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국격? 똑똑히 보라, 이 가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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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난 / 김수현 외

부산 도심의 한 빈민촌. 우리나라에 가난한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많다. 선진국 운운하며 외면하고 덮을 것이 아니라 드러내 놓고 사회 전체로 심각히 고민해야 할 문제다. 부산일보 DB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다룬, 딱딱하지만 꽤 묵직한, 그래서 꼭 읽어야 될 것 같은, 그런 학술서가 나왔다.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부교수와 이현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 손병돈 평택대 사회복지학과 부교수가 함께 쓴 '한국의 가난-새로운 빈곤, 오래된 과제'(한울아카데미/2만3천원)다.

책은 묻는다. 한국은 가난에서 벗어났는가? '아니올시다'라고 책은 답한다. 현 정부가 "원조 받던 나라로서는 최초"라며 OECD 개발원조위원회 가입을 자랑하는 판에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책이 보여주는 수치는 그 답을 수긍케 한다.

한국 빈곤가구 800만명

비정규직·재개발정책 등

사회적 원인서 답 찾아야


2007년 기준 한국의 가처분소득 기준 빈곤율(중위소득의 50%가 안되는 가구소속 인구의 비율)은 16.5%로 추산됐다. 2007년 한국 인구가 4천850만명 정도였으니, 약 800만명 정도가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부산·울산·경남 전체에 해당하는 인구가 기본적인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힘든 빈곤 상태라는 이야기다. 더욱이 2008년 세계적 경제위기 이후 빈곤율은 현저히 늘어나는 추세다.

노인 문제에 이르면 빈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2007년 기준 가처분소득 기준 노인 빈곤율은 35.6%로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에는 정부의 사회복지 지원금이나 세금감면 등의 혜택이 고려된 수치다. 이들을 뺀 시장소득 기준으로는 45.5%가 빈곤 노인으로 분류된다. 그런 노인들은 "밤에 불도 한 번 안 켜"고 "지독하게, 그냥 되는 대로" 살고 있다.

거기다 노숙인, 결혼이주 여성,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등으로까지 시선을 돌리면 한국 사회의 가난 문제는 "선진국", "OECD", "국격", "비전" 따위 호사스런 말잔치로 덮어질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책은 다시 묻는다. 남부럽지 않게 산다는 한국이 왜 그런가? 개인의 게으름과는 관련이 없다는 게 책의 관점이다. 가난을 정확히 바라보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한데, 책은 "사회적 원인이 누적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 최근 급속히 양산되고 있는 점이 그 증거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이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된 것이 그 원인. 정규직은 줄고 비정규직이 양산된 것이다. 비정규직은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지위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가난하다.

가난 중 제일 오래고 깊은 고통이 주거 가난이다. 소득이 낮을수록 주거비 부담이 큰데, 설상가상으로 대도시 재개발이 계속되면서 빈곤층이 살 수 있는 저렴한 주택이 사라지고 있다. 재개발 사업을 한다지만 빈곤층은 오히려 더 열악한 주거지로 내몰린다.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한군데로 몰리게 되는데, 가난한 곳의 자치단체 역시 가난하므로 빈곤층을 구할 복지 혜택도 적다. 결국은 사회적 원인이 가난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책은 주장한다. "다각적 사회안전망과 더 많은 일할 기회, 적절한 노동의 대가가 해법이다. 정치권은 이 영역에서 경쟁해야 하며,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잣대도 여기서 찾아야 한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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