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참 파랗지 않아요? 뭘 고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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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가장 먼저 템플스테이 시작한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얼핏 잠들었을까. 똑~똑~똑또르르~. 어디선가 목탁 소리가 들린다. 눈을 뜬다. 무거운 어둠. 그 속을 뚫고 똑~똑~똑또르르~ 목탁 소리는 귓속까지 닿는다. 귀에서 머리, 머리에서 가슴으로 무언가 움직인다. 그 기운에, 끝내 일어나 앉는다. 새벽 4시. 똑~똑~똑또르르~. 그제야 알게 된다. 아하, 도량석의 목탁소리! 일체 중생에게 기침(起寢)하라 이르는 소리!

견디지 못하고 방문을 연다. 봄이 눈앞에 보인다 하나, 전남 해남 달마산 자락 미황사의 새벽 바람은 콧속이 쨍~ 울릴 정도로 매섭게 차갑다. 대웅전에는 이미 불이 밝혀져 있다. 새벽예불. 대웅전에 들어선다. 사람들은 절을 올리고,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한다. 이른 시간, 저들은 무얼 보고 있는 걸까. 불보살에 귀의함으로써 극락왕생을 얻고자 하는 걸까? 어찌 해 볼 수 없는 삶의 고통을 잠시나마 여의고자 하는 걸까? 다 쓸데 없는 생각! 이 순간 정갈해진 마음, 그 하나면 족한 것을!

폐사 위기에 몰린 사찰
참선수행 본당으로 개혁


· 미황사, 템플스테이 시작한 곳

지금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미황사는 주목받는 존재다. '세상과의 호흡'이라는 사찰 운영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줬다는 평가에서다.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먼저 템플스테이를 시작한 절 중 하나이며, 한문학당, 참선수련회, 음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반 대중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장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매달 여는 7박8일간의 '참사람의 향기'는 깊이 있고 체계적인 선수행으로 전국 불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땅끝마을로 불리는 곳의 이 작은 사찰에 사람이 몰려들게 한 주인공은 금강(45) 스님이다. 17세 때 해남 대흥사로 출가해 해인사, 범어사를 거쳐 중앙승가대 총학생회장, 전국불교운동연합 부의장, 범종단개혁추진회 공동대표, 청정승가를위한대중결사 사무총장 등을 맡았던 인물이다. 지금은 미황사 주지로 있다.

새벽예불 뒤 아침 공양을 마치고 그에게 한 이야기 듣자 청했더니 자기 방으로 이끌었다.

"스님도 고민이 있으신가?" 물었다. "지금 시대에 불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늘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1994년도 서울에서의 종단개혁 때 늘 중심에 있었고, 그 때 한국 불교의 문제가 뭔가, 왜 이리 싸워야 하나, 의문이 들었단다.

"그때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스님들도 현대적 전문 역량이 필요하다는 거. 또 하나는 그에 맞는 사찰 모델이 없다는 거. 현대에 맞는 제대로 된 지성인의 역할, 대사회적인 역할. 수행에만 몰두하는 분들은 많지만 세상 사람들과 호흡하고 소통할 수 있는 스님들도, 그런 사찰도 드물다, 그런 생각을 했었죠."


미얀마 선원서 처음 착안
참사람 운동 펼쳐나가



· 20년 전만 해도 폐사의 '몰골'

8세기 중엽 신라 때 창건됐다고 하지만, 20년 전만 해도 미황사는 거의 폐사였다. 1989년에는 급기야 머물던 주지가 떠나 버리면서 절이 비게 됐단다. 그때 금강 스님이 미황사에 왔다."2년 동안 온통 일만 하고 살았죠. 나무 베고 축대 쌓고…. 그 때 여기 아래마을 사람들은 30~40년 진 자기들보다 지게를 더 잘진다고, 나보고 지게스님이라고 불렀어요. 하하~."

1990년대 들어 그는 다시 미황사를 떠나 승가대 다니고, 참선공부도 하고, 종단개혁에 참가하고 그러면서 떠돌았단다."그러던 중 문득 더 이상 내가 종단에 할 일은 없다, 내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죠. 마침 백양사 서옹 큰스님이 불러서 갔습니다. 20세기는 물질과 욕망, 과학 요런데 매몰돼 있다 보니까 우리 삶이 큰 위기인데, 서옹 스님은 수행력으로 다시 본래 참마음으로 회복해야 된다, 그런 늘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 이건 수행운동이다. 그래서 저도 참선공부도 하고, 일반인들에게 참선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며 살았죠. 99년도까지."

그는 1995년에 미얀마 양곤에 있는 마하시 선원에 갔었고, 거기서 충격을 받았다.

"부산으로 친다면 범어사쯤 되는 절이었죠. 그런데 그 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사람도 누구든 오면 다 받아줘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스님이건 일반인이건. 비용도 받지 않아요. 보시로 할 뿐이야. 스승이 정해져서 매일매일 수행점검을 해주고 가르침도 내리고 그러는 거예요. 그런 곳이 세상에 어딨나. 충격이었죠. 수행법으로 친다면 한국의 전통적인 간화선 수행이 최고의 발전된 수행법인데. 이것을 스님들만의 수행으로 할 게 아니라 일반인들에에게 쉽게 참선을 할 수 있도록 하자. 이게 한국불교의 생명이다. 그렇게 생각을 했죠. 한국의 참선수행법을 가지고 일반인들이 늘 수행할 수 있는 곳을요."


· 선을 어떻게 일반에 전할 것인가 '골몰'

그는 선을 어떻게 하면 일반인들에게 쉽게 전해줄 것인가, 를 화두로 삼고 지냈단다. 참사람운동은 그리 시작됐단다.

"2000년에 미황사 들어와서 주지 맡으며 바로 적용할 수가 없고 그래서 한문학당이란 걸 운영했고, 2002년부터 템플스테이, 2005년도부터 참선수행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참사람의 향기'라 이름붙였는데, 사람을 지금 그대로 봐요. 사람 그 자체를 매일 매일 인정한다는 건 매일 매일 그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거죠. 그러면 대화가 되어지죠. 이렇다 저렇다 분별과 선택의 사고가 아닌 겁니다. 본래적 입장에서 선택적 사고가 있지 않는, 그런 사고의 전환! 참사람 운동은 그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선을 통하지 않고는 어려워요."

한국불교가 선 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으니 돌려놓아야 되지 않나, 그런 지적이 있다고 하니 한국에서는 선 위주 불교가 된 적이 없다는 말을 했다.

"선을 최고라고만 하지 선을 한 사람이 누가 있냐고. 제대로 선을 하지는 않죠. 참선을 하고 있으니, 나는 수행자다, 수행자의 대우를 바라거나, 그것이 최고라고만 하지, 실제 선이 일반화 된 적이 한 번이 없는 거예요. 적용이 안되고 있는 거야. 선을 가지고 너무 고준한 걸로 생각을 할 뿐이라는 거죠. 부처님의 가르침은 결국 가치전환이에요. 탐진치의 삼독심을 제거하라 이거예요. 가치전환 수행의 가장 발달된 방법이 참선수행인데, 스님들은 단지 선방에서 참선이라는 걸 하고 있을 뿐이에요. 선방이 위대한 게 아니란거죠. 수행방법을 충분히 세상사람들에게 전해야는 거죠. 한국의 스님, 사찰은 그 점을 분명히 해 둬야 해요. 왜 최고의 방법을 놔두고 사람들이 딴 것을 수행토록 버려 두느냐 말입니다."

무언가 짐작은 되나 뚜렷한 이해가 어려운 말이라 곤혹스런 표정으로 있으니, 그가 웃으며 말했다. "하늘 참 맑게 파랗지 않아요? 땅끝마을 와서 저런 하늘 보고 가면 됐지, 뭘 고민입니까!"

해남=글·사진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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