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만두·월남쌈·룸피아… '고향의 맛' 나누는 정겨움은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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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설 음식 나누기

지난 달 27일 부산 서구 초장어린이집에서 열린 '다문화 가정과 함께 하는 설맞이 체험 행사'에 참여한 결혼이주여성과 가족, 친구들이 직접 만든 한국, 베트남, 필리핀의 설 음식을 앞에 두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아니, 그렇게 말고 이렇게 말아 봐." "언니, 이거 어디다 찔까요?"

찬바람이 코끝을 때린 지난 27일 오후 부산 서구 초장동 초장어린이집 3층이 시끌시끌하다. '소란'의 주인공은 바로 베트남과 필리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로, 이들은 한국·베트남·필리핀 3개국의 설음식 준비로 바빴다.


베트남·필리핀 결혼이주여성들
각국의 설 음식·문화 체험 행사

둥근 과일 먹으며 "부자 되세요"
친척 모여 덕담 등 설 풍습 비슷
"아이들 크면 음식 같이 만들 터"



'다문화 가정과 함께 하는 설맞이 체험행사'는 초장동 주민자치회가 주관한 것이다. 초장동주민자치센터에서 열리는 '다문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린 이 행사를 위해 결혼이주여성 15명이 한국의 이웃 아줌마들과 함께 '고향의 맛'을 준비했다.

"지난 추석에 함께 모여 송편 빚기를 했는데 참 좋아하더군요. 이번 설엔 이주여성들의 고향 음식도 함께 만들면 그들이 자긍심과 향수를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서정숙(57) 주민자치회 총무는 그런 의미에서 서로의 음식을 비교할 수 있도록 다른 나라에도 유사한 음식이 있는 만두와 잡채를 메뉴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만두와 잡채는 행사 전날 주민자치회 회원들이 모여 미리 만들어뒀다. 한국의 만두와 잡채에 각각 해당하는 베트남 음식으로 월남쌈과 분사우, 필리핀 음식으로 룸피아와 판싯비혼이 준비됐다.

"베트남에서는 설날에 월남쌈을 먹어요. 가족들이 모여 음식을 만들 때 엄마는 월남쌈을 예쁘게 싸면 예쁜 아기를 낳는다고 했죠" 카시에우키엠(24) 씨는 "원래는 반쯩이라는 떡을 꼭 먹어야 하는데 떡을 싸는 바나나잎이 없어 준비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베트남도 한국처럼 설에 친척들이 함께 모여 음식과 덕담을 나눈다고 소개한 그는 두 아들의 엄마.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설에 베트남 음식을 같이 만들어 먹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한쪽 식탁에서는 필리핀 수다 한마당이 펼쳐졌다. 연방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진다. 필리핀에서 12월 31일 밤 12시부터 1시간 동안 펼쳐진다는 새해맞이 불꽃놀이와 같은 풍경이다.

"기구 등을 두드려 큰 소리를 내는데 아주 시끄러워요. 그리고 나서 서로 포옹하며 뽀뽀를 한답니다. 아! 너무 재미있겠다." 김민서(30) 씨는 필리핀의 설 풍습을 묻는 기자에게 고향 생각나게 만든다며 살짝 눈을 흘겼다. 큰 소음을 내는 것은 힘을 돋운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필리핀 사람들은 설날에 과일, 특히 둥근 모양의 과일을 먹어요. 동전처럼 둥근 과일을 먹으며 돈 많이 벌고, 둥글둥글 원만하게 건강한 한 해를 보내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거죠." 다섯 살, 네 살, 두 살의 개구쟁이 아들 셋을 둔 김 씨는 엄마는 힘이 좋아야 된다며 새해 소원으로 '건강'을 꼽았다.

필리핀 팀이 열심히 만든 필리핀식 만두 룸피아는 다진 돼지고기와 야채 볶음을 밀전병에 싸서 튀긴 것으로 바삭한 피와 고소한 소 맛이 어우러져 이날 최고 인기 요리가 됐다.

"어머니, 이거 먹으세요" 부이탄다오(24) 씨가 어린 손녀를 보고 있는 시어머니 김덕순(60) 씨를 챙겼다. 며느리가 건넨 음식들을 먹어본 김 씨는 "베트남 음식이 더 맛있는 것 같다"며 슬쩍 며느리 고향 편을 든다. 첫째·둘째 모두 베트남 출신의 며느리를 본 김 씨는 "며느리들이 한국에 온 지 각각 1년·3개월밖에 안 돼 올해 설은 간단하게 준비했다"며 "내년에는 다 같이 즐거운 설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만두와 잡채, 월남쌈과 분사우, 룸피아와 판싯비혼. 이름은 달라도 세 나라의 설음식에 깃든 의미는 같다. 내 이웃·친구와 함께 나누는 '따뜻한 마음'.

드디어 시식 시간. 다들 들뜬 표정으로 친구네 설 음식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곧 다른 언어, 같은 말이 터져 나온다. "응온람!(베트남)" "마사랍(필리핀)!" "맛있다!(한국)".

글·사진=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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