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정치비화 60년] ③ 부산지역 숙원사업 '해결사' 김 영 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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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부산 발전 너무 늦다 보고에 "이제 좀 챙겨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7년 11월 4일 부산 강서구 녹산동 부산신항만 건설 기공식에 참석해 문정수 당시 부산시장, 김혁규 경남도지사 등 참석자들과 함께 착공버튼을 누르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박 실장이 나 대신 부산 좀 챙겨!"

1993년 2월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이 집권한 직후 수원으로 가는 헬기안. 당시 박관용 비서실장(현 마포포럼 이사장)은 김 대통령에게 "부산시민들이 그동안 야당 많이 뽑아주는 바람에 예산도 못 받고 지역발전도 지체됐으니 이제 의리를 지키셔야 한다"고 말한데 대해 김 대통령은 이같이 지시했다고 한다. 이후 박 비서실장은 약 2년간의 재임기간에 수영비행장 이전 등의 지역숙원사업 해결에 적극 나설 수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수영비행장 이전 · 부산 AG 유치 등 '대통령 입김' 큰 힘
김우중, 거가대교 건의 … "내 고향 먼저 챙겨서 되겠냐"


△곡절끝에 매듭 푼 수영비행장, 아시안게임 유치=수영비행장 이전 문제의 경우 YS의 개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93년 하반기 박 비서실장이 부산시의회 우병택 의장의 건의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YS가 곧바로 권영해 국방장관에게 "수영비행장이 부산의 도시발전을 저해하니 이전해야 한다"고 지시하면서 본격 진행됐다는 것.

며칠 지나지 않아 권 장관이 박 비서실장을 찾아왔다. 권 장관은 "유사시 괌과 일본에서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비행장인데 이를 없앨 수 없다. 대체 비행장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후 국방부는 경남 양산과 경북 해안 지역, 심지어 밀양까지 검토했다. 하지만 결론은 '대체할 만한 비행장 부지가 없다'였다.

"사실상 물 건너가는 분위기였죠. 논의 끝에 '김해공항에 활주로를 하나 더 만들면 된다'는 결론을 냈고, 결국 비행장 이전으로 이어졌죠."박관용 이사장의 말이다.

그러나 수영비행장 부지 매입가가 너무 비싸 부산시는 또 한 차례 YS의 도움을 받는다. 공시지가가 3.3㎡당 130만 원으로 118만8천㎡의 부지를 감안하면 도저히 매입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는 것. 당시 문정수 부산시장은 "대통령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했더니 직접 이양호 국방부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잘 챙겨주라'고 했고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 전했다.

이 전화 한 통의 위력은 꽤 컸다. 비행장 부지 매입을 위해 정부 땅이라도 공시지가 이상으로 매입하는 것이 보통인데, 감정가를 낮춰서 매입했고, 부지 매수자금도 분할 상환할 수 있었다는 것.부산아시안게임 유치에도 YS가 적지 않게 관여했다.

93년 말 부산시의 건의에 따라 비서실 주도로 아시안게임유치에 나섰는데 국무총리실의 반대에 부닥쳤다. "당시 이홍구 총리가 '대통령이 2002년 월드컵 유치에 정신없는데 같은 해에 아시안게임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안 된다고 했지요. '무슨 소리냐 결론을 내야지'하며 대통령께 보고했고 이듬해 YS가 부산시청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부산이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얘기하면서 공식화됐죠." 박이사장의 설명이다.

YS 집권초기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지낸 김무성 현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95년 서울에서 있은 아시안게임 차기 개최지 결정 총회에 앞서 대통령께서 직접 각국 대통령이나 국왕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위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파티까지 열었죠.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아니고 이미 서울에서 한 번 치른 아시안게임을 부산에서 유치하는데 신경 쓰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해양수산부 탄생은 '깜짝쇼'=지난 96년 5월 31일 부산 신선대부두 앞에서 가진 제1회 바다의 날 행사장. YS는 해수부의 정부부처화를 깜짝 발표했다. 사실 이날 발표는 타 부처의 반발을 우려해 비밀리에 진행됐다. 당시 경제기획원(현 재정경제부)내 해양업무 일원화 TF단장을 맡았던 이재균 현 해외건설협회장은 "김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이었지만 관련 부처들의 반발이 있어 전날까지 비밀에 붙이고 연설문도 극비리에 작성돼 당일 발표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후 해수부는 DJ정권에서 한차례 폐지 위기를 겪었다. 이때 YS가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유지시켜 달라"고 해 존속할 수 있었다고 김기수 현 YS 수행실장은 전했다.

△거가대교 개통, 부산시역 확대 아쉬움=YS가 대통령이 된 때문에 사업이 늦어지거나 장애가 됐던 부분도 적지 않다. 바로 거가대교 개통과 부산시역 확대 부분이다.

YS 집권초인 93년 3월께 박관용 비서실장이 YS와 부부동반으로 고향 거제도에 내려갔을 때였다. 당시 대우조선을 방문한 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생가에서 식사를 하면서 김 회장이 "거제도와 가덕도를 잇는 대교 공사를 했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나 YS가 그 자리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고 우리 동네부터 다리 놓으면 말이 되겠냐"고 잘랐다고 한다. 그때 김 대통령의 '오케이' 사인이 났다면 지난해 연말 완공된 거가대교는 좀 더 빨리 개통됐을 것이다.

또 95년 정부는 직할시 발전 정책의 일환으로 인근 지역을 편입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따라 대구는 달성군, 광주는 광산구를 각각 시계에 포함시켰다. 이들 편입지역은 대부분 대구나 광주만한 규모의 땅이다. 그러나 부산시는 그렇지 못했다. 당시 편입된 기장군 면적은 부산시의 3분의1에 불과했다.

이 업무를 총괄한 부산출신의 김기재 당시 내무부 차관보는 이렇게 회고했다. "양산과 진해 및 김해시 일부를 편입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YS의 울산시 대선공약이 직할시 승격이었다. 이 때문에 경남도가 반발했는데 부산이 다시 이들 지역을 떼갈 수는 없는 분위기였다."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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