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사료 먹이고, 돈 받고 재분양…동물보호단체장이 유기견 보호비 6억 횡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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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유기동물보호소에 갇혀 있는 유기견. 부산일보DB

유기동물 보호를 위해 사용돼야 할 수억 원대의 유기동물위탁보호비를 3년 동안 개인용도로 사용한 혐의로 비영리단체장이 경찰에 적발됐다. 이 단체에 대한 관리·감독에 소홀했던 해당 구청도 혈세를 낭비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부산 북부경찰서는 8일 부산의 기초지자체와 계약을 맺은 뒤 유기동물위탁보호비를 받고 유기동물 보호활동을 하면서 일부를 가로채거나, 일반인으로부터 기부금을 받고 유기동물을 재분양한 혐의(기부금법 위반 등)로 부산유기동물보호협회장 한 모(40)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부산유기동물보호협회장 입건
12개 구청과 계약, 3년간 12억 받아
현장 확인 안해… 관리 감독도 허술


경찰에 따르면 한 씨는 지난 2008년 2월부터 3년 동안 부산유기동물보호협회장으로 지내면서 지역 내 유기동물의 치료 및 보호와 재분양 업무를 위해 부산 지역 12개 구청과 위탁계약을 체결했다. 12개 구청으로부터 3년간 유기동물위탁보호비 12억 원을 받았다. 한 씨는 영리단체인 부산유기동물보호소를 결성한 뒤 12개 구청에서 받은 유기동물위탁보호비 12억 원을 부산유기동물보호협회에서 부산유기동물보호소의 계좌로 이체, 이중 6억 원 가량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한 씨가 유기동물들에게 저질사료를 먹이거나 수의사 없이 안락사 시키는 방법 등을 동원, 보호비를 착복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씨는 심지어 보호소에서 10일이 경과된 유기동물을 재분양하면서 새 주인에게 기부금 명목으로 마리당 3만~5만 원을 받아내는 등 사실상 매매행위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는 이렇게 받아낸 수억 원대의 보호비와 기부금으로 개인채무변제, 주식투자, 생활비 등에 사용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한 씨의 범행이 가능하게 된 데는 구청의 관리감독 부실이 크게 작용했다. 다른 유기견 보호단체들이 저질 사료를 먹이거나, 심지어 보관중이던 유기견을 재분양하는 척하면서 식용으로 넘기는 사례가 종종 보도되기도 했는데 구청은 관리감독을 강화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 씨에게 유기견 보호를 위탁한 구청들은 매달 형식적인 확인절차만 진행했다. 보통 유기동물이 발견되면 협회의 구조대가 유기동물을 보호소에 데려와 최장 10일 동안 보호하면서 주인을 찾는 공고를 내는데 구청은 하루에 1만 원씩 계산해 10만 원을 협회에 지급해왔다. 10일 뒤에도 주인을 찾지 못하면 유기동물의 소유권이 협회로 이관돼 협회가 임의적으로 새 주인을 찾아주거나 안락사를 시켰다. 지난해 이 같은 업무를 위해 협회와 계약을 맺은 12개 구청들이 쓴 예산만 3억8천600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해당 구청들은 매달 초 협회가 청구한 보호비 내역을 확인하면서 안락사 됐거나 재분양된 유기동물들을 서류상으로만 살펴보는 것에 그쳤다. 게다가 보호소가 유기동물들에게 어떤 사료를 먹이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 결국 지자체의 허술한 관리·감독이 한 씨가 다른 용도로 보호비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이에 대해 모 구청 유기동물 담당자는 "보통 담당자 한 사람이 유기동물 업무에만 집중할 수 없는 데다 전문가도 아니어서 사료의 질 등을 파악할 수 없다"며 "협회가 부산 대부분의 지자체와 계약을 맺는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어서 구청이 관리를 강화하려 해도 협회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한편 한 씨는 경찰 조사 결과에 대해 정면으로 부인하고 나섰다. 한 씨는 "보호소의 직원이 10명이나 있는데 한 해 인건비만 2억5천만 원이고 3년이면 7억5천만 원이 소요된다"면서 "보호비의 상당부분을 인건비에 사용했고 나머지 부분도 보호소를 운영하는데 적절히 투입됐다"고 주장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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