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 영화] 땅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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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기 가득한 귀농여성들의 삶

'귀농'이라는 말이 있다. 도시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이주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을 왜 이사나 이주라고 말하기보다는 "농촌으로 돌아가다"는 뜻을 지닌 이 특별한 용어를 통해 지칭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농촌은 우리 문화에서 자주 '고향'과 같은 곳으로 상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경우 '고향'은 장소일 뿐 아니라 과거의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와이드앵글 부문에 출품된 영화 '땅의 여자'는 부산에서 대학을 마치고 경남 지역의 농촌으로 이주하여 살고 있는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대학 동창생들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귀농'이라는 단어가 주는 과거지향적인 뉘앙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농촌은 향수 가득한 과거가 아니라 이 여성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미래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여성들이 현재의 매 순간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역동성과 생생함은 농촌을 바라보는 바로 이러한 신선한 시각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권우정 감독은 1년 남짓 이 여성들을 만나면서 이들의 삶을 매우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카메라에 담았다. 이 여성들을 "언니"라고 부르는 감독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감독과 주인공들이 맺는 친밀한 관계는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숨은 무기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농촌을 대안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터전으로 삼았지만 영웅도 희생자도 아니다. 때를 놓치면 망치고 마는 농사일과 가사, 육아, 그리고 농민회 활동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서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하고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갈등과 고민을 드러내고 그녀들이 어떤 해결책을 모색하는가를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한 경험이다. 삶의 동반자이자 농민운동의 동지이기도 한 남편과 때론 싸우고 때론 타협하고,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들의 모습은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여성의 재현들과는 달리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여성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은 최근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이어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받은 김미례 감독의 '외박'도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 이러한 여성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공유하는 중요한 특징이 바로 관계의 친밀성과 진정성이다. 영화의 주인공들을 마음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렌즈에 담을 수 있었던 장면들은 픽션 영화가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다. '땅의 여자'는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선택하고 책임지고자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 생기 가득한 대지의 내음처럼 가깝게 다가오는 그런 영화이다. 남인영/동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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