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톡톡] 마음 속의 배추 한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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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딸과 함께 '아름다운 사람들' 무료 급식소에 자원봉사를 갔다. 이날은 무료 급식은 하지 않고 마침 김장 담그기를 하는 것이었다. S금융그룹의 150여명과 섞여 분주하게 배추와 양념을 나르고 또 절인 배추 잎 사이사이에 김장양념을 치댔다. 양념이 옷에 튕겼다. 그런데 아 배추, 라는 일깨움이 스치는 것이었다.

얼마 전 우리 일행은 한 사찰에 들렀다. 입구에서부터 2천원의 주차비를 받았다. 2천원을 낸 뒤 차를 몰고 길 따라 절의 뒷문을 통해 경내에 들어갔다. 저쪽에서 한 승려가 팔로 X자를 그리며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정문으로 들어가야 절의 면모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일리있는 X자 수신호라고 여겼다. 그런데 웬일인가. 우리가 나오자 곧 뒷문이 매정하게 닫혀버렸고, 절에 들어가려면 1인 2천500원의 입장료를 또 내야하는 것이었다. 갈등했다. 우리의 결론은 절을 관람하지 말고 그냥 가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입구에서 낸 2천원의 주차비가 아까웠다.

그날 국도 변의 밭에 지천으로 널린 싱싱한 배추를 보았던 터였다. 누군가 "이미 지불한 주차비 대신 절의 배추 한 포기를 뽑아 가자"고 제안했다. 이걸 뽑아도 되나, 주저하면서도 삼엄하게 주위를 살피며 절의 텃밭에서 배추 한 포기를 뽑았다. 벌건 대낮에 영문있는 배추 서리가 자행됐다. 절의 입구를 나오면서 주차비를 받는 아저씨에게 대뜸 따졌다. "주차비를 내고 들어갔으면 그만이지 왜 절 입구에서 또 관람료 2천500원씩을 더 받느냐. 절에 들어가지도 않고 그냥 나오는 길이니 주차비 2천원을 돌려달라." 아뿔싸! 그 아저씨는 "이러면 안 되는데…"라며 2천원을 내놓았다. 이걸 뽑아도 되나 주저할 때부터, 우연찮게 주차비를 돌려 받으면서부터 이상하게 우리 마음속에 배추 한 포기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우리는 갑론을박했다. 주차비를 돌려 받았으니 배추를 도로 제 자리에 꽂아 놓아야 한다, 배추 대신 절에 시줏돈을 우편으로 보내자, 내일 주지 스님을 만나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별의별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가 뽑은 배추 한 포기는 화두처럼 다가왔고 마침내 우리는 그것에 '부처 배추'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그 배추를 딸과 나선 자원봉사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양념을 치대고 있는데 은행잎이 어깨 위에 툭하고 떨어졌다. 마음속의 배추가 여기에 와 있었군, 하는 생각이 턱 하니 들었다. 김치로 치대진 이 배추들은 무료급식소를 찾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마음속에 또 다른 배추 한 포기로 심어질 것이었다. 그랬다, 부처 배추 한 포기! 최학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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