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비 신청 탈락 아이들 눈빛 떠올라 선생님 "내가 굶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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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북구 최은순 교사 10일째 점심 단식

부산 북구 A 중학교 최은순(47·여) 교사는 점심시간이면 반 아이들의 배식을 도와주러 교실로 간다.

아이들의 밥을 퍼주고 나면 교무실로 돌아와 물 한잔을 마신다. 점심을 굶은 지 오늘로 열흘째. 오후 수업시간엔 다리가 후들거릴 때도 있다. ▶관련기사 3면

A 중학교는 지난 12일 담임 교사들에게 학교 급식비 지원 신청을 했던 학생 106명 중 75명 밖에 지원해 줄 수 없다는 통보를 했다. 신청 학생 중 31명이 올해 급식비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탈락자'중에는 최 교사의 반 아이 1명도 포함돼 있었다. 최 교사는 가정환경을 꼼꼼하게 조사해 지원이 꼭 필요한 아이들만 신청을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아이들이 가난을 증명하기 위해 서류를 갖다 내고 '남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던 그 과정을 떠올리니 눈물이 핑돌았다.

최 교사는 '차라리 내가 한끼 굶고 아이의 밥값을 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14일부터 점심 단식을 시작했다. 거창한 대의 명분을 가지고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주눅들어 서류를 내밀던 아이들의 눈빛이 떠올랐고 '상처를 더 줄 순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우리 집 가난'서류
주눅들어 내밀던 아이
더이상 상처줘선 안돼


'점심 굶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나.' 자괴감 때문에 밥을 굶으면서도 암담해질 때가 많지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앞섰다.

급식 지원 탈락자 명단을 받던 그날은 하필 이 학교가 진로 상담 특색사업 지원금을 받아 관련사업 계획서를 내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학력 신장 프로젝트에는 그렇게 많은 예산을 지원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급식비 지원은 줄이는 교육청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한끼 굶어서라도 지원을 못받게 된 아이의 밥값을 내주고 싶다….' 최 교사는 학교 전 교직원들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소리없는 저항'에 응원의 손길이 서서히 늘었다. 교장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고 독지가의 도움으로 '탈락자' 중 13명이 연말까지 급식비를 지원받게 됐다. 교사들의 급식비 지원 움직임도 일고 있다.

선생님의 점심 단식 사연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아이들의 응원도 늘어갔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위해 단식중'이란 걸 안 최 교사 반 아이는 괜히 최 교사를 툭 치고 도망가거나 '선생님~'하고 크게 불러놓곤 머리에 하트를 그리고 도망치기도 했다.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아이의 서투른 표현이 오히려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최 교사는 "먹는 문제를 가지고 아이들에게 이런 상처를 주지말야할 것"이라며 "심각한 이념 투쟁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에서 아이들을 중심에 두고 살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목표를 두고 시작한 일은 아니지만 그는 탈락됐던 아이들이 모두 올해 급식비를 지원 받을 수 있는 대책이 생길 때까지 점심을 굶을 생각이다.

강승아 기자 se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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