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난을 증명해 봐" 가혹한 대가 요구하는 '공짜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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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급식 무엇이 문제인가] <상> 상처도 함께 주는 무상급식 실태

전문계A고 3년 이모군은 1학년 내내 반에서 가장 늦게 점심을 먹었다. 반 아이들의 배식 당번인 '급식도우미'였기 때문이다. 친구들의 밥을 다 퍼주고 나면 반찬 그릇이 휑하니 비는 날도 있었다. '적절한 배식에 실패'한 날엔 반찬 없는 밥을 먹기도 했다."고생이 많다~"고 비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식욕 왕성한 친구들은 "반찬을 더 주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밥을 먹는 대가'는 생각보다 가혹했다.

A고는 각 반 1~2명씩 급식도우미 신청을 한 학생들에게 급식비를 면제해주고 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 군도 이렇게 해서 급식비를 면제받았다. 자신의 딱한 처지를 공개해가며 밥을 퍼주고 그 '대가'로 맨 마지막에 먹는 밥은 처연했지만 이 군은 급식도우미로 두 학기를 버텨냈다.

B여고에도 급식비를 면제받는 '급식도우미'들이 있다. 인문계고교는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학교에서 점심, 저녁 두끼 급식을 해야 하지만 급식비 지원은 초·중·고교 모두 중식에 한정돼 있다. 담임교사들은 저녁 급식비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점심, 저녁 도우미 명단에 올려 급식비를 면제받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공개적으로 가려 '시혜' 베푸는 현 관행
학생 인권 · 마음의 상처는 늘 뒷전 밀려
'불쌍한 아이' 추천 떠안은 담임도 곤혹
"시혜 아닌 복지차원 접근하는 시각 필요"


현행 학교 급식비 지원 시스템은 이처럼 대상자를 '공개적으로' 가려 '시혜'를 베푸는 형태다. 이 과정에서 대상 학생들이 받는 마음의 상처는 늘 뒷전이다.

급식비 지원 대상자로 '선별'돼 '시혜'를 받는 과정도 간단치 않다. 학교 급식비 지원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가정, 차상위계층 자녀들이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주민센터에서 대상자를 확인해주지만 차상위계층은 건강보험료 납부 금액이 적은 순으로 지원 대상자를 선정해왔다. 건강보험료 납부액이 기준을 초과하더라도 실질적인 빈곤층일때는 담임이 추천할 수도 있다.

해마다 3월, 반 아이들 얼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황에서 담임이 대상자를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다. 급식비 지원 대상자는 모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기준에 따라 추가 서류도 내야 한다. C중학교 1학년 담임교사는 "이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공개되지 않도록 '선생님한테 줄 거 있는 사람 다 내라'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결국 알만한 학생들은 다 알게 된다"고 말했다. 담임이 급식비 지원 대상자로 추천하기 위해서는 대상 학생을 '최대한 불쌍한 아이'로 만들어 추천서를 써야 한다. 그는 "추천서를 쓰려면 가정 형편을 소상하게 물어 볼 수 밖에 아이에겐 가난을 새삼 확인하는 과정이 되고 질문하는 담임도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공짜밥'의 절차는 이게 다가 아니다. 담임교사들은 지원 대상 학생들이 방학 때는 어떻게 밥을 먹길 원하는 지도 매번 확인해야 한다. 부식을 구입할 쿠폰으로 받을 지, 인근 식당에서 먹을 지 등 몇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B여고 교사는 "학년마다 연계가 안돼 해마다 급식비 지원 신청 과정을 되풀이 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여름방학을 앞두고 한 조사를 겨울방학 전에 또 해야 하는 등 같은 조사를 하고 또 하는 실정"이라며 "급식비 지원을 수월하게 해 주지 않고 절차도 복잡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부산지역에서 학교 급식비를 내지 못한 초·중·고생은 총 3천1명. 급식비 미납액은 3억951만1천원(2월말 현재)에 달한다. 특히 급식비 미납 학생중에는 하루 두끼를 학교 급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고교생이 2천27명으로 3분의 2를 차지했다.

아직 급식 직영 전환을 하지 않은 학교들은 급식비 미납으로 인한 결손액을 주로 위탁업체들에게 떠 넘겨왔다. 다음 해에도 급식을 납품해야 하는 업체는 '울며 겨자 먹기'로 손실을 떠 안았고 이 손실은 결국 '급식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한 부산시민운동본부 김정숙 공동대표는 "'부자급식' 논란이 있지만 학교 현장을 제대로 들여다 보면 왜 무상급식 확대가 필요한 지 알 수 있다"며 "무상급식 전면 실시가 어렵다면 급식비 지원을 원하는 학생은 다 지원해주는 형태로 가야 현행 지원 시스템의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라대 초의수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각 나라의 복지제도는 그 나라의 특수성에 맞게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며 "급식 문제 역시 '시혜'가 아닌 '복지'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승아 기자 se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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