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속 바다이야기] <18> 동해 물고기들의 성지가 된 만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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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중생만이 돌무덤 속의 가르침을 만날 수 있네

만어사 앞 너덜겅의 돌들. 동해의 물고기들과 용이 저 멀리 고해(苦海)에서 올라와 해탈한 것이리라.

부산의 서쪽에는 낙동강(洛東江)이 흐르고 있다. 낙동강은 한반도에서 압록강 다음으로 큰 강으로, 영남의 대부분이 이 강을 끼고 있다. 그런데 왜 낙동강이라 했는가? 뜻을 풀어보면 짐작할 수 있다. 낙동강은 '가락(駕洛)의 동쪽에 흐르는 강'이다. 가락은 곧 가야국이니, 고대에 강성했던 가락국이 이 강을 동쪽으로 두고 있었기에 붙여진 줄을 알겠다.

그 낙동강을 하구에서 거슬러 올라가면, 김해의 신어산(神魚山)을 끼고 서북쪽으로 꺾인다. 그리고 이내 삼랑진(三浪津)이다. 삼랑진을 지나서는 서쪽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본류에 북쪽에서 내려오는 밀양강이 만나 세 줄기를 형성한다. 이 세 갈래의 물결로 말미암아 삼랑진이라 불렸다. 삼랑진의 북쪽에 산이 하나 솟아 있으니, 이를 만어산(萬魚山)이라 한다.

대개는 삼랑진읍의 우곡리로 해서 만어산으로 오르는데, 부산대학교 밀양캠퍼스 뒤쪽으로 올라가도 된다. 곧장 뒷산으로 올라가서 산등성이를 따라 동북쪽으로 계속 가면 두어 시간 만에 '만어산'이라 표시된 지점에 이른다. 만어산에 이르기 직전에 저 아래 만어사(萬魚寺)가 보인다. 만어산에 만어사라. 어찌하여 산에 '온갖 물고기'가 있을까?



● 독룡과 나찰녀가 만나 사귄 만어산

'삼국유사'에 <어산불영(魚山佛影)>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제목은 '어산에 어린 부처의 그림자'를 뜻한다. 어산은 만어산이다. 이 만어산에 부처님이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자가 어린다니, 참으로 흥미롭다. 만어산은 자성산(慈成山) 또는 아야사산(阿耶斯山)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자성산은 '자비가 이루어지는 산'을 뜻하니, 불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게 분명하다. 아야사산의 '아야사'는 '마야사'가 옳으며, 이는 풀이하면 '어(魚)'가 된다고 한다. 그러면 아야사산은 '마야사산'이 되니, 그 소리는 '만어산'에 가깝고 뜻도 '어산'이 된다. 만어산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옛날에 수로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나라를 다스릴 때였다. 이 나라 안에는 옥지(玉池)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독룡이 살고 있었다. 독룡은 만어산에 있던 다섯 나찰녀(羅刹女)와 사귀었다. 그래서 때때로 천둥을 동반한 비가 쏟아져 4년 동안 오곡이 여물지 못했다. 왕은 주술로써 막으려 했지만,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옥지는 지금의 밀양호로 여겨진다. 낙동강 본류에서 밀양강을 따라 거슬러 가면 만나게 되는데, 2001년에 댐이 완공되면서 밀양댐으로도 불리고 있다. <어산불영>에는 고려 때의 승려 보림(寶林)이 쓴 글이 실려 있다. 거기에 '산 가까운 곳이 양주(梁州) 경계의 옥지인데, 이 못 안에 독룡이 살고 있다'고 한 내용이 나온다. 양주는 지금의 양산이다. 따라서 밀양시 양산시 창녕군, 세 곳에 물을 공급하는 밀양호가 밀양과 양주 경계의 옥지에 해당한다.

이 옥지에 살던 독룡은 본래부터 '해독을 끼치는 용'이 아니었다. 가락국에 살았던 사람들이 고대부터 받들었던 용신(龍神)으로, 토착신이었다. 중세에 불교라는 보편종교가 들어오면서 서서히 배척되면서 독룡으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불교의 악귀(惡鬼)인 나찰녀를 만나 사귀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나찰녀는 본래 바다에서 사는데,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서 만어산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독룡과 나찰녀들의 사귐은 곧 백성들을 괴롭히는 횡포가 되었다. 이 횡포를 막으려고 왕은 주술을 썼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독룡과 나찰녀들은 중세가 되면서 악신으로 내몰렸으므로 고대의 방식인 주술로써는 퇴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부처를 청하여 설법으로써 물리칠 수밖에 없었다.


● 동해 물고기들의 성지가 된 만어산

부처는 설법을 하였고, 그제야 나찰녀들은 오계(五戒)를 받았다. 오계는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신자들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금계(禁戒)로, 죽이지 말라, 훔치지 말라, 음란한 짓을 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 등이다. 오계를 받은 것은 불교에 귀의했다는 뜻이다. 독룡과 나찰녀들은 불교에 귀의하면서 악신이 아닌 수호신이 되었고, 그로부터는 재앙이 없어졌다.

독룡과 나찰녀는 모두 강이나 바다와 연관이 있는 신격이다. 그런 신격들이 불교에 귀의했으니, 그들을 따르던 강이나 바다의 생물들도 따라서 귀의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어산불영>에서는 '동해의 고기들과 용이 마침내 골짜기 속에 가득 찬 돌로 변하여 각기 종과 경쇠의 소리가 난다'라고 적고 있는데, 바로 그런 일을 두고 한 말이다.

만어산의 만어사 앞 골짜기에는 돌들이 가득한데, 마치 강물을 거슬러 오르려는 연어들처럼 산꼭대기를 향하고 있다. 만어사에서 멀리 바라보면, 운해(雲海) 사이로 낙동강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물고기들과 용은 나찰녀처럼 만어산에 오르기 전에 낙동강을 따라 올라왔다.

만어산을 내려가서 낙동강 줄기를 따라 하구로 가면, 강물은 부산 다대포(多大浦) 앞에서 바다와 만난다. 다대포는 동해와 남해의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이다. 동해의 고기들과 용은 바로 이곳을 거쳐서 만어산에 이르렀다.

만어는 곧 '온갖 물고기들'을 뜻하니, 이는 그대로 만물(萬物)과 통한다. 여기서 만물은 온갖 유정물(有情物)이니, 곧 중생이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으려고 고해(苦海)에서 거슬러 올라온 물고기들과 용은 곧 백성과 왕을 상징한다. 종과 경쇠가 되어 소리를 냈다는 것은 열반에 들었다는 뜻이다. 만어산에서 물고기들과 용이 번뇌를 떨어내고 해탈을 하였으니, 만어산은 바로 피안(彼岸)이다. 이로써 나찰녀가 살던 만어산은 불교의 영산(靈山)이요 성지가 되었다.


● 만어산에 어린 부처의 그림자

<어산불영>에는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 나오는 이야기도 실려 있다. 부처가 야건가라국(耶乾訶羅國)의 아나사산(阿那斯山)에 이르렀더니, 다섯 나찰이 여룡(女龍)으로 변하여 독룡과 사귀며 서로 우박을 내리고 난폭한 행동을 하였고, 이에 기근과 질병이 4년 동안 이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왕의 요청으로 부처는 그 문제를 해결하였고, 용왕과 나찰녀는 부처에게 예를 드리면서 계율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만어산의 이야기와 거의 같다.

그런데 '관불삼매경'에는 더욱더 흥미로운 대목이 이어지고 있다. 계율과 가르침을 받은 용왕은 자신의 근기가 얕아서 최상의 오묘한 깨달음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부처에게 늘 그곳에 머물러 주시기를 청했다. 그러자 부처는 용왕에게 나찰이 있던 석굴을 시주하면 거기에 천오백 년 동안 머물겠다고 말하였다. 부처는 몸을 솟구쳐 석굴의 돌 속으로 들어갔고, 이에 돌은 맑은 거울과 같아졌다. 부처는 돌 속에 있으면서 밖으로 빛을 나타냈는데, 중생들이 볼 때는 멀리서 바라보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부처가 돌 속으로 들어간 것은 곧 열반에 든 일을 상징한다. 돌은 부처가 깃들면서 맑은 거울이 되었고, 이 맑은 거울은 중생의 불성을 비추는 거울로서 곧 불법을 뜻한다. 돌 속에서 부처가 밖으로 빛을 내는 것은 곧 설법하는 일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부처가 열반에 든 뒤에도 그 가르침은 남아서 법이 되어 중생을 가르치고 이끌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부처의 설법은 아무나 들을 수 있거나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된 가르침, 지고한 이치는 깨닫겠다는 집착조차 버릴 때에만 비로소 체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로써 '만어산에 어린 부처의 그림자'가 뜻하는 바가 명확해진다. 역사적 존재로서 부처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만어산에는 진신(眞身)이 없다. 다만 부처가 남긴 가르침, 그 법이 그림자처럼 남아서, 보일 듯 보이지 않고 들릴 듯 들리지 않고 있다. 이제 보거나 듣는 것은 오로지 중생에게 달려 있다.


● 희미한 옛 불국토사상의 그림자

'삼국유사'에는 <아도기라(阿道基羅)>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거기에는 법흥왕(法興王)이 불교를 공인하기 전에 신라에 이미 묵호자(墨胡子)나 아도(阿道)와 같이 서역이나 고구려에서 온 승려가 들어와서 불교를 전했다고 하는 일이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어산불영>은 그와 달리 가락국을 통해서 신라에 불교가 전해졌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렇게 볼 만한 실마리가 상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야기에서 만어산에 오른 중생은 남해가 아닌 동해의 물고기들과 용이었다. 이는 신라와 관련된다. 남해는 불교를 먼저 받아들였던 백제와 가락국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남해의 중생은 새삼스럽게 불교에 귀의해야 할 일이 없었던 반면에, 동해를 끼고 있던 신라는 아직 불교를 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신라는 삼국 가운데서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인 나라였다.

또 만어산의 기이한 일은 천축의 야건가라국에서 있었던 일과 상통한다. 경전 속의 일이 만어산에서 재현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가락국이 천축과 다르지 않다고 하는, 어쩌면 똑같다고 하는 사유를 드러낸 것인데, 그 사유는 불국토사상과 비슷하다. 오늘날에는 불국토사상이 신라인들의 불교에 대한 사유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 <어산불영>에서는 가락국이 그 불국토사상의 원천처럼 묘사되고 있다. 신라가 가야를 복속하면서 이 사상도 가져갔던 것이 아닐까? 아니면 가야의 후손들이 옛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것일까?

글·사진=정천구/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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