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이들 사랑으로 보듬은 '외국인 천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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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원어민강사로 활동 중인 미국인 청년들이 11일 오후 11시 부산 서면에서 보육시설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파티를 마련한다. 사진 왼쪽부터 앤서니 응우옌, 메간 콜럼버스, 에릭 타가트. 이현정 기자

"말 안 통하는 거요? 얘들은 말보다 몸으로 먼저 친해져요!"

10일 오후 부산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앤서니 응우옌(Anthony Nguyen·28)과 메간 콜럼버스(Megan Columbus·25·여), 에릭 타가트(Erick Taggart·25)는 다소 들떠 있었다. 다음 날 행사에서 있을 게임과 현장 경매 등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벌써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평소 보육시설 영어 봉사

美 원어민 강사 3인

연말 '자선 파티' 계획

수익금 모두 아이들에게


부산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하고 있는 이들 미국 청년들은 11일 오후 11시 서면 롯데백화점 뒤편 '구리바'라는 바에서 조그만 자선 파티를 준비 중이다. 파티 입장료와 게임 참여비, 현장 경매 등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은 모두 부산에 있는 보육시설들에 기부할 예정.

이들 셋만이 아니다. 부산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미국, 캐나다 등 출신 강사들 중 마음 맞는 이들 40여 명이 이날 모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다.

외국인 청년들의 이 같은 활동은 갑작스런 일이 아니다. 이들 세 청년들은 매 2주마다 부산의 보육시설들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번 행사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것.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행사다.

"시설에 있는 아이들은 또래 다른 아이들과 달리 외국인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영어 환경에 노출시켜 영어에 대한 동기부여도 해주고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도 없애주고 싶었어요."

자신과 생김새도 다르고 말도 다르게 하는 노랑 머리, 파란 눈의 언니, 오빠들의 등장에 어색해할 법도 하지만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금방 다가와 장난을 걸며 친구가 된다고 했다.

이들은 오는 25일 크리스마스 또한 시설 아이들과 함께 보낼 계획이다. "크리스마스 때만큼 가족이 그리워지는 때가 또 없잖아요. 저희도 가족을 멀리 두고 왔고 그 아이들도 가족이 멀리 있으니 함께 가족이 되어주면 좋잖아요." 콜럼버스씨는 아이들을 떠올리면 행복한 듯 또다시 웃었다.

이들 중 응우옌씨는 사실 월 스트리트의 금융 전문가 출신이다. 메릴린치에서 일하다 2년 반 전 일을 그만두고 주변 한국 친구들을 통해 내내 좋은 느낌을 받았던 한국이란 나라를 택해 영어강사로 입국하게 됐다.

"사실 너네는 곧 떠날 사람이니 아이들에게 상처만 주는 거다, 이런 걱정들을 많이 하세요. 하지만 평생 한 곳에서 있을 수는 없잖아요. 저희가 가는 곳마다, 그 순간만이라도 함께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런 걱정들이 줄어들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한국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타가트씨가 털어놓은 고민이다. 그리고 이들은 행사가 열리는 구리바의 김판중 사장 덕분에 이 일이 가능했다며 모든 공을 김 사장에게 돌렸다.

"내일 오실거죠?" 이들은 만나는 사람마다 내일 행사 장소로 오라고 챙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4살 때 미국으로 입양 영어강사 린지 볼린씨

송년 '데이트 경매'로 자선 기금 마련·기부

대구의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4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던 린지 볼린(30·사진)씨는 뿌리를 찾고 싶어 한국에 왔다가 동명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의 세밑은 '나눔'이 있어 풍성하고 따뜻하다. 주변의 외국인들과 의기투합해 5년째 송년 자선모금 이벤트를 벌여 사회복지시설을 돕고 있기 때문. "저는 미국의 좋은 가정에 입양돼 보살핌 속에서 잘 성장할 수 있었어요. 제가 받았던 사랑을 제 주변에 있는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볼린씨는 영어강사들에게 경매를 통한 자선기금 마련 행사를 제안해 'NNC(내·외국인 협력단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처음엔 아는 사람끼리만 참여하는 소규모였지만 지난해 부산지역 외국인 커뮤니티의 주요 송년 이벤트로 자리잡으면서 100여 명이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이 행사에서는 개인 및 업체 기부도 받지만 볼린씨가 고안한 '데이트 경매' 덕분에 유명세를 타고 있다. '데이트 경매'란 미혼 남녀가 자신이 생각한 근사한 데이트 계획을 제시해 상대 이성이 구매하는 방식. '송정에서 윈드서핑을 즐긴 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만찬' '부산 교외 오토바이 드라이브' '해운대 달맞이 갤러리 투어' 같은 내용이다. 데이트를 제안한 측이 비용을 내기 때문에 경매 참가자 모두 기부에 참여하게 되는 셈이다.

지난해에는 최고 낙찰가격이 370만원까지 치솟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결혼 날짜를 정해놓은 한 커플이 일부러 나와 사랑을 고백해 감동을 주기도 했다. 참여자는 내·외국인과 남녀 각각 반반이라고 한다.

올해는 후원 기업들을 열심히 찾아다닌 끝에 베이커리 까페 오봉팽 신세계점, 항공사 루프트한자, 코스트코 등에서 금품 협찬을 받았다. 여기에 데이트 경매, 기증물품 경매, 입장료 수익 등을 더해 복지시설에 전달할 계획이다.

"자선행사를 매달 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또 영어강사들이 복지시설에서 봉사하거나 성탄절 같은 때 방문하도록 주선했으면 좋겠어요."

볼린씨의 꿈은 따뜻하다. 그 온기는 올해 자선모금 행사가 열리는 12일 오후 6시30분 부경대 인근 외국인 바 '패브릭'에 가면 느낄 수 있다. 김승일 기자 do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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