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노인들 콜라텍으로 몰리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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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칫밥 싫어 천원 내고 한나절

"콜라텍은 노인들의 안식처야. 나이 들어 직업도 없지, 집에 있으면 며느리 눈치밖에 더 보여? 1천원만 내면 음악도 듣고 운동도 하고 사람도 만나고. 이만한 데가 어딨어?"

지난달 28일 오후 2시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의 A콜라텍에서 만난 김민식(70·가명)씨. 9년 전 다니던 회사를 정년퇴직한 뒤 소일하던 그는 일주일에 3~4번씩 콜라텍을 찾는다고 했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 콜라텍으로 몰리고 있다. 1990년대 부산지역 대학가에 성행했던 '원조' 콜라텍은 당시 10~20대들이 술 대신 콜라를 마시며 저렴하게 춤을 즐기던 곳이었다. 대학가에서 자취를 감춘 콜라텍이 최근 '성인 콜라텍' 형태로 변질돼 부산진구 부전시장 일대에만 10곳 안팎이 성업 중이다.

부전시장 일대에만 10곳 성업 중
지하철서 가까운 곳 주말 1천500명 몰려
안전 사각 '불안한 댄스'사고 위험도



이날 오후 3시께 인근 B콜라텍. 2~3층 두 개 층으로 나뉜 이 콜라텍에는 무려 1천여명의 노인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어두컴컴한 무대는 발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였다. 상당수는 춤출 공간이 없어 엉거주춤 손만 잡고 서 있었다. 자칫 화재라도 난다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우려마저 있는 상황이었다.

한때 사교댄스 강사로 활동했다는 박영모(60·가명)씨는 "여기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실 스텝을 밟기조차 힘들다"며 "그저 외로운 노인들이 시간을 때우고 친구나 짝을 찾으려 기웃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말이면 1천500명 이상의 노인이 온다는 이곳은 지하철이 가까워 부전시장 인근 콜라텍 중에서도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다.

소파에 앉아 파트너를 기다리던 최종오(63·가명)씨는 "할 일 없는 노인들이 공짜 지하철 타고 놀러 온다고 보면 된다"며 "할머니들은 시장 보러 온 김에 들러서 놀다 가기도 하는데 그게 뭐 나쁜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노인들은 1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콜라텍에 들어온 뒤 콜라 대신 5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 국수나 밥 같은, 3천~4천원짜리 음식도 사먹을 수 있게 돼 있다. 주류와 안주도 판매된다.

한 콜라텍 관계자는 "노인들이 종일 부담 없이 놀다 갈 수 있는 장소인데 왜 불건전한 곳으로 보는지 모르겠다"며 "여기 오는 분들은 대부분 정장을 갖춰 입고 와서 매너를 지키며 놀다 간다"고 항변했다.

그렇다면 노인들은 왜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이 아닌 콜라텍을 찾는 것일까? 이미순(65·여·가명)씨는 "놀기 좋고 저렴하고 재밌다"며 "술 취한 사람은 상대방이 싫어하기 때문에 술 마시는 사람도 많지 않아 분위기도 좋다"고 말했다.

한동구(72·가명)씨는 "노인복지관은 뭔가를 배우러 가는 곳이지만 여기서는 자유롭게 즐길 수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사회복지기관 관계자들은 노인복지관의 한정된 프로그램이 노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 김채영 부회장은 "경로당에서는 고스톱 치는 것 말고는 따로 할 일이 없고, 노인복지관 프로그램은 전국이 일률적"이라며 "즐기고 싶고 이성 친구도 사귀고 싶은 노인들의 욕구를 인정하고 콜라텍 같은 음지의 공간을 양지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자영 기자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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