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스페셜] 김호일 서울 문화팀장이 전하는 못다 한 칸영화제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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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끝없는 박수, 바가지 상혼에 지친 마음 싹~

올해 칸영화제의 이 풍경 저 풍경. 김호일 선임기자

세계 최고의 영화축제인 제63회 칸국제영화제가 지난 23일 막을 내렸다. 두 편의 한국영화가 상을 들고 귀국했으니 올해 한국영화의 수확은 꽤나 쏠쏠한 편. 열전 12일 동안 숱한 이야깃거리를 쏟아냈지만 지면에 담지 못 했던 '못다 한 칸영화제 이야기'를 정리해 봤다.



· 36시간 걸려 도착한 칸

"어라. 무슨 비행기가 이리 가노?" 지난 12일 오후 2시30분 영화제 취재차 프랑스 칸을 가기 위해 이륙한 비행기에서 이런 소리가 터져나왔다. 무려 두 시간이나 늑장 이륙한 에어프랑스는 서해가 아니라 동해 쪽으로 엉뚱한 항로를 잡았다. 아이슬란드 화산재 때문에 한참을 우회한 것. 결국 파리 드골 공항에서 니스행 연결편을 놓쳤다. 결국 근처 허름한 호텔 신세를 져야 했다. 다음날 니스를 거쳐 칸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1시30분. 한국에서 무려 36시간이 걸린 셈이다. 멀고 먼 길이었다.



·얄팍한 '칸의 경제학'

어렵사리 당도한 숙소는 칸비치 레지던스. 500여 객실의 콘도형 호텔로 3인실 방값은 자그마치 하루 33만 원. 이곳에서 전자키, 카드키는 사치스러운 일. 겨우 짐을 풀었더니 구닥다리 방 열쇠도 없단다. 앞선 투숙객이 가지고 사라졌다나. 어떻게 문을 잠그느냐고 물었더니 "잠글 때마다 경비원을 불러라"며 황당한 소리를 건넨다. 호텔 카운터에 '엄살'과 '협박'을 하자 이틀 만에 해결됐다.

게다가 이 고급호텔(?) 방에선 인터넷이 절대 안 된다. 연결되는 곳은 호텔 로비 딱 한 군데. 잠옷 차림의 투숙객이 로비 맨바닥에 쭈그려 앉아 밤마다 컴퓨터와 싸움하는 모습이 가관이다. 그나마 있는 무선 랜도 느려터진 굼벵이 수준. 이즈음 나오는 소리가 있다. "프랑스는 IT 강국, 한국을 배워야 해!"

행사장 출입증(ID카드)을 받기 위해 찾은 프레스센터에서 벌어진 또 다른 황당한 일. "당신 서류가 없으니 이리 가라, 저리 가라"며 연방 '뺑뺑이'를 돌린다. 한국을 출발하기 전, 까다로운 서류와 사진을 팩스와 이메일로 몽땅 보내 답신까지 받았는데 사진부터 다시 찍어야 한단다. 한숨이 절로 나오며 "여기 세계 최고 영화제 맞아?"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ID카드를 목에 걸고 둘러본 칸영화제 전용관인 팔레 드 페스티벌. 해변과 맞닿은 칸 시내 정중앙에 턱 버티고 있다. 좌로는 '올드 칸'이고 우로는 고급호텔들이 즐비한 '신시가지'. 좌도, 우도 불만없게 자리잡아 영화제 장소 하나는 '명당 중의 명당'. 그런데 이게 웬일. 전용관 건물 맨우측에 '버얼~건'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하여 'CASINO'(카지노). 영화도 보고, 지갑도 풀라는 말씀? 칸 사람들의 경제학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천정부지 숙박료에 굼벵이 인터넷
'세계 최고 영화제 맞나?' 의문도

특정 상표 운동화 신은 기자 입장 못해
깐깐하고 권위적인 칸 여실히 보여줘


경쟁부문 진출작 상영 이틀째인 14일, 주인공은 임상수 감독의 '하녀'. 기자회견, 인터뷰, 레드카펫, 공식상영 등 일정이 줄을 잇는다. 그래도 즐거운 듯 전도연, 이정재, 윤여정의 입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임상수 감독 왈. "한국에선 좀 그랬는데 이곳에서 확실하게 격려해주는 것 같은데요."

이들이 묵는 최고급 칼튼호텔의 하루 방값은 무려 1천유로(150만 원). "영화제 측에서 공식 초청했으니 '풀 서비스'를 해주는구먼"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제작사 측은 이내 손사래를 친다. 달랑 2박 3일만 챙겨주고 나머지는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 결국 칼튼호텔에서 이틀을 연장한 뒤 "짐 싸~." 하루 300유로(45만 원) 하는 '저렴한'(?) 호텔로 옮긴 것.



·칸의 오만과 편견

세계 최고의 영화제라는 칸. 과연 명성에 걸맞을까. 일단 천정부지의 숙박료와 느려터진 굼벵이 인터넷에 상처받은 기자의 눈엔 부실한 모습이 더 많이 들어 왔다. 먼저 4천여 명의 기자가 몰린 영화제 기자회견장. '초딩' 엉덩이 크기에 맞춘 듯한 좁디좁은 의자. 도처에 망가지고 고장난 것이 뒹군다. 볼트로 단단히 고정해 그나마도 옴짝달싹 않는다.

결국 19일 오전 영화 '시' 기자회견 도중 질의를 하면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자 내외신 기자들이 박수와 함께 "잘했어~"라며 환호한다.

이날 오후 7시,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영화 '시' 레드카펫과 공식상영 참석을 위해 검은 턱시도로 한껏 멋을 부린 일간지 모 기자가 상영장 입구에서 출입제지를 당했다. 옷은 괜찮은데 문제는 특정상표가 표시된 '검은 운동화'를 신었다는 것. 융통성 없는 칸은 여전히 깐깐하고 권위적이었다.

행사 기간 중 한국 영화인과 취재진을 괴롭힌 건 고(高)물가에 바가지 상혼. 니스 공항에서 칸까지 택시로 약 40분 거리이지만 요금은 무려 100유로(15만 원)다. 또 칸 시내에서 숙소까지 기본요금 거리지만 20~30유로(3만~4만 5천 원)를 받는다. 이곳 택시들은 그야말로 '대목'이지만 바가지 요금으로 프랑스가 욕먹는 소리엔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들. 어디 그뿐인가. 가벼운 샌드위치나 햄을 넣은 바게트 빵도 10유로(1만 5천 원)를 가볍게 웃돈다. 그래서일까. 영화인들은 "다시는 칸에 오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칸의 오해와 진실

그럼에도 칸을 찾는 이유는 최고의 영화제이기 때문. 각본상을 수상하고 지난 26일 귀국 기자회견을 가진 이창동 감독은 "칸은 세계 최고의 영화제"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서 만들어진 지 12개월 이내의 영화를 선별해 차린 '메뉴판'은 신선해 보였다. 무엇보다 이렇게 뽑은 영화에는 최고의 예우를 해준다. 호텔에서 상영장까지 경찰의 철통 같은 엄호 속에 카퍼레이드를 펼치고 레드카펫 위에선 세계 모든 언론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에 모든 관객이 착석한 뒤 입장하는 주인공들은 끝없는 박수갈채를 받는다. 영화가 끝나면 기립박수를 또다시 받는다. 3분, 5분, 길게는 10분 넘게 박수를 친다. 이런 분위기라면 어떤 영화인이라도 황홀경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멀고 먼 길을 달려와 고물가와 바가지 상혼에 지친 마음도 이때만큼은 잠시 가벼워질 수 있는 것.

행사장인 팔레 드 페스티벌 지하엔 '마르쉐 뒤 필름'(Marche du Film)으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영화시장이 선다. 1959년 처음 공식 설립됐는데 올해는 약 3천 개 사, 1만 명이 참여했다. 그런데 이곳에 입장하려면 350유로(52만 5천 원)짜리 세일즈 배지를 사야 한다. 마켓 수입이 영화제 경비의 30%가량을 차지한다고.

이런 칸영화제의 총지휘자는 대외적으로 티에리 프레모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바로 잡아야 할 것이 있다. 프레모는 집행위원장이고 그 위의 조직위원장은 여전히 질 자콥이라는 것. '칸의 황제'로 불리는 자콥은 "너무 독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하자 2000년 초반 리옹 영화연구소를 운영하며 정치색이 엷은 프레모를 '바지 사장' 격으로 전면에 내세우고 자신은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국내외 영화인들은 "자콥은 프레모 위원장을 조정하는 칸의 실질적 운영자이고, 가장 핵심적인 영화선정위원 4명 중 2명을 자신의 아들로 채워 여전히 '칸의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다"고 귀띔해줬다. tok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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