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화려한 개막식을 열고 있던 지난 8일 밤, 부산 동구 범일동 삼성극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낡아 바스라지는 집기들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손전등과 붓을 들고 마무리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이날 꼬박 밤을 샜다. 오는 16일까지 삼성극장에서 열리는 '극장전 프로젝트' 때문이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젊은 미술인 30여 명이 모인 티-프로젝트(기획 이은호)가 주최해 곧 사라질 극장을 추억하는 전시다.
16일까지 부산 삼성극장
미술인 30여 명 참가
극장에 들어서면 바닥에 유미연이 만든 커다란 동백꽃들이 낙화해 있다. 50년 넘게 자리를 지켜왔던 삼성극장도 동백꽃만큼이나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고, 붉은 눈물을 토하며 모가지가 떨어진 동백꽃처럼 지금은 그렇게 퇴락했다.
동백꽃 바로 옆엔 오후 3시에 멈춰버린 낡은 시계와 필름통 위에서 단편영화가 돌아가고 있다. 독립영화감독 김지곤이 삼일극장 영상기사의 일상을 담은 다큐와 삼성극장을 배경으로 부산의 골목길을 담은 다큐물이다. 1층 화장실은 반짝이 비늘 같은 커튼이 쳐 있는데, 그건 소외된 인간을 표현한 김다인의 그림 속에 등장한 화려한 껍데기들이다.
2층 매점 앞 복도는 가장 빛나는 공간이었다. 사람 머리보다 큰 백열전구 속에 동화 같은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백설공주와 난장이도 있고, 요정들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김다영의 이 작품은 한때 달콤한 기억으로 가득했던 삼성극장을 보는 것 같다. 2층 통로에는 정혜련이 '영자의 전성시대'에 나왔던 주인공의 이미지를 반복 무늬로 만들어 커튼으로 내렸고, 그 옆 버려진 의자 위엔 '그룹 날'이 제작한 아기공룡둘리의 친구 마이콜과 로보트 태권V가 영화 포스터에서 뛰쳐나와 어슬렁거리고 있다.
3층에선 쓸쓸한 도시 뒷골목의 풍경이 엿보인다. 3층 입구엔 김경화가 시멘트로 만든 비둘기집들 위로 비둘기 영상이 투사되고 있다. 3층 비디오실은 냄새가 고약했다. 머리가 셋인 배 위에 바벨탑 같은 거대한 도시를 시멘트 질감을 살려 쌓아올렸는데, 꼭대기의 고층건물들은 천장에 닿을 듯 하다. 3층 흡연실에 설치한 김종철의 작품은 가시들이 벽에서 튀어나온 듯 한데, 이방인의 시선에 움찔거리는 삼성극장을 닮았다. 세상의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듯한 3층 골방에도 오석근이 교과서 속 주인공이었던 철수와 영희의 애정행각을 담은 사진을 숨은 그림처럼 설치해 놨다. 먼지 수북한 간이침대까지 있어 동성애자들이 이용하던 공간이란 소문이 나돌던 곳이다. '아름다운 영상! 성인만을 위한 영화!'라는 극장 문구처럼 퇴락한 삼성극장의 정체성을 보여주던 성인영화관의 이미지는 3층 복도에 설치된 최원준의 '미아리 텍사스 집창촌'의 이미지와도 닿아 있다.
삼성극장 외벽에는 그래피티작가 구헌주가 지름 3m의 원형 금지 표시 속에 굴삭기를 그려넣었다. 기획자 이은호는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중에 정말 잃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을 사람들에게 환기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아참, 전시 기간 중에는 성인영화 대신 범일동 일대를 다룬 김희진 감독의 '범일동 블루스'가 상영된다. 010-2803-3678.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가 화려한 개막식을 열고 있던 지난 8일 밤, 부산 동구 범일동 삼성극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낡아 바스라지는 집기들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손전등과 붓을 들고 마무리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이날 꼬박 밤을 샜다. 오는 16일까지 삼성극장에서 열리는 '극장전 프로젝트' 때문이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젊은 미술인 30여 명이 모인 티-프로젝트(기획 이은호)가 주최해 곧 사라질 극장을 추억하는 전시다.
16일까지 부산 삼성극장
미술인 30여 명 참가
극장에 들어서면 바닥에 유미연이 만든 커다란 동백꽃들이 낙화해 있다. 50년 넘게 자리를 지켜왔던 삼성극장도 동백꽃만큼이나 화려했던 시절이 있었고, 붉은 눈물을 토하며 모가지가 떨어진 동백꽃처럼 지금은 그렇게 퇴락했다.
동백꽃 바로 옆엔 오후 3시에 멈춰버린 낡은 시계와 필름통 위에서 단편영화가 돌아가고 있다. 독립영화감독 김지곤이 삼일극장 영상기사의 일상을 담은 다큐와 삼성극장을 배경으로 부산의 골목길을 담은 다큐물이다. 1층 화장실은 반짝이 비늘 같은 커튼이 쳐 있는데, 그건 소외된 인간을 표현한 김다인의 그림 속에 등장한 화려한 껍데기들이다.
2층 매점 앞 복도는 가장 빛나는 공간이었다. 사람 머리보다 큰 백열전구 속에 동화 같은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백설공주와 난장이도 있고, 요정들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김다영의 이 작품은 한때 달콤한 기억으로 가득했던 삼성극장을 보는 것 같다. 2층 통로에는 정혜련이 '영자의 전성시대'에 나왔던 주인공의 이미지를 반복 무늬로 만들어 커튼으로 내렸고, 그 옆 버려진 의자 위엔 '그룹 날'이 제작한 아기공룡둘리의 친구 마이콜과 로보트 태권V가 영화 포스터에서 뛰쳐나와 어슬렁거리고 있다.
3층에선 쓸쓸한 도시 뒷골목의 풍경이 엿보인다. 3층 입구엔 김경화가 시멘트로 만든 비둘기집들 위로 비둘기 영상이 투사되고 있다. 3층 비디오실은 냄새가 고약했다. 머리가 셋인 배 위에 바벨탑 같은 거대한 도시를 시멘트 질감을 살려 쌓아올렸는데, 꼭대기의 고층건물들은 천장에 닿을 듯 하다. 3층 흡연실에 설치한 김종철의 작품은 가시들이 벽에서 튀어나온 듯 한데, 이방인의 시선에 움찔거리는 삼성극장을 닮았다. 세상의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듯한 3층 골방에도 오석근이 교과서 속 주인공이었던 철수와 영희의 애정행각을 담은 사진을 숨은 그림처럼 설치해 놨다. 먼지 수북한 간이침대까지 있어 동성애자들이 이용하던 공간이란 소문이 나돌던 곳이다. '아름다운 영상! 성인만을 위한 영화!'라는 극장 문구처럼 퇴락한 삼성극장의 정체성을 보여주던 성인영화관의 이미지는 3층 복도에 설치된 최원준의 '미아리 텍사스 집창촌'의 이미지와도 닿아 있다.
삼성극장 외벽에는 그래피티작가 구헌주가 지름 3m의 원형 금지 표시 속에 굴삭기를 그려넣었다. 기획자 이은호는 "우리가 잊고 있던 것 중에 정말 잃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을 사람들에게 환기시키고 싶었다"고 했다.
아참, 전시 기간 중에는 성인영화 대신 범일동 일대를 다룬 김희진 감독의 '범일동 블루스'가 상영된다. 010-2803-3678.
이상헌 기자 tto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