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화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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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식 편집2팀장

지난 1953년 광복 이후 최대의 화재가 부산 국제시장에서 일어났다. 당시 부산 신창동의 한 음식점에서 발화된 화마는 하룻밤 사이에 주변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가옥 4천여 동이 전소되고 2만 2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에도 국제시장에서는, 그리고 부산에서는 크고 작은 화재가 끊이질 않았다.

어릴 때 화재가 잦은 국제시장 인근 부평동에서 생활했던 탓에 화마로 사랑하는 부모와 자식,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은 이야기를 마치 동화처럼 자주 듣고 자랐다. 당시 어린 눈에도 2층 집에서 창문을 통해 내다보는 국제시장 주변 좁은 골목길과 다닥다닥 맞닿아 있는 지붕과 지붕, 엉성하게 헝클어져 있는 전선의 모습은 사고 나기 딱 좋아 보였다.

한 날은 국제시장에서 화재 진압을 하던 소방관이 3층 높이에서 떨어지는 참사가 발생, 주변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소동 속에서도 낮잠을 자다 사이렌소리와 사람들의 단말마 비명에 본능적으로 불이 났나 보다 벌떡 일어나 놀란 눈으로 창밖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날은 소방화재 훈련을 하던 날이었지만 사고가 발생한 것이었다.

어느 날엔 맨홀 안의 가스가 누출돼 불길이 도로를 벌겋게 달구어 하마터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부산 서면의 한 호텔에서 대형화재가 발생, 수십 명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던 사고가 났다. 당시 한 친구는 서면의 나이트클럽에서 밤새 놀다 아침에 술이 덜 깬 상태로 거리를 배회하다 연기가 나고 있는 호텔 창문을 통해 사람이 떨어지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을 전하기도 했다.

불이라는 것은 정말 위험한 것이구나 실감하면서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불과 3년 전인 2009년 11월 중순 부산 중구 실탄사격장에서도 화재가 발생, 일본인 관광객을 포함해 무려 15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그해 1월 부산 영도 지하노래주점 화재로 9명, 6월 부산 중구 여인숙 화재로 5명이 숨지기도 했다. 당시 사회부 차장으로서 현장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참담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외 우리를 놀라게 한 화재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얼마 전에는 지인 중의 한 사람이 부산 해운대에 있는 자신의 초호화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하소연을 늘어놓기도 했다.

좋지 못한 화재의 추억이 갈수록 사진첩처럼 쌓이는 것 같아 영 달갑지 않다.

이 화사한 봄날이자 어린이날인 지난 5일에는 부산 최대 번화가인 서면의 한 노래방에서 불이 나 9명이 숨지고, 25명이 부상을 입는 대참사가 빚어졌다.

5월 가정의 달에 귀중한 당신들의 자녀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주변에서, 먼 이국 땅에서 젊은 꿈을 접어야 했다.

본보 보도에 따르면 피라미드형의 독특한 건물 형태와 안전 의식 부재, 화재가 났던 건물에 대한 소방당국의 안이한 점검 등이 참사를 키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인재(人災)라고 이름 붙여질 사고는 지금 이 시간도 우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지만 화재 대응 시스템은 안이하고 과거와 다름없이 제자리인 듯한 느낌마저 든다.

부산은 오래된 도시 중 하나여서 화재에 매우 취약한 지역이다. 그래서 부산지역 실정에 맞는 안전대책과 사고예방 체계가 갖추어져야 하지만 그러질 못하는 모양이다.

30~40년 전이나 현재나 화재가 발생하면 관계당국은 매번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처방으로 뒷북을 쳐 시민들을 분노케 한다. 사회가 발전하고 진보하지만 화재를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와 대책은 언제나 그때뿐이었다.

지금도 주변을 보라.

허술한 소방관리와 안전 불감증 등으로 인해 화재 참사의 가능성을 품에 안고 있는 공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등이 있는 5월. 그 누구의 아들딸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이런 후진적인 참사가 재발되지 않기를 다시 기대해 본다.

졸지에 변을 당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ssryu@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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