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중 도박하고 '야동' 보는 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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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경찰서 사이버수사팀 발족 2년 6개월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

6일 부산 영도경찰서 사이버수사팀 강호경 경사가 인터넷 채팅, 성인 사이트를 모니터링하며 증거 수집을 하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 2009년 7월 영도경찰서 사이버수사팀 강호경 경사의 일과


벗어라, 벗어라, 벗어라!

아, 중국인 아줌마가 보여줄 듯하면서 보여주지 않는다. 시간만 끈다. '오빠 달릴까?' 하기에 드디어 잡았다 싶었는데….

벌써 3시간째다. 30~40대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C화상채팅 사이트. 알몸을 보여주고 30초당 900원을 받는 주부들이 있다고 한다. 오늘은 현장을 잡아야 할 텐데…. 나에겐 모텔도 호텔도 아니고 채팅 사이트가 사건 현장이다.

날고뛰는 사이버 범죄
"증거를 확보하라"
가입사이트만 300~400개


인터넷 공간이라고 방심할 순 없다.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좁은 책상 위에 모니터 두 대를 놓고 캠까지 설치했다. 사이버 머니도 넉넉히 충전해 뒀다. 그러나 결정적 증거를 잡지 못했다. 포기할 순 없다. 다른 화상채팅 사이트에 가입했다. 이로써 가입한 사이트가 300개를 넘은 것 같다.

얼마 전 한 30대 남녀가 찾아왔다. 모텔에 갔는데 누군가 몰카를 찍어 유포했단다. 범인을 잡아달라기에 일단 몰카부터 틀었다. 화질이 너무 선명해 땀방울까지 보일 정도였다. 이럴 땐 '작품'에 지나치게 몰입해선 안 된다.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듯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 모니터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귀와 볼의 홍조를 최대한 누그러뜨려야 한다. 침도 삼켜서는 안 된다.

이날은 몰카 속 여주인공과 피해 여성이 같은 사람인지 확인하는 작업이 먼저였다. 그녀를 옆에 앉혀 두고 몰카를 수십 번 돌려 봤다. 하지만 아직 범인을 찾지 못했다. 두고보자. 언젠가는….


# 2009년 7월 영도경찰서 사이버수사팀 우경노 경장의 일과

아내가 눈을 흘겨 뚫어져라 쳐다본다. 손에는 휴대폰 요금 내역서가 들려 있다. 알 만하다. 각종 도박, 성인 사이트 소액 결제 내역이 친절하게 표시돼 있을 테니까. "요즘 성인 사이트 가입비가 점점 오르고 '찐한' 것 보려면 돈을 더 내야…." 갑자기 아내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아차' 싶었다. 내가 너무 나갔나.

이런 사정도 모르는 다른 팀 직원들. A경장은 "일하면서 '야동'도 보고 좋겠네, 그려…"라며 이죽거린다. B경사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재밌는 거 하나만 넘겨달라'고 조른다. 단호하게 한마디 내뱉는다. "증거를 어떻게 함부로 외부로 유출합니까?"

휴대폰이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라고 윽박지른다. 보나마나 도박 사이트 광고일 게다. 각종 도박 성인 사이트에서 날아오는 문자메시지만 하루에 수십 통.

가끔 단순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인터넷을 너무 오래 해서 그런가. 하지만 '우리 애들은 조금이라도 건전한 사이버 세상에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아랫배가 묵직해진다.


경찰서에 가면 야동을 보는 경찰들이 있다. 하지만 오해 마시길. 이들은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 사이버수사팀 경찰들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 음란 사이트든 도박 사이트든 운영자와 이용자를 붙잡으려면 가입부터 하는 게 순서다. 야동도 보고 채팅도 하고 도박도 하는 게 업무다.

이러다 보니 사이버수사팀 경찰들이 가입한 사이트가 300~400개씩 된다. 증거 수집을 위해서다. 증거물이 너무 많아 외장하드에 따로 저장하기도 한다. 이들의 하드디스크는 해외판부터 국내판, 셀카 혹은 몰카로 찍은 것까지 '야동 집합소'가 따로 없다.

경찰서 단위에 사이버수사팀 별도조직이 생긴 것은 지난 2007년 2월이다. 그 전에는 지능팀에 소속된 사이버수사요원이 맡았다. 인터넷 물품 거래 사기 등 사이버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끔 사이버테러대응센터를 통해 난감한 사건이 인터넷으로 접수된다. C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는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된 남자와 동침 후 임신을 했는데 연락이 안 된다"며 "애 아빠를 꼭 찾아달라"는 민원이 들어왔다. 사건을 접수한 경찰은 한동안 모니터만 쳐다봤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사이버수사팀은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신고해 달라"고 입을 모은다. 이유는? 황당한 제보 속에서 미처 몰랐던 교묘한 범행수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고는? 'www.netan.go.kr'로.

성화선 기자 ss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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