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시네마테크 부산과 '공처가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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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관규 영화평론가·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

유현목 감독의 '공처가 삼대'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상영됐다는 사실은 이 영화와 관련된 인물들의 개인적인 기억이 역사로 편입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사진은 '공처가 삼대'의 한 장면. 사진제공=시네마테크 부산

영화관에 가는 것은 고향 친구와 모범 음식점에서 식사하는 것만큼 즐겁다. 영화 감상은 좋은 작품이 8할을 결정하며 나머지 2할은 어디서 누구와 보느냐로 정해진다. 영화관이 바닷가에 자리하고 접하기 힘든 고전영화면 기쁨은 배가 된다.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유현목의 '공처가 삼대'를 상영했다. 초등학생들이 만화방에 가는 것처럼 영화 애호가들은 시네마테크 부산을 출입한다. 시네마테크 부산은 매달 영화 사랑방을 운영한다. 이번 달의 작품은 '공처가 삼대'다. '공처가 삼대'는 이미 본 영화였다. 영화 장면은 익숙했으며 배우의 연기는 여전히 경이롭다. 스크린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필자의 머릿속에도 필름이 돌아가고 있었다.

유현목 감독님이 떠올랐다. 유현목은 '오발탄'과 동의어였으며 예술영화와 등호를 그었던 분이다. 하지만 유 감독의 개인사는 묵은 일기장의 기록처럼 덜 알려졌다. 유 감독은 피에르 슈날의 '죄와 벌'을 극장에서 거듭해서 열네 번을 보고 나서 감독이 되기로 작심했다. 하지만 감독의 길은 험했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충무로의 조감독 신분은 미래도 생계도 막막하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6·25전쟁이 터졌고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란 갔다. 부산 피란 시절 그는 청년실업자와 동의어인 조감독이었으며 유 감독의 모친께서는 영도다리에서 노점상으로 생계를 꾸려 가셨다. 유 감독은 모친이 교통순경에게 단속당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감독의 길을 포기하고 가족 부양에 나설까 고심했다고 한다. "효도하는 데 세월과 마음을 뺏기면 자기 일을 열심히 못하게 된다"는 모친의 격려로 다시 영화에 전념하여 1958년 '잃어버린 청춘'으로 데뷔했다.

그는 절망의 늪지에서 충무로의 대표 감독으로 부상했다. '잃어버린 청춘'은 부산일보가 제정한 제1회 부일영화상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부일영화상의 치적 중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유현목의 발견'이다. 유현목은 부일영화상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거듭 수상하면서 거장의 자리에 다가갔다.

'공처가 삼대'의 주인공 고은아도 부산 출신이며 '갯마을'로 부일영화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김수용 감독에 따르면 고은아는 "저는 부산의 딸입니다. 여러분들의 따뜻한 품속에서만 성장할 수 있는 거라예. 아직은 햇병아리입니다"라는 인상적인 수상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여기서 부일영화상의 산파역을 밝혀야 할 것 같다. 그분은 바로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창립을 주도했으며 부산일보 문화부장을 지낸 허창 선생이시다. 작고한 허창 선생은 현재 시네마테크 부산을 이끌고 있는 허문영 원장의 부친이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 피란 시절 유 감독과 신인배우 고은아와 부산 영화계에 대를 이어 봉사하는 두 분이 떠올랐다. 문화적 기억은 개인의 기억과 예술의 재현을 통해 역사로 편입된다. 부산은 영화제의 도시이지만 한국영화의 역사라는 유전이 아직 시추되지 않은 문화의 보고이기도 하다. 영상도시 부산 만들기도 중요하지만 부산 문화의 역사 찾기도 게을리할 수 없다.


필자 약력=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 1998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당선. 한국 코미디를 전공했고, 감독론과 독립영화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독립영화 연출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서에 '10인의 한국영화 감독', '예술영화는 없다', '한국단편영화의 이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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