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케 란죠 '이무리' 가상 별세계로의 황홀한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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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역사물 분위기 차용 줄거리 전개

SF는 매혹적인 장르다. 작가는 마치 신이라도 된 듯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주물러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연성 있는 드라마로 줄타기만 잘한다면 SF는 현대극의 고만고만한 이야기 전개에 지쳐버린 독자들을 황홀한 별세계로 인도할 수도 있을 터.

미야케 란죠의 '이무리'(중앙books)는 그런 의미에서 영리한 SF다. '룬'과 '마지'라는 가상의 행성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고대 역사물의 분위기를 그대로 차용해와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등장 인물들의 복색은 중세 말기를, 철저한 계급사회의 묘사는 그리스·로마 시대를 연상케 한다. 낯익은 대하 역사극 분위기를 소스 삼아 탄생한 '이무리'는 성공적인 퓨전 요리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룬'은 4천년 전 민족 간의 전쟁 끝에 꽁꽁 얼어버린 행성. 이코르인과 대립하던 카마인들은 전쟁에서 승리하자 무엇이 두려웠는지 행성을 동결한 채 이웃 행성 '마지'로 거쳐를 옮겼다. 그리고 '침범술'이라 불리는 정신 제어기술로 이코르인들을 노예삼아 찬란한 번영을 누려오고 있다. 4천년 전의 역사는 최고 계급인 '주사'들을 제외하곤 모조리 열람이 금지된 상태다.

4천년은 전쟁의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세월이었다. '룬'의 얼음이 녹고 카마인들은 고향인 '룬'으로의 귀환을 서두른다. 귀족 계급 '주사'의 아들인 듀르크는 지배 계급을 양성하는 기숙학교에 입학한다. 뛰어난 '침범술' 재능을 가지고 단연 두각을 드러내는 듀르크. 그는 학생들을 대표해 선생인 라르고와 함께 '룬'으로 가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곳에서 듀르크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소녀 뮤바를 만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꿈 속에 등장하던 뮤바가 정작 눈 앞에 나타나자 듀르크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행성 간의 거리마저 뛰어넘어 정신적으로 이어져 있던 두 사람의 비밀은 무엇일까.

과분한 번영에 카마인들의 정신은 붕괴되기 시작하고 착취당하던 이코르인들은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낸 제3의 종족인 이무리. 듀르크는 숨겨진 역사와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의 무게를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작가 미야케 란죠는 1998년 월간 '모닝'으로 데뷔했다. 1999년 개그만화 '붓센'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해 2002년 '북극 경비대'에서 가까운 미래를 무대로 한 SF 액션에 첫 도전했다. "한국어판 출판 소식을 듣고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작가인 저보다 먼저 한국에 가 있는 '이무리'를 잘 부탁합니다"라는 작가의 자필 인사말이 귀엽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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