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발견할 때도…" 어른들의 보물찾기 '지오캐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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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의 보물찾기 - 지오캐싱 동행기 】

자투어 회원들이 부산 기장군 시랑리 어촌체험마을 앞 야산에서 GPS 단말기를 들여다보며 보물 좌표를 확인하고 있다.

"북위 35도09분40.8초, 동경 129도11분05.8초. 바로 여기예요. 이 근처에 보물이 있으니까 샅샅이 뒤져봅시다." 부산 해운대 달맞이 고개의 추리문학관 앞 삼거리. 휴대용 GPS 단말기 화면 속 화살표가 심하게 요동 쳤다. 보물 정보가 기록된 지령지와 지도, GPS를 나눠 든 '보물 탐사꾼'들의 눈빛이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으로 변했다. 가까운 곳에 보물이 있다.

부산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여행 동호회 '자투어(www.jatour.com) 지오캐싱' 소모임 8명의 회원들은 운영자 임호일(44)씨의 지시와 함께 주위의 지형지물을 살피며 탐색전에 들어갔다. 이번 목표물은 필름통보다 작은 크기의 '나노급 캐시'. 전봇대와 주택가 담벼락, 수풀이 우겨진 옹벽이 유력한 포인트다.

도둑 오인 받아 가끔 경찰 신세
캐시 회수하면 딴 보물 넣어둬야
'독도 코인'은 일본서 종종 '증발'
보물 감춘 곳이 바로 진짜 보물


GPS에 정확한 좌표값(위도, 경도)을 입력하면 보물이 숨겨진 위치인 '그라운드 제로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GPS 별로 통상 3~10m까지 오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수색 구역은 상당히 넓어질 수밖에 없다.

주택가 빈터의 잡초더미를 헤집고 전봇대와 가로등 틈새 사이를 뒤졌다. 수색 개시 30분이 지났지만 좀처럼 보물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 친구는 캐시를 번번이 특이한 곳에 숨겨놔서 찾기가 쉽지 않아요." 곳곳에서 '못 찾겠다 꾀꼬리'가 터져 나온다.

"뭐 하시는 분들인가요?" 한 회원이 도로변에 설치된 주택 상수도 계량기 뚜껑을 열어 안을 들여 보고 있는 사이 결국 나이 지긋한 건물 관리인이 나왔다.

이번처럼 주택가나 도심지에서 캐시를 찾는 경우 도둑으로 오인받기 딱 좋다. 임씨의 경우 서면 롯데호텔 내 조경물 밑에 있는 캐시를 찾으러 갔다가 수상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로 두 번이나 경찰서에 연행되기도 했다. 동호회의 레저 활동이라고 열심히 설명해도 쉽게 이해 못하는 분들이 많다.

최석원(31)씨는 "보통 여자 친구가 귀고리를 잃어버렸다고 둘러대는 데 같이 찾아주겠다고 친절을 베푸시는 분들이 많아 난감해요. 옛날 같았으면 비밀 지령을 찾는 북파 간첩으로 오인돼 어디 지하실로 끌려갔을 지도 모르죠."라고 웃었다.

"빙고! 찾았다."

미션 시작 50분 만에 담쟁이 넝쿨이 우거진 옹벽 틈새를 뒤지던 이정아(32·여)씨가 환호성을 질렀다. 엄지 손가락만 한 크기의 필름통이 손에 들려 있었다.

'보물'이라곤 해도 작은 것은 필름통에 들어 있는 로그북(두루마리 메모지)이 전부다. 로그북은 캐시를 숨긴 사람의 정보나 캐시를 찾은 사람의 기록을 적은 것. 올해 3월에 숨겨놓은 건데 지난 7월 26일에 대구 팀이 다녀간 뒤 다섯 번째다.

발견 날짜와 팀명을 적은 회원들이 다시 캐시를 제자리에 숨겨놓았다. 그리고 보물을 찾은 곳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다. 보물을 찾았다는 '인증샷'이자 다음에 찾아올 팀들을 위한 힌트가 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미션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하는 바람에 회원들의 마음이 바빠졌다. 부산에서 울산을 거쳐 경주까지 1박2일 동안 모두 45개의 캐시를 찾아야 한다. 많게는 하루에 53개까지 찾은 적도 있다.

다음 캐시는 부산 기장군 시랑리 공수마을 어촌체험마을. 잔잔한 바다 위에 평화롭게 떠 있는 고깃배와 솔향을 머금은 선선한 바람이 정겹다. 버려진 해안 초소 옆 갯바위 돌무더기 틈새를 뒤지던 회원들이 사탕 상자 크기의 캐시를 5분 만에 찾아냈다. 용기 안에 들어 있는 작은 마스코트 인형을 회수하고 대신 이전에 찾았던 코인을 넣어두었다.

전 세계의 지오캐셔들이 만든 코인에는 고유 번호가 매겨져 있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실시간으로 위치 추적이 가능하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코인도 있는데 국내에서는 '독도는 우리 땅'이란 문구를 새긴 '독도 코인'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직지심경이 새겨진 '직지 코인'이 유명하다. 그런데 독도 코인의 경우 세계 곳곳을 잘 돌아다니기도 일본에만 가면 '증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기장군 해동 용궁사의 해안산책로 돌담길에서도 캐시 하나를 발견했다. 부산에 놀러왔다가 용궁사의 해안 절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다른 외국인들도 이곳을 꼭 들러봤으면 한다는 한 미국인 지오캐셔의 소망이 담긴 메모가 들어있었다.

네 번째 캐시는 임랑 해수욕장 가는 길에 있는 도로변의 갯바위. 지령에 의하면 영화 '친구' 촬영지란다. 어린 시절의 동수와 준석이 수영하는 장면을 찍은 곳이라는 설명에 "어? 거기 다대포 아니였어"라고 회원들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캐시는 도시의 공원, 박물관, 등산로, 숲 속 샛길은 물론이고 무인도, 공동묘지 등 특이한 곳에는 어디든 다 있다. 특히 관광명소나 유적지, 이름난 절경지 등에는 하나씩 꼭 숨겨져 있는데 아름다운 풍광을 공유하고픈 지오캐셔들의 마음이 담긴 것이다. 보물이 감춰진 장소 자체가 진짜 보물인 셈.

대변초등학교 화단가 벤치 밑에도 캐시 하나가 숨겨져 있었다. 한밤에 찾아간 학교는 분위기가 묘하다. 밤 12시가 되면 유관순 누나 동상이 어슬렁거린다는 '학교 괴담'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주로 밤이슬을 맞으며 캐시를 찾으러 다니다 보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도 많다. 한번은 인적이 드문 농촌의 폐가를 찾았는데 파란빛이 감도는 랜턴을 들고 집안을 수색하던 회원 한명이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질러대는 바람에 회원들의 심장이 쪼그라들기도 했다.

대구의 한 폐가에서는 숨진 지 오래된 사체를 발견하기도 했다. 사람을 죽인 지오캐셔가 시체를 보물로 숨겨 놓은 것 아니냐는 괴담이 한동안 떠돌았다.

가을이 깊어가는 해안 풍광을 따라 14번 국도를 타고 울산과 경주를 헤집고 다닌 이번 탐사에서 회원들은 경주 탈해왕릉에 있는 '대한민국 1호 캐시'를 비롯해 이틀 동안 모두 30개의 보물을 찾았다.

모기에 뜯기고 가시에 찔리고 발이 부르트는 고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니는 이유는 뭘까?

"보물을 찾는 것에만 집착하다 보면 금세 지치고 질려버리고 말아요. 보물을 찾아 가는 과정 자체가 좋은 여행이자 트레킹이 되는 거죠. 숨긴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 추억을 함께 나누는 기쁨. 지구촌을 하나로 묶어주는 고리이자, 진정한 보물이죠."

글=박태우 기자 wideneye@ busan.com

사진=문진우 프리랜서 moon-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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