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교육에도 '빨리빨리 병'… 느리게 해야 머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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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학습법' 신의진 교수 부산 강연

'빨리빨리 병'은 자녀 교육에서도 위력을 떨치고 있다. 유치원 때부터 영재 교육을 시키고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 벌써 중학교 과정을 배우는 게 흔한 일이 됐다.

여기에 맞추려고 아이들은 눈 뜨자마자 학교로 가 수업 진도를 뺀 후 곧장 학원으로 향한다. 저녁에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과제를 하고도 엄마로부터 "숙제 해" "컴퓨터 꺼" 잔소리나 채근을 들어야 한다. 곧장 내달릴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일찍 배우기보다는 조금 느리게 공부하는게 더 좋다. 암기를 하는 대신 머리를 쓰게 해야 한다"고 항변하는 이가 있다. 바로 '스타 의사'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다. 신 교수가 부산을 찾아 부산 학부모에게 학습법을 소개했다. 지난 12일 동래교육지원청이 주관한 학부모 연수에서였다.

이날 신 교수의 강연에서는 소아정신과 교수로서의 전문성과 두 아이를 키운 엄마의 경험이 모두 묻어났다. 뇌 발달 과정에 맞춘 시기별 교육법, 신 교수 자신의 교육법 등이 인상적이었다. 시중에 신 교수 책도 많이 나와 있어 현장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내용만 추려 소개한다.



느리게 공부해야 머리를 쓴다

신 교수는 "성격이 좋아야 한다"를 공부 잘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으로 내세웠다. 신 교수는 "성격 좋은 사람들을 잘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위기에 강하다"며 "공부 역시 잘할 때와 못할 때가 있는데 못할 때 유연하게 넘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약간 앞질러 가는 것보다 약간 느리게 가는 게 나은데 그래야 뇌가 발달할 수 있다"는 '느림보 학습법'도 소개했다. 공부는 아이 스스로 머리를 굴리는 방법을 알아야 잘하는데 조기교육이나 선행학습은 암기하도록 만들 뿐이라는 게 신 교수 생각이다. 신 교수는 "초등학교 6학년에게 미적분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패턴을 외울 뿐이지 이해하지는 못한다"며 "뇌 발달에 맞춰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소개한 신 교수 자신의 교육법 하나. 신 교수는 자녀들에게 물건을 거저 사주는 법이 없다고 한다. 일단 신 교수를 설득하게 하고 이유를 잘 대면 사준다. 단순한 방법같지만 소아정신과 교수로서의 전문성이 담긴 방법이다.

신 교수는 "아이가 그 과정에서 감정을 누르고 실행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을 쓰게 되는데 쉽게 말해 머리를 쓰는 것이다"며 "머리를 쓰는 아이들은 (성적이 좋은 아이보다) 나중에 돈도 잘 벌고 훨씬 잘 살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자녀를 가장 잘 알지만 힘들게 하는 이는 부모

자녀를 가장 잘 아는 이는 역시 부모다. 하지만 신 교수는 "부모들이 느리게 공부를 시키고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키우고 싶어도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 중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일이 어렵다고 했다. 스트레스는 동기 정서 지능 집중력 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언제든 아이의 삶에 끼어들고 방해할 수 있다는 뜻. "100점 못 받으면 죽을 줄 알아" "재는 잘 하는데 너는 왜 못해" 등등 모든 게 아이들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혹시 부모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라는 의심을 해보라고 했다. 신 교수의 환자 중에도 아이 문제로 병원에 왔지만 부모에게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신 교수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네모난 아이를 네모나다고 인정하지 않고 사회가 원하는 동그란 아이를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 교수는 아이 문제는 주변 환경만이 원인은 아니라고 했다.

식당같은 곳에서 아이가 장난을 심하게 치면 꼭 나오는 한마디.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웠어"다. 신 교수는 "성장 환경을 탓하는 말인데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하는 데에는 환경도 원인이 될 수 있지만 타고난 바탕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두뇌나 유전, 기질 등의 탓일 수 있다는 얘기다. 뇌는 얼굴이나 어떤 장기보다 훨씬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고 만약 이런 타고난 바탕이 잘못됐다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런 하우투 런(learn how to learn) 학습법

신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런 하우 투 런 학습법'을 소개했다. '런 하우 투 런'은 말 그대로 머리를 쓰는 공부법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단순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써서 내 것으로 만들고 고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신 교수는 '런 하우 투 런'을 위한 △예상하게 만들기 △시범 보이기 △실전문제 내주고 생각하게 하기 △실제 어디에 적용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만들기 △비슷한 점, 다른점 찾기 △같은 방법으로 다른 문제 풀게 하기 △배운 걸 말로 가르쳐 보게 하기 등의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김영한 기자 edu@busan.com


독서는 3세 지나서… 초등 6학년 땐 스스로 학습계획 세워야

신 교수의 시기별 공부법


"아직 뇌가 발달하지 않았는데 억지로 공부를 시키면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을 뿐입니다."

신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뇌 발달 단계에 맞춘 교육법을 강조했다. 특히 개인마다 뇌 발달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부모가 그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 12일 부산 연제구 창신초등학교에서 열린 학부모연수회에서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동래교육지원청 제공
우선 독서에 대해 신 교수는 "3세 이전에 독서를 시키면 아이에게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독서는 상당히 추상적인 과정인데 3세 이전에는 그런 능력이 아직 없다는 것.

또 초등학교 입학전에 꼭 체크해야 할 덕목들이 있다고 신 교수는 소개했다. 감정조절력·충동조절력, 집중력, 공감능력, 도덕성, 사회성, 새로운 것에 대한 다양한 호기심이 그것이다.

신 교수는 "공감 능력이나 사회성 같은 덕목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감정을 읽는 능력인데 요즘 이게 잘 안되는 아이들이 많다"며 "선행학습보다는 이런 능력을 길러야 학교에 가서 친구를 사귀고 다른 관점에서 나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4학년이 지나면 뇌가 빠르게 발달하기 시작한다. 그 이전에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초등 저학년 때 학교 수업도 잘 따라가고 공부도 곧잘 하던 아이가 4학년 이후에 성적이 떨어지는 일이 있는데 이런 능력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

초등 6학년 정도면 스스로 공부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머리 좋은 아이보다 학습계획을 잘 짜는 아이가 더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공부는 결국 머리 굴리는 싸움이 돼야 한다. 머리 쓰는 것을 즐겨야 호기심과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결론적으로 초등학교 때 꼭 배워야 점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법' '학습 계획을 스스로 세울 수 있는 능력' 두 가지를 꼽았다. 이후 전두엽이 충분히 발달하는 나이는 남녀가 조금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한다. 대개 남자 아이는 중3, 여자 아이는 중2 정도에 전두엽이 충분히 발달하고 제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김영한 기자


신의진 교수는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이면서 틱 장애를 가진 첫째와 남들보다 빠른 둘째,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다. 성폭력 피해 아동 치료에도 관심을 쏟고 있으며 '나영이 주치의'로도 유명하다.

칼럼이나 저서로 자신만의 자녀 교육법을 꾸준히 알려왔다. 지난 2000년 조기 교육을 비판한 저서 '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를 펴내 20만부 이상 팔리며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어 '느림보 학습법' '아이보다 더 아픈 엄마들' '현명한 부모들이 꼭 알아야 할 대화법' 등의 저서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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