 아프리카 대륙이 겪고 있는 가난과 굶주림, 인종 분쟁 등의 문제를 어린이들의 시선과 목소리로 풀어낸 다섯 편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기지와 끈기로 돌파해 나가는 아프리카의 생명력을 엿볼 수 있다. 임광명 기자 kmyim@


새로운 퓨전음악의 자양분

■ 음악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라고 했던가. 음악 역시 그 원류는 아프리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흑인들이 노예로 아메리카에 끌려와 그 아픔을 블루스 음악으로 녹여낸 이래, 흑인음악은 재즈 로큰롤 리듬앤블루스 힙합 등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중음악의 큰 물줄기가 됐다. 뿐만 아니다. 중남미 대륙으로 팔려간 흑인들은 현지의 고유한 음악과 만나 튀고 섞이면서 새로운 퓨전음악의 자양분을 빚어냈다.

지금의 아프리카 음악은 월드음악으로 분류된다. 크게 나누면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의 이슬람 음악권 △에티오피아의 음악 △중·남부의 원주민 니그로의 음악 △마다가스카르의 음악 등.

아프리카 음악의 특징은 탁월한 리듬감이다. 무엇보다 타악에 뛰어나다. 음반 '아프리카 드럼의 거장들'(ARC)은 아프리카의 뛰어난 드럼 연주를 담고 있다. 그들에게 드럼은 조상과의 대화 통로이며 통신 수단이자 축제의 악기. 드럼 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고 그들은 믿는다. 이 음반은 남아프리카 소웨토의 이페레겡 문화센터 산하에 있는 드럼 연주자들의 다양한 향연을 모은 것.

월드뮤직 전문 레이블인 '월드뮤직 네트워크'의 음반 시리즈 중 아프리카 편(Rough Guide to the Music of Africa)이 있다. 아프리카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소개를 목적으로 다양한 음반이 나와 있다. 남아프리카, 서아프리카 하는 식으로 세분해서 아프리카 음악을 소개한다. 국내 서적으로는 음악비평가 신현준의 책 '월드뮤직 속으로'(웅진닷컴)에서 아프리카 음악의 숨은 면모를 접할 수 있다. 김건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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