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품 다른 가격… 정가는 없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프라이스(PRICE) 2.0 시대'

학원 강사 박주선(30) 씨는 19일 부모님을 모시고 한 불고기 식당에서 스마트폰의 9천900원 짜리 쿠폰 세 장으로 6만 원어치의 메뉴를 주문했다. 오는 여름 휴가에는 역시 소셜커머스로 일찌감치 사놓은 1만 원대 제주도 저가 항공권과 호텔 검색 사이트를 통해 구입한 9만 원대 특급 호텔권으로 럭셔리 알뜰 자유 여행을 계획 중이다. 박 씨는 정가가 사라지는 '가격 2.0' 시대의 초기 소비자다.

정가가 사라지고 있다. 한 제품이나 서비스에 정해진 가격이 있다는 개념이 흔들리고 대신 사람마다 다른 가격을 지불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대표되는 기술의 발달이 배경이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와 같은 현상을 기존 정해진 가격체계(프라이스 1.0)과 대비해 '프라이스 2.0'이라 불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가격 2.0'은 스마트화, 모바일화, 소셜화로 인해 가속화되고 있다. 소비자의 위치, 감정, 희망가격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거나 소비자끼리 모여서 구매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이 개인에 따라 맞춤화된 가격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보고서
"스마트화·소셜화 따라
소비자 구매 협상력 제고
개인 맞춤형 가격 형성"

공짜 상품·할인 쿠폰 등
거래방식 도도한 변화



롯데닷컴은 지난 8일 증강현실(실제 대상의 영상 위에 가상 정보를 삽입하는 기술) 앱 '럭키버드'를 출시했다. 백화점, 마트, 롯데시네마, 세븐일레븐, 롯데리아, 크리스피크림도너츠, 엔제리너스, 롯데자이언츠, 롯데호텔 등 15개 계열사 모든 매장 주변에서 앱을 실행해 새 모양을 잡으면 할인 쿠폰과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버드 잡고 도너츠 공짜로 먹었어요. 신기" 같은 앱 후기가 이미 등장했다.

신발 종합매장 ABC마트는 지난달부터 위치기반서비스(사용자의 위치를 파악해 제공하는 서비스) 앱 '아임인'을 통해 전국 매장을 방문한 기록을 남기면 즉석 5% 할인 혜택을 준다. 또 매달 각 매장을 가장 많이 찾은 고객에게 원하는 신발과 20% 할인 쿠폰도 주고 있다. ABC마트 장문영 팀장은 "위치기반 서비스와 유통기업의 전국적인 공동마케팅은 처음이다. 시작 5일 만에 3천여 명이 참여했다"고 했다.

소셜커머스도 진화 중이다. 쿠팡은 최근 친구 3명이 모이면 공짜라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구매 뒤 해당 URL(인터넷 주소)를 이용해 친구 3명이 추가로 구매하면 최초 고객의 결제금액을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로 전액 돌려준다. 그루폰도 신규 회원 3명을 모아오면 공짜 상품을 주는 메가기프트 이벤트를 계속하고 있다. 인맥이 곧 돈이 되는 구조다.

소셜커머스의 원조 그루폰의 CEO는 지난 7일 내한해 "소비자에게 푸시(push)하는 형태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직접 풀(full)하는 '그루폰 나우'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국내 1위 티켓몬스터도 '티몬 나우'를 연내 론칭할 예정이다. 식당과 서비스 등 각 매장은 원하는 시간대와 수량을 선택해 쿠폰을 발행하고, 소비자는 실시간으로 가까운 곳을 검색해 찾아갈 수 있다.

해외의 움직임은 더욱 발빠르다. 페이스북은 온라인 친구 네트워크를 거래집단으로 활용하는 '딜' 서비스를 선보였고, 구글은 구글의 지도, 이메일 계정, 막강한 검색서비스를 활용해 맞춤화된 거래를 제공하는 '오퍼'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구매 장소와 가격 등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공유하는 서비스 '블리피'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위치정보 공개로 인한 개인정보 침해는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다. 지난달 정보통신진흥원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는 남성, 고소득자, 고학력층, 20~30대, 대도시 아파트 거주자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나 스마트폰으로 인한 정보 격차가 비용 격차로 이어질 우려도 제기된다.

LG경제연구원 정재영 연구원은 "SNS, 생체인식, 감정기술 등 다양한 기술을 기반으로 거래방식과 거래관계의 변화는 조용하지만 거대한 흐름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