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320> 합천 남산제일봉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불꽃같이 솟은 바위 가위바위보 해 볼까

순한 숲길을 지나 남산제일봉에 올랐다. 화창한 날씨 덕에 사위의 조망은 일망무제다. 수도지맥의 명산 뒤로 멀리 백두대간 지리산 덕유산의 마루금이 산 물결을 이루며 다가온다. 가슴이 뻥 뚫린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청담 이중환은 인문지리서인 '택리지'에서 '경상도의 산들은 대개 돌화성(石火星:불꽃 모양의 바위)이 없는데, 오직 합천에 있는 이 산만 뾰족한 바윗돌이 불꽃같이 이어졌다. 바위가 하늘에 따로 솟은 것처럼 아주 높고 빼어나다.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금강산과 지리산은 침입했지만, 이 산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하여 이 산은 예로부터 삼재가 들지 않는 곳이다'라고 썼다. 청담이 지리산 이남의 최고의 산이라고 추켜세운 산이 가야산이다.

웅장한 산세와 깊은 골, 계절 따라 바뀌는 산색도 아름답지만 가야산 하면 떠오르는 건 석화성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석화성의 참맛을 느끼려면 가야산에 오르기보다 수도산·단지봉 등 수도지맥 준령이나 가야산 주변 산에 올라야 한다. 산행팀이 찾은 남산제일봉(1,010m)도 이런 조망미를 물씬 안겨주는 가야산 자락의 고봉 중 하나이다.



'가야산 남쪽 명산'에서 유래

초입길엔 다양한 수종 숲길

블록 쌓은 듯 기암들 늘어서

해인사 방화용 소금단지도



남산제일봉의 '남산'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가야산 남쪽에 있는 산이란 뜻이다. 하여 남산제일봉은 '가야산 남쪽의 으뜸인 봉우리'라는 뜻이다. 한때 남산제일봉과 이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1.1㎞가량 떨어진 매화산(954.1m)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산으로 취급했다. 두 산은 엄연히 다른 산이다. 일부 관광지도에도 '남산제일봉(매화산)'으로 병기했다. 그러다 지난 1972년 10월 13일 가야산이 제9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산 명칭을 바로잡았다.

남산제일봉 산행은 통상 청량사에서 올라 정상을 밟고 해인사버스터미널로 내려온다. 이 행로는 기이한 멧부리를 보며 오른다는 매력이 있지만, 고도 300m대인 청량마을부터 청량사~정상을 줄곧 된비알과 씨름해야 한다는 고충이 있다. 산행팀은 이번에는 코스를 거꾸로 돌려 해인사터미널에서 출발해 청량사로 내려오도록 꾸며봤다. 산행 초입부터 만나는 숲길이 정상까지 연결되고 가풀막도 거의 없어 순한 등로가 되겠다. 산행 말미에는 고운 최치원이 놀았다는 홍류동 계곡도 나온다. 산행 거리 약 8㎞, 소요시간 3시간 40분(쉬는 시간 포함) 정도.

가야산 지정 탐방로는 현재 백운동~가야산 상왕봉(정상)~해인사 구간과 남산제일봉 코스만 개방됐다. 이정표가 잘 설치됐고, 정해진 등로를 따라야 하기에 길을 헤맬 염려는 없겠다.



산행 기점인 해인사터미널에서 해인사우체국 쪽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아미교가 있다. 다리를 건너 해인사관광호텔까지 3분가량 걷는다. 호텔 앞 주차장에 가야산 국립공원 대형 안내도와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 옆에 있는 길이 본격적인 산행 들머리이다. 깃대종 설명 푯말도 있다. 깃대종은 특정 지역의 생태적 특징을 반영하는 동식물인데, 가야산은 멸종위기동물 2급인 삵과 '가야산은분취'가 깃대종이다.

산행 초입부터 넉넉한 숲이 나온다. 소나무, 개벚나무, 졸참나무, 신갈나무 등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수종도 있지만 물푸레나무, 노각나무, 고로쇠나무, 팥배나무, 정금나무, 대팻집나무 등 쉽게 만나기 어려운 나무도 여럿 있다. 나무마다 이름표를 달고 있어 간단한 특징을 기록해뒀다.

첫 번째 이정표에서 오른쪽은 치밭골, 왼쪽이 돼지골이다. 치밭골 등산로는 막혔다. 호젓한 길을 걷는데 하늘에서 '타닥타닥' 하고 뭔가가 떨어진다. 발밑을 살폈더니 도토리다. 주변을 돌아보니 길바닥에 도토리가 널브러져 있다.

너덜을 지나 이동통신 중계기가 있는 곳부터 길이 펑퍼짐하다. 남산제일봉은 골산이지만 여기까지는 육산인가 싶을 정도로 길이 순하다.

10분 정도 여유 있게 올랐다. 오봉산(968m)과 남산제일봉 사이의 안부에 다다랐다. 오봉산 쪽 등산로도 막혔다. 오른쪽으로 나무 데크가 설치돼 있다. 데크를 오르면서 뒤를 돌아봤다. 나무 사이로 가야산이 힐끔힐끔 보여 애간장을 태운다.



안부에서 남산제일봉 아래의 전망 좋은 곳까지 15분쯤 오른다. 고도가 눈에 띄게 상승하지만 그다지 숨은 차지 않다. 잠시 뒤 눈앞에서 남산제일봉의 꼭대기가 훤히 드러난다. 마치 화강암으로 레고 블록을 쌓은 것처럼 돌들이 계통 없이 덩이를 이룬 모양새다.

이곳에서 5분가량 더 오르면 남산제일봉 철 계단이 나온다. 합장하는 모양의 기암 옆으로 설치된 계단을 이용해 정상에 올랐다. 애간장을 태우던 가야산이 저기 멀리 있다. 아쉽게도 상왕봉, 칠불봉은 보이지 않고 중봉과 상아덤, 만물상은 뚜렷이 보인다.

서쪽으로 몸을 트니 수도지맥의 산들이 코앞에 있는 것 같다. 그 뒤로 백두대간의 산 주름이 산 물결을 이루며 다가온다. 일망무제라. 날씨가 좋아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 덕유산 능선이 푸른빛을 띠며 떡 하니 앉았다. 동쪽으론 금오산, 팔공산, 비슬산의 마루금이 사이좋게 박혀 있다.

남산제일봉 한가운데 바닥에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 있다. 해인사의 화재를 막으려고 스님들이 묻은 소금단지이다. 전설에 따르면 남산제일봉의 기운과 해인사 대적광전의 기운이 충돌해 해인사에 불이 자주 났다. 풍수가의 도움을 받아 단오 때 정상에 소금단지를 다섯 방향에 묻었고, 그 후론 해인사의 화재가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한다.



철계단을 밟고 하산길을 연다. 희한한 모양의 기암들이 능선에 쭉 늘어서 있다. 원숭이바위, 촛대바위, 주먹바위 등 산행팀은 생긴 대로 이름을 붙여 보았다.

20분 정도 신기한 바위를 실컷 보고 나면 데크 전망대가 나온다. 데크 전망대에서 청량사까지는 경사가 제법 심한 내리막이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확인하니 고도가 뚝뚝 떨어진다. 20분 정도면 청량사에 도착한다.

청량사는 해인사 산내 암자로, 창건 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삼국사기에는 최치원이 이 절에 자주 놀러 왔다고 기록돼 있다. 가람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65호)과 석탑(보물 제266호), 석등(보물 제253호) 등 보물이 있다. 대웅전 옆에 한자 '용(龍)'을 새긴 돌 약수대가 있는데, 글자 사이로 물이 흐른다.

청량사에서 매표소를 지나 탐방지원센터까지는 15분 정도. 황산저수지와 매화산장 식당을 지나 청량동마을 입구까지 무던히 걷는다. 청량동에서 무릉동까지는 포장도로가 깔렸는데, 차량은 거의 없는 편이다. 무릉동부터는 고운 최치원과 성철 스님이 자주 와서 놀았다는 홍류동 계곡을 따라간다. 멀리 앞쪽으로 가야산 만물상이 홍류동을 내려다보고 있다. 청량동 마을 입구에서 종점인 버스정류소까지 20분 소요. 산행문의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글·사진=전대식 기자 pro@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 표고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구글 어스 (※ 사진을 클릭하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산&산] <320> 합천 남산제일봉 산행지도
[산&산] <320> 합천 남산제일봉 가는길 먹을곳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