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단축·무리한 부품 국산화가 부실공사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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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시설공단 이동호(오른쪽) 궤도팀장이 16일 오후 경북 영천시 부관면 당리 경부고속철도 제4공구 궤도 부설 공사 현장에서 균열이 발생한 철도 침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이번 경부고속철 2단계 구간(부산~대구) 중 경주~대구간 콘크리트 침목 부실공사는 무리한 공기단축과 설계 변경, 제대로 된 검증 없이 강행된 부품 국산화 작업 등이 부실을 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토해양부와 철도시설공단은 경주~대구 외의 구간에 대해서는 그리스를 주입하는 공법으로 시공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부실시공으로 현재 수출 협상이 진행중인 미국, 브라질 등과의 협상 차질도 불가피해졌다.

정부 조기개통 압력, 콘크리트 양생기간 줄여 공사 실적 없는 납품업체 부품 충분히 검증 않아 한국고속철기술 해외서 불신…수출 물 건너가

△무리한 공기단축=이번 콘크리트 침목 부실공사는 기본적으로 불량품의 시공에 초점이 맞춰져있지만 궤도업계와 현장업체들 사이에선 조기 개통 압력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2007년 레일 체결장치 교체 문제가 논의되면서 수개월 정도 침목 시공이 늦어진데다 지난해 초 국토해양부에서 조기 개통 지시가 내려지면서 양생기간 단축과 함께 현장부설시험 등 새 제품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시공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콘크리트 침목의 경우 통상 설계 시방서 상 28일 이상(국토해양부 지침은 21일) 양생을 거쳐야 하지만 실제로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일 정도 양생을 거친 뒤 납품됐다고 2단계 공사 참여업체들은 전했다.

궤도업계 한 관계자는 "양생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을 경우 강도가 약해질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균열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부설시험과 관련, 콘크리트 궤도가 국내 처음 도입되고 해당 제품들도 신제품이어서 충분한 현장 검증이 이뤄져야 함에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토해양부측은 "테스트 당시 문제가 없어 계획대로 타설됐다"고 밝히고 있다.

△설계·인증 과정 부실 드러나=이번 콘크리트 궤도는 설계도면에는 압축 그리스나 방수발포 충진재 등과 같은 방수 물질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균열이 난 침목에 쓰인 매입전(체결장치와 침목을 연결하는 부품으로 큰 나사못 형태)에는 반대로 물을 빨아들이는 스펀지류의 흡수재가 사용됐다.

이에 대해 궤도업계 등 관련 전문가들은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궤도업체 한 대표는 "전세계적으로 스펀지류의 흡수재를 사용한 곳이 없는데 어떻게 해서 이를 사용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가격이 이유라면 흡수재는 개당 가격이 50원 미만으로 방수재의 10~20% 수준이지만 워낙 개당 단가가 낮아 이를 이유로 단정짓기는 곤란하다.

또한 레일은 발주처인 철도시설공단이 공급하는 관급자재로 쓰지만 나머지 궤도와 시공 분야는 공단이 행정적인 번거로움을 이유로 사급 자재(시공처에서 직접 구입해서 쓰는 물건)를 쓴다.

사급 자재를 쓰되 철도시설공단으로부터 반드시 인증을 받게 돼있지만 이마저도 특허를 받은 제품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검증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무리한 국산화도 이번 부실에 일조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KTX의 해외수출을 위해 전 분야에 걸쳐 국산화를 진행해왔다. 외국업체들의 부품을 바로 수입하는 대신 외국업체와 합작법인을 만들어 설계변경 등을 통해 국산화한 뒤 이를 납품하고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부품의 경우 대부분 처음 적용되는 것이어서 충분한 현장부설시험이 필요함에도 이를 제대로 실시하지 않고 타설하는 것이 다반사라는 게 현장 참여 업체들의 증언이다.

이번에 침목을 생산 납품한 업체는 경북 상주의 천원레일원으로 궤도분야 시공실적이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는 독일업체 레일원의 특허를 토대로 설계 변경을 한 뒤 제품을 납품했지만 이 업체도 문제가 된 매입전을 직접 생산하지 않고 타 업체로부터 납품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국토해양부와 철도시설공단은 "이번 문제가 된 경주~대구 외의 경주~부산 구간에 대해서는 흡수재나 방수재가 아닌 매입전에 그리스를 주입하는 공법으로 타설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KTX 수출 차질 불가피=이번 부실시공 여파로 앞으로 KTX 수출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수출 협상이 논의되고 있는 곳은 미국과 브라질 등이다. 미국의 경우 이미 참여의향서를 접수한데 이어 오는 25일부터 정부와 민간기업 등으로 구성된 실무단이 방문할 예정이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당초 20~24일까지 중동 방문에 이어 미국을 찾을 계획이었으나 취소했다.

국토해양부 고위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한국의 KTX 기술에 의문을 가질 게 뻔해 당분간 해외 수출은 물 건너간 분위기"라고 전했다.

배동진 기자 dj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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