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 영화] 카페 느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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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음과 낯익음의 미학

영화감독 정성일의 첫 장편 '카페 느와르'는 우리에게 두 가지 놀라움을 준다. 하나는 낯설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낯익다는 것이다. 그 낯설음과 낯익음이 만나 기묘한 아이러니를 빚어내는데, 결국 그것은 두 가지 놀라움을 넘어서는 놀라움을 제공한다. 그 모순과 불균질함이 요설이나 콜라주와 같은 표피적 유희를 넘어 문득 진정성을 발하며 기묘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유부녀에 대한 총각의 사랑 이야기이자 제자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교사의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사랑에 상처 받은 사나이와 사랑을 기다리는 소녀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설정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의 이야기 틀을 빌려온 것이다. 하지만 그 배경은 '18세기의 발하임'이나 '19세기의 페테르부르크'가 아니라 '21세기의 서울'이다. '세계소년소녀교양문학전집'이라는 타이틀에서부터 암시되듯이 이 영화에서는 필독서로 읽었던, 혹은 지금도 읽고 있는 서구의 고전을 현재로 가져오고, 그 활자의 세계를 영상으로 풀어낸다. 이 영화가 동시에 지니고 있는 낯설음과 낯익음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우리에게 낯익은 '책'을 낯선 방식으로 '읽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대사이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요? 저는 오랜 생각과 번민 끝에 결심을 했습니다"와 같은 번역체 글말이 배우의 대사로 흘러나올 때 우선은 당혹스럽다. 하지만 그것이 계속 이어질 때,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상상했던 세계가 바로 이것이었던 것 같은 친근함에 사로잡히며 낯설지만 낯익은 감동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가 동경하고 모방하는 유럽문예가 이미 우리 가슴 속 깊이 공유되고 있다는 데 새삼 놀라게 된다.

근대의 한 문학가는 "신문학사는 이식문학(문화)의 역사"라고 했고, 후대의 한 문학사가는 그 문장에서 "식민지 사관과의 기묘한 유착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면 이식이 아닌 문화는 없다. 그러기에 보다 중요한 것은 이식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자기화하는 전유의 맥락이다. 우리는 독일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러시아의 '백야'를 읽지만 그것은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며 번역 자체는 이미 전유의 맥락에 놓인다. 번역된 세계에 감동할 때 그것은 원작에 반응하는 것인 동시에 또 다른 세계로 자기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카페 느와르'를 통해 그 번역된 문예의 세계가 한국영화로 재전유되는 생생한 맥락을 목도하게 된다. 박유희/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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