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과 깨침의 보금자리, 종교 건축을 보다] <35>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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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 보다 소박함' 성서 가치 충실한 교회

① 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의 제대부 모습. 은은하고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80여 년의 전통을 가진 성당이 이토록 지역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도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드는 곳이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이다. 대청로 부산근대역사관 맞은편, 얼키설키 복잡한 상가 골목을 몇 차례나 드나들이 해야 겨우 찾을 수 있을 만큼 성당은 가려져 있다. 도로변 상인들에게 물어봐야 대부분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다.

성당의 이재탁 주임신부는 "부산근대역사관 자료실에서 얻은 것"이라며 흑백의 사진을 한 장 내밀었다. 1930년께 현 부산 중구 대청동 일대의 모습. 성당 종탑이 높이 솟아 우뚝하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청동 성공회성당은 소식지에 꼭 실리는 관광명소였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네모난 칸들로 구획지어져 있는 목조 천장 '노아의 방주'상징
제대부 돌쌓는 기법 특이…80년 이상 예배처소 부산·경남서 유일


성당은 작고 소박하다. 200㎡, 그러니까 60평 정도 규모. 부산 중구 대청동 2가 18번지에 붉은 벽돌로 쌓아 올렸다. 종탑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종탑 아래 성당 전면은 벽체와 버팀벽이 육중하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모양새를 갖췄다. 종탑의 십자가는 성공회만의 독특한 모양을 갖고 있는 삼위일체 십자가인데, 원래는 육중한 무쇠로 오랜 시간을 지탱해 왔지만 2년 전 풍파에 파손돼 녹슬지 않는 재질로 바꾸었다.

내부는 입구에서부터 세례대와 회중석, 제대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성공회 예배 양식에 적합한 모양새를 갖췄다. 큰 성당의 화려함보다는 희생과 사랑이라는 성서적 가치에 충실코자 한 흔적이 역력하다. 둥글게 아치 형태로 틀 지운 제대 공간은 특히 그렇다. 반원형으로 둥근 천장에는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한 교차 볼트가 설치됐고 그 아래 십자고상과 제대를 배치했다. 은은한 분위기가 경주 석굴암의 공간을 연상시킨다.

제대부 입구 아치 틀 부분의 돌 쌓는 기법이 특이하다. 톱니바퀴처럼 큰 돌과 작은 돌을 번갈아 쌓았는데, 석축 물림이라는, 옛 성곽 석축의 기법이란다. 웬만한 지진의 흔들림에는 무너지지 않는 탁월한 건축방식이란다.

천장은 나무로 돼 있다. 이재탁 신부는 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모형이라고 했다. 목조 천장이 네모난 칸들로 구획지워져 있다. 모두 120칸이다. 고대 초대 교회의 시작이 120명 성도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이 성당이 처음 건립됐을 때도 그 정도 신자로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종탑 안으로 올라갔다. 외부의 스테인리스 재질과는 달리 안쪽은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80년을 버텨 온 목구조다. 당시 목수의 기술이 뛰어났음을 짐작한다. 종탑의 종은 옛것 그대로인데, 지금도 매 주일마다 대청동 일원에 울린다.

성당이 처음 지어진 것은 1924년의 일이다. 부산에 성공회 교회가 설립된 것이 1903년인데, 변변한 성당 없이 일반 가정집에서 예배를 올렸는데, 카트라이트(Stephen H. Cartwright)라는 캐나다 출신 선교사가 한국에서 풍토병으로 숨지면서 나온 사망보험금으로 비로소 성당을 짓게됐다고 한다. 선교사의 죽음이 바탕이 돼 성당이 지어졌으니, 본인은 물론 그 가족의 선교 의지가 대단했던 것이다.

성당의 형태는 우측 회랑 부분을 제외하고는 건립 당시의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80년 이상된 그리스도교 예배 처소로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부산·울산·경남에서 이 성당이 유일하다(천주교 언양성당은 1932년에 준공됐다). 안타까운 것은 구체적으로 누가 설계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건축됐는지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는 점이다.

때문에, 오랜 기간 성당은 지역 사람들로부터 존재감을 잃어 갔다. 6·25전쟁 때는 피란민 수용시설로, 전쟁이 끝난 1954년에는 성화유치원이 설립돼(10여 년 전 폐원), 오히려 성당 대신 유치원 자리로 기억하는 이가 많은 실정이다. 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허가 상가 건물들이 붙어 있어 성당으로서의 모양새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다가, 3년 전 상가들을 철거하고 나서야 비로소 확연히 성당 건물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재탁 신부로서는 "부산 사람들이 오히려 잘 모르고 인천 등 외지에서 근대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관심 부족과 일제시대 건물이라는 반일감정으로 제대로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고, 성공회 내부에서도 자체 교구 역사에 대한 연구가 일천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당 측은 현재 등록문화재 지정을 문화재청에 신청 해놓은 상태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건축물로서의 위상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갖추어 신고!' 에페소서의 이 한 구절은 성공회 부산주교좌 성당이 내세우는 표어다. 성당의 제 모습 찾기를 통해 부산 복음의 중심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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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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