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과 깨침의 보금자리, 종교 건축을 보다] <27> 대한성공회 강화읍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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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형식 속에 포용·토착화 정신 오롯

① 강화읍성당 전면부 모습. 전형적 한옥의 형태다. 5개의 앞 기둥에 사찰의 주련 같은 현판이 보인다.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있다는데, 도대체가 읍내 사는 사람들 중 아는 이가 드물다. 누군가 일러 주는대로 가다보니 웬걸, 천주교 성당이다. 찾는 곳은 천주교가 아니라 대한성공회의 강화읍성당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성공회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중간쯤 되는 기독교단이다.

1900년 완공 국내 최고 전통 한옥 성당… 1930년대 이후 맥 끊겨
솟을대문 안쪽 종각 절 같은 느낌 내부는 전형적 바실리카 양식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현존 최고(最古)의 성당. 그래서 성공회 강화읍성당은 건축이나 교회사를 연구하는 이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물어물어 찾아서 대면한 첫 느낌. 흔히 알던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절 또는 향교가 아닌가 싶을 정도여서, 무심코 지나면 강화 사람이래도 성당이라는 생각은 못할 성싶다.

언덕 위에 축대를 견고히 쌓고 그 위에 출입문을 두었는데, 기와를 높히 올린 3칸의 솟을대문이다. 일종의 외삼문으로, 대문짝에 태극의 문양이 선명하다. 안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또 다른 3칸의 문이 나온다. 내삼문이다. 그런데 여기 내삼문에 종을 설치해 놓았다. 교회에 흔한 종탑을 두는 대신 이렇게 입구에 따로 종각 기능의 문을 두었다. 종도 서구 교회의 종이 아니라 전래 불교사찰에 있는 범종의 형태다.

강화읍성당를 짓겠다고 마음 먹은 이는 대한성공회 제3대 주교인 트롤로프(Mark Napier Trollope·1862~1930)였다. 그는 1896년 강화에서 선교를 시작하면서 강화시가지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성당을 짓고 거기에 큰 종을 달아 사방에 평화의 종소리를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성공회 사제들은 영국에서 정식 서품을 받은 사람들로서 상당한 학식과 연륜을 쌓은 상태에서 한국에 들어왔고, 그래서 자기들의 문화를 강요하기보다는 한국의 문화전통 안에서 복음을 이식시키려는 토착화의 입장에서 선교활동을 펴나갔다.

트롤로프 주교 역시 한국의 문화와 풍경 등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갖고 있었고, 특히 한국의 불교에 관심이 많아 관련 논문이나 여행기 등을 다수 썼다. 강화읍성당이 온전하게 한옥의 외양을 갖추게 된 것은 트롤로프 주교의 그런 관심과 역량에 따른 것이었다.

성당은 1900년 11월 15일에 완공됐는데, 동서로 10칸, 남북으로 4칸의 총 40칸 규모로 지어졌다. 궁궐이나 사찰처럼 복잡화려한 양식 대신 수수한 형태로 지붕과 처마를 처리해 단촐하면서도 육중한 느낌이다.

성당 정면부 위쪽 팔작지붕에 현판이 '天主聖殿(천주성전)'이라 씌어 있다. '성당'이 아닌 '성전'으로 이름한 것은 당시 불교의 각 전각건축에 영향받은 때문으로 보인다. 성당 정면 기둥에는 사찰에서 흔히 보이는 주련 같은 5개의 현판을 설치해 놓았다. '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무시무종선작형성진주재·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니 형태와 소리를 먼저 지은 분이 진실한 주재자이시다), '福音宣播啓衆民永生之方'(복음선파계중민영생지방·복음을 널리 전파해 백성을 깨닫게 하니 영생의 길을 가르치도다) 등의 내용으로 어쩔 수 없이 기독교 성구를 담았다.

사찰 같은 분위기는, 내부로 들어서면 일변한다. 육중한 목재로 기둥과 들보가 얽혀 있어 교회로서는 낯설지만, 양측으로 회랑이 길게 나있고 가운데 회중석과 전면부에는 제대를 모신 지성소를 설치한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이다. 지성소와 회중석을 높이도 다르게 하고 칸막이를 설치해 구분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성당 출입문을 들어서면 중간에 돌로 만든 큰 세례대가 있는데, 지성소를 향한 정면에는 '重生之泉'(중생지천·거듭나는 샘물)이라 새겼으며, 그 맞은편에는 '修己(수기) 洗心(세심) 去惡(거악) 作善(작선)'이라 새겨 항상 몸과 마음을 닦아 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을 행하라 가르치고 있다.

벽면 위쪽에는 유리창을 냈는데, 창살을 십자 형태로 만들어 쏟아지는 그 빛에 어리는 그림자가 거룩한 느낌이 들도록 했다. 이는 제대 뒤 예복실로 이어지는 창호창의 창살도 마찬가진데, 예복실에 불을 켜면 창호창을 통해 십자가 형태가 은은하게 제대 위로 비치게 해놓았다.

제대 뒤 기둥 위쪽에 '萬有眞原'(만유진원)이라 쓰인 작은 현판이 또 보인다. 하느님의 존재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천지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의 참 근원이라! 오늘날 교회에서는 보지 못할 것이라 그 느낌이 각별했다.

강화읍성당은 성공회를 비롯해 국내 여러 기독교 교회 건축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쳐 한옥 교회 건축이 뒤를 잇게 된다. 하지만 1930년대를 지나면서는 그 맥이 끊겨 버린다. 현재 강화읍성당을 지키고 있는 이갑수 신부는 그 점이 아쉽다고 했다. 진정한 복음은 자신의 것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가치를 포용해 변화시키는 것일 텐데, 지금 교회들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느님의 가르침이 두루 흐르는 것은 만물과 동포의 즐거움을 두루 포용함과 다름 아니라!' 성당 정면 주련처럼 서 있는 5개 현판 가운데 하나의 내용이다. 신자 수 겨우 100명 안팎의 작은 강화읍성당이 100년 동안 현재의 모습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그렇게 요약된다.

임광명 기자 kmyim@busa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으로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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