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 루시힐'] '허당' 알파걸, 개인기가 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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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12월, 추운 겨울날 영화 홍보차 한국을 찾아 "한국사람들은 모두 멋쟁이"라고 한껏 치켜세웠던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 르네 젤위거.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로 전 세계 20~30대 여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녀가 신작 '미쓰 루시힐'(9일 개봉)을 들고 돌아왔다.

그녀가 연기한 루시힐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 '브리짓 존스'가 로맨틱한 연애를 꿈꾸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였다면 '미쓰 루시힐'에서는 사회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남자는 없어도 그만'이라고 외치는 골드미스 혹은 알파걸이다.

영화는 도시의 커리어 우먼이 한적한 시골로 파견돼 그곳 마을 사람들과 얽혀 좌충우돌하는 에피소드를 담아낸다. 마이애미의 대형 제과업체 본사 직원 루시힐(르네 젤위거)은 잘나가는 직장 여성. 미네소타의 작은 도시에 있는 공장이 생산성 부진으로 골머리를 앓자 본사는 루시힐을 공장 관리자로 파견한다.

마이애미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혹한과, 호수가 얼면 일과를 내팽개치고 얼음낚시를 하러 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영 적응하지 못하는 루시. 게다가 노조위원장 테드(해리 코닉 주니어)와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가 사이가 틀어지면서 힘겨운 시간을 겪는데….

'미쓰 루시힐'의 최대 볼거리는 주연 배우 자체다. 브리짓 존스로 펑퍼짐한 몸매, 마이너스급 패션센스, '성공'에는 관심 없는 여자를 연기했던 젤위거는 이번 영화에선 철저한 자기관리와 '출세'를 위한 욕심으로 똘똘 뭉친 여자로 변신한 것.

얇은 옷차림에 눈발 섞인 칼바람을 맞거나 실수로 '노브라' 차림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등 당황스러운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호들갑을 떨면서 속사포 같이 쏟아내는 대사를 보면 '역시 젤위거'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뿐만 아니라 골드미스의 완벽한 차림새로 구르고 엎어지는 슬랩스틱 개그까지 선보이며 관객들의 웃음을 유도한다.

그러나 주연 배우의 개인기에만 의존하느라 이야기에 두꺼운 살을 붙이고 흥미롭게 이어나가는 데는 크게 심혈을 기울이지 않은 느낌을 준다. 사건을 벌이고 마무리하기까지 무난하게 이야기를 끌어가긴 하지만 아기자기한 재미를 줘야 할 만남과 갈등, 그리고 화해의 과정도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이 시대 최고의 평범녀 캐릭터로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젤위거가 또 한번 실력발휘를 할 수 있을까.

김호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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