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입학생 배출한 대진정보통신고 로봇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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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진정보통신고 로봇 동아리 - 로봇피아 】

차량형 로봇 제작에 몰두 중인 '로봇피아' 학생들.

남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공룡과 로봇이다. 공룡이 화석화된 과거를 의미한다면 로봇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머지않은 미래다. 아니 이미 현실로 파고들었다.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는 로봇청소기와 아이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교육용 로봇부터 산업과 의료 현장에서 사람의 눈과 손을 대신하고 있는 첨단 로봇들까지 로봇 세상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다. 로봇 제작 붐도 뜨겁다. 국내에서 로봇 제작 취미활동 인구는 1만 명이 넘는다 로봇대회가 열릴 경우 부산 예선에서만 1천400명이 몰릴 정도다. 오늘도 로봇과 사랑에 빠진 '미래의 김박사'들은 '태권 V'나 '마징가 Z' 같은 거대 로봇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2005년 설립 초고교급 동아리
15명 회원 새벽 하교 일쑤
카이스트 입학 확정 조민홍군
국제로봇올림피아드 입상도

'휘이익~ 휙.' '삐릭 삐릭 삐릭.'

모터 소리와 함께 작은 체구의 로봇들이 경쾌한 금속성의 마찰음을 내며 춤을 춘다. 다리를 쩍 벌리고 게걸음을 치는가 하더니 책상 서랍 속 휴대폰처럼 부르르 진동을 일으키며 벨리댄서 같이 격렬하게 떨기 춤을 춘다. 긴 팔을 땅에 짚고 고릴라처럼 뒤로 텀블링을 하더니 다시 벌떡 일어서서 몸을 흔든다. 볼트와 철판으로 구성된 드럼통형 몸매의 로봇들이지만 관절의 움직임만큼은 놀랄 정도로 유연하다.

부산 금정구 대진정보통신고의 로봇동아리 '로봇피아'의 동아리방은 요즘 외계 침공을 대비하는 '지구 방위 사령부'처럼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이 동아리 학생들은 요즘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집에 가기 일쑤다. 다른 학생들 다 가는 수학여행도 포기했다. 부산에서 열리는 '로보 월드'의 휴머노이드 로봇 경진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짜내야 하기 때문이다.

"로봇 댄싱은 절도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동작으로 음악의 리듬을 타야 해요. 아이돌 그룹처럼 여러 대의 로봇들이 프로그래밍된 안무에 맞춰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게 중요하죠."

로봇 댄싱 부분에 참가하는 이영준(17)군의 설명이다. 그의 로봇 '아스라다'는 얼마 전 대회에서는 마이클 잭슨의 '대인저러스' 음악에 맞춰 현란한 문 워킹을 선보여 환호를 받았다. '팝의 황제'를 위한 '헌정 공연'이었다.

학생들은 저마다 프로그램을 짜고 안무를 구상하고 로봇을 손보느라 여념이 없다. 이 동아리 소속 15명의 학생들은 25대의 로봇을 들고 휴머노이드 단체전(축구, 댄스, 농구, 릴레이)에 참가한다.

'로봇피아'는 초고교급 로봇 동아리로 전국적으로 이름 높다. 지난 2005년 설립된 로봇피아는 이듬해 국제로봇올림피아드 부산 예선과 전국대회를 휩쓴 뒤 세계대회마저 석권했다. 특히 6족 거미로봇을 제작해 출전한 이 대회 장애물 부문(계단 오르기와 미로 찾기)에서는 26초를 기록, 평균 6~7분이 걸린 다른 참가자들을 경악시켰다. 로봇의 직각 주행을 곡선 주행으로 바꾼 발상 전환의 승리였다.

매년 각종 대회를 독식하면서 이 동아리는 우승 후보 1순위이자 '공공의 적'이 됐다. 대회 참가 전 다른 학교들이 이 동아리가 뭘 만들어 출품하는 지부터 파악할 정도.

김원의 지도 교사는 "고교 수준에는 적수가 없어 요즘은 주로 휴머노이드(이족 보행 인간형 로봇) 부문에서 대학이나 일반 팀과 겨루고 있다"고 귀띔했다.

로봇 제작은 비용과 노력, 시간 면에서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경우 짧게는 2~3주에서 길게는 두 세달 씩 걸린다. 대회 출전을 위해서는 먼저 대회 요강을 분석한 뒤 시중의 시제품을 구입해 제작·개조할 것인지, 아니면 창작 로봇을 만들건 지를 판단한다.

창작 로봇의 경우 우선 로봇의 동력이 되는 모터를 선정한 뒤 설계 작업에 들어간다. 3D 캐드 작업을 통해 도면을 만드는데 댄싱, 격투, 워킹 등 로봇의 용도에 따라 무게 중심과 관절의 구성이 달라진다. 도면을 토대로 로봇의 몸체가 되는 철판 프레임을 제작, 조립하면 외형이 갖춰진다. 이때까지는 단순히 프라모델 수준일 뿐이다. 장난감이 로봇처럼 지능을 갖고 움직이는 것은 프로그래밍을 통해서다. 로봇의 모션 설계는 영화 촬영 때처럼 한 동작 한 동작 프레임을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개별 동작 단위를 너무 크게 잡으면 안정성이 떨어져 넘어지기 쉽고 반대로 작게 잡으면 동작이 굼뜨기 마련이다.

50㎝ 크기의 휴머노이드 로봇 한 대에만 20여개의 모터를 비롯해 CPU(중앙처리장치), 전지, 스위치, 프레임 등 수백 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로봇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들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설계상으로는 오류가 없는데 실제 동작이 안 맞는 경우도 허다해 뜯었다 붙였다를 수십 번씩 반복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로봇 제작에 대한 열정과 즐거움으로 뭉친 학생들이지만 대회 출전을 앞두면 마운드에 오르기 전의 투수처럼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거미로봇이 배 위를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악몽에 시달리기도 한다고.

얼마전 이 동아리 조민홍(18)군이 로봇 제작 능력을 인정받아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KAIST에 합격, 일약 전국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40여 개의 로봇을 만든 조군의 경우 특히 창작 로봇 부문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이고 있다. 조군은 지난해 국제로봇올림피아드의 '교통'이라는 창작 부문 과제에서 '지능형 자동차'를 제작해 세계 3위를 차지했다. 그가 만든 차의 특기는 '완전 자동 주차 시스템'. 이 시스템을 작동시키면 차가 스스로 앞뒤 차의 간격을 확인해 주차 공간에 차를 밀어 넣는다. 이것까지는 요즘 고급차에 장착된 시스템과 비슷하다. 하지만 조군의 차는 '게걸음 주차'가 가능하다. 좌우 45도씩 최대 90도까지 바퀴가 돌아가는 보통의 차와 달리 이 차는 바퀴가 180도까지 돌아간다. 핸들과 조향장치, 구동축을 각각 분리시켜 2개의 바퀴가 따로 돌도록 설계했고 이 모든 과정은 CPU가 제어한다.

조군은 "앞뒤로 일정 구간이 확보돼야만 하는 기존 시스템과 달리 아예 좁은 주차공간에 차를 쏙 밀어 넣는 시스템을 개발해보자는 구상을 하다 고안해낸 것이 수평 바퀴다"며 "각속도와 가속도, 기울기 등의 센스 오차나 프로그램 충돌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만 보완하면 당장 상용화시킬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과학기술부 장관상을 수상한 '가정용 건강 체크 로봇'도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미니 커피 자판기처럼 생긴 이 로봇은 혈당 체크기가 달려 있어서 사용자의 혈당에 따라 식이 요법을 조절해 준다. 로봇 내부에 시리얼과 우유를 넣어 두면 혈당 수치에 따라 로봇이 적절히 식재료의 양을 조절해 맞춤형 식사를 제공해주는 방식.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것들을 고안해내는 창의성과 이것을 실현 가능하게 해주는 부단한 노력과 능력 없이는 기계인 로봇에 혼을 불어 넣을 수 없다.

"걸음마 단계이긴 하지만 로봇은 이미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와 있고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아 오던 로봇들이 현실에 등장하는 것도 결코 허황된 꿈만은 아닐 겁니다. 내가 만든 로봇이 프로그래밍된 대로 움직일 때의 그 벅찬 희열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느낀 감격과 다르지 않을 걸요." 글=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사진=문진우 프리랜서 moon-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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