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 편견 버리고 우리 그림 감상하세요"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미술실에서 인물화를 그리고 있는 김민재군. 벽에 걸린 김구 초상도 그가 그린 작품이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 강서구 대저1동 부산혜원학교 3층 미술실. 색 사인펜이 든 통을 마구 흔드는 남학생, 아침에 먹은 약에 취해 책상에 엎드려버린 여학생. 정신지체 고등부 학생들의 미술시간 풍경이다. 그런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민재(17)군은 힘차게 붓을 놀려 인물화를 쓱쓱 완성해 간다.

탁자 위에 놓여진 캠코더는 그런 민재를 쭉 촬영하고 있다. 자폐증세가 있는 민재가 나중에 그 장면을 보면서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서다. 박무근 미술교사는 "가끔씩 돌발행동을 하지만 그림 그리는 장면을 보여주면 자세가 교정된다"고 했다.

오늘부터 13일까지
부산학생교육문화회관서
부산혜원학교 학생
'우리들의 그림전'


한데, 민재의 그림 솜씨가 보통이 넘는다. 교실 벽에 걸린 김구 선생의 초상. 형태 묘사나 선에서 어색함이 없다. 수없는 반복으로 이어진 자연스런 선의 만남이 단순한 대상의 묘사를 넘는다. 남을 의식하거나 훈련된 표현이 아니라 거리낌 없이 나온 그림이다. 창의성이 떨어지는 미숙한 표현일 거란 선입견이 무너진다. "자폐아는 보통 그림이 너무 강해서 저런 선이 잘 안 나와요. 형태에 대한 인식은 타고난 것 같아요. 일반 학생들처럼 석고상으로 드로잉 연습을 하지 않고도 그냥 바로 나온 거예요." 박 교사의 말이다.

몇 년 전 졸업한 희태도 그림 그릴 때만은 그림에 집중했더랬다. 신호등이나 아파트 같은 도시적 분위기를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었다. 고등부 1학년 지훈이는 화면 분할을 통한 색면 칠하기가 돋보였다.

박 교사는 "이 그림들이 단순한 반복이 아니란 걸 수십 장의 그림을 펼쳐놓고서야 알았다"면서 "이렇게 같으면서 다르다는 것에서 또 다른 표현의 깊이를 깨달았다"고 했다.

이들의 그림을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9일부터 13일까지 부산학생교육문화회관 교문갤러리에서 부산혜원학교 학생들의 그림 50여 점으로 꾸민 '2009 함께 하는 우리들의 그림'전. 교내에서 전시를 가진 적은 있지만 학교 밖에서 이들의 그림을 선보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남겨진 거라곤 그림밖에 없는 이 땅을 떠난 아이의 그림도 전시된다. 지난해 심장장애로 세상을 뜬 민철이의 그림. 우주를 배경으로 상상의 날개를 폈던 그림이다.

박 교사는 "그림에 대한 아이들의 재능을 잠깐 동안의 학교생활에서 끝내지 않고,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으면 하는 기대에서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했다. 내년에는 부산의 특수학교 아이들 작품을 모아서 한 번 전시해 보고 싶다는 소망도 함께 내비쳤다. 051-972-4861. 011-540-2427. 이상헌 기자 ttong@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